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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굉 이름풀이 *************
인생1구간 (1~20세전후) 이름의 기운 : 겉기운 - 독립 , 속기운 - 겸손
인생2구간 (21~40세전후) 이름의 기운 : 겉기운 - 발전 , 속기운 - 이행
인생3구간 (41~60세전후) 이름의 기운 : 겉기운 - 인기 , 속기운 - 통함
인생4구간 (61~말년) 이름의 기운 : 겉기운 - 발전 , 속기운 - 대유
속마음 : 이행
인생4구간은 인생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이름의 기운이다.
영제 유굉(漢靈帝 劉宏, 156년 ~ 189년, 재위 168년 ~ 189년) 향년 34세.
영제(靈帝)는 중국 후한(後漢:25~220) 제12대 황제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던 제11대 황제 당숙 환제(桓帝)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168년에 13세의 나이로 제위에 오른다.
영제는 환제와 함께 무능한 군주로 역사에 회자된다. 이 둘을 '환영(桓靈)'이라 부른다.
영제 유굉은 후한 장제의 고손자로 할아버지는 해독정후(解瀆亭侯) 유숙(劉淑), 아버지는 해독정후(解瀆亭侯) 유장이며, 어머니는 동태후이다. 동태후는 환제의 5촌 조카.
영제 이름의 기운은
인생1구간 독립, 곤궁
인생2구간 추실, 상승
그리고 나이에 무관하게 인생전체에 영향을 주는 이름의 기운은 인생4구간 추실, 만남. 그리고 속마음 상승이다.
이름의 기운을 영제의 인생에 적용해 간략히 요점을 설명한다.
인생1구간 이름의 기운은 독립, 곤궁.
13세의 나이로 제위에 오르지만 '독립'적으로 황제의 직분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니 '곤궁'.
영제는 향년 34세로 붕어하니 인생2구간 때이다.
인생2구간 이름의 기운은 추실, 상승.
추실은 떨어지는 낙엽 같은 인생을 뜻한다. 영제의 제위기간, 한왕실의 추락과 잘 맞는 이름의 기운이다. 그런데 이 추실의 기운이 상승하니 영제 때 한나라의 기운이 더 쇠한다는 뜻이된다. 따라서, 영제의 황제로서의 역할은 기대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인생2구간에도 나이와 무관하게 인생전체에 영향을 주는 이름의 기운은 인생4구간 추실, 만남. 그리고 속마음 상승.
추실과 상승은 앞서 설명했고 '만남'은 다름 아닌 태평도 장각의 황건적 난.
13세 어린 나이로 황제에 옹립된 영제는 환관의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조정의 실권을 십상시 환관들에게 사실상 넘겨준다.
영제는 장상시는 나의 아버지이고 조상시는 나의 어머니라며 조정일을 이 환관들에게 내 맡기고 영제 자신은 궁전내에서 상인(商人)의 흉내를 내거나 술과 여자들에 빠져 조정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상인(商人)의 흉내를 황제가 냈다는 것은 천박한 최하급 문화놀이를 한 것이니 영제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은 BC 770년 ~ BC 221년 춘추전국 시대 때 백성을 사(士 학자), 농(農 농민), 공(工 장인), 상(商 상인) 네 가지 신분으로 분류했다. 즉, 이것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서열이다.
장상시(張常侍)는 환관 장양(張?), 조상시(趙常侍)는 환관 조충(趙忠).
조정의 실권은 장양과 조충 등의, 십상시(十常侍)라고 불리는 환관들이 장악한다. 이들의 이름은 장양(張?), 조충(趙忠), 봉서, 단규, 조절, 후람, 건석, 정광, 하운, 곽승.
무능한 군주 2인방 '환영(桓靈)'의 한 인물로 불려지는 영제의 재위 기간에는 상서롭지 못한 자연적 현상들과 잇따른 재해도 일어난다.
상서롭지 못한 자연현상과 재해는 이렇다.
건녕 2년 169년 4월 보름날 황제가 온덕전에 들어 자리에 오르려 할 때 전각 모퉁이에서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며 푸른 구렁이가 대들보에서 스르르 내려와 옥좌에 앉았고 하늘에서는 우레와 큰비와 우박이 섞여 내려 수많은 전각과 가옥이 무너진다.
건녕 4년 2월에는 낙양에서 지진이 일어났고 해변에서는 해일에 백성들이 휩쓸려 죽는다.
광화 원년 178년에는 암탉이 변해 수탉이 되고, 같은해 6월 초하룻날에는 열길이 넘는 검은 기운이 온덕전 안으로 날아든다.
7월에는 궁궐에 무지개가 걸리고 오원산(五原山) 기슭이 모두 무너진다.
183년에는 흉년이 184년에는 정월부터 전염병이 크게 번지자 백성의 삶은 더욱 어렵게 된다.
184년 일어난 황건적 난으로 황실의 권위는 더더욱 떨어지고 이 때부터 군웅할거 시대가 시작된다.
이후 군웅들을 차례로 제압해 가장 큰 세력을 구축한 조조와 조조에 맞서 전략적 연합을 하는 두세력, 유비와 손권. 이렇게 위나라 조조, 촉나라 유비, 오나라 손권 세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삼국 시대로 이어진다.
삼국지는 영제 때 일어난 184년 황건적 난 이후부터 280년 위나라 조조의 신하였던 사마휘의 손자 사마염이 세운 진(晉)나라가 오나라를 합병하여 삼국을 통일하기까지의 100년 안팎 동안의 이야기이다.
후한말 나라를 망하게 하는 직접적 요인이 된 외척과 환관들이 조정의 실권을 놓고 벌인 쟁투를 보면 이렇다.
환관들은 후한 10대 황제 환제(桓帝: 재위 147∼167) 때부터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후한의 조정은 9대 황제 때부터 외척과 환관들이 번갈아가며 장악한다. 권력을 잡은 이들은 세도정치와 관직별로 구체적인 가격을 정하고 공공연하게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국정을 농단한다.
이들의 국정 농단을 참지 못하던 환제는 환관들의 힘을 빌어 외척 양기(梁冀)를 살해, 제거한다.
이를 계기로 권력을 잡은 환관들은 내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들의 일족을 지방으로 파견하고 빌붙는 호족과 결탁해 토지를 빼앗고 때로는 병력을 사사로이 늘려간다. 이렇게 땅과 군사를 거느린 지방 군벌이 등장한다. 백성들은 군벌간의 전쟁으로 생존을 위해 군벌에 예속된 노예가 되거나 병졸이 되거나 아니면 농지를 잃고 부랑하게 된다.
유교를 숭상하던 호족이나 관료는 유교에 반하는 환관의 진출을 증오하게 된다. 유교는 군신관계를 그 사상의 주축으로 하니 환관에 의하여 조정과 국정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을 정상적인 호족이나 관료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게 된다.
환제 때, 환관의 세력이 커지자 사대부인 지방관과 태학(太學)의 학생들은 진번(陳蕃), 이응(李膺) 등을 옹립하고 시정을 비판하며 환관세력에 맹렬히 대항한다.
사예교위 이응은 환관과 친히 지내던 장성(張成)의 아들을 살인죄로 처형한다. 사예교위는 수도의 백관들을 감독하고 수도권 군 관원들의 불법 행위를 감찰하는 막강한 권력.
앙심을 품은 장성은 환관과 결탁하여 166년 이응이 태학생들과 함께 파당을 만들어 조정의 정사를 비방한다고 무고한다. 환제는 이 상소를 받아들여 국정을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이응 외의 '당인'(黨人)들을 체포하도록 조령을 내린다. 이에 환관세력의 반대파 관료 이응, 태복(太僕), 두밀(杜密), 진상(陳翔), 진식(陳寔), 범방(范滂) 등 200여 명이 체포 당한다.
167년에는 당인의 금고 조령을 내려 종신토록 관리가 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제1차 '당고의 화(黨錮之禍)' 또는 '당고의 옥(黨錮之獄)' 또는 '당고의 금(黨錮之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당인의 금고 조령으로 관직에 나가지 못하게 된 이들을 청절(淸節)한 선비라며 존경한다.
금고란 관리의 신분을 빼앗아 서인(庶人) 이하의 신분으로 내리는 것이다.
환제가 죽자 외척 두무(竇武: ?∼168)는 167년 영제(靈帝)를 황제로 옹립한다. 영제가 즉위하여 세력을 잡자 두무는 이응, 진번 등을 기용하여 환관을 죽여 없애려 한다. 그러나 사전에 일이 누설되어 오히려 환관세력에게 역습을 당한다.
환관 조절(曹節)은 주우(朱瑀), 왕보(王甫)와 함께 황제의 조서를 맘대로 고쳐 진번을 죽이고 실권을 장악한다. 이 조절(曹節)은 조조의 증조부와는 동명이인이다.
진번은 살해당했고 두무는 자살했으며 이응 등 관료들은 다시 금고에 처해진다.
이후로도 청류파(淸流派)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환관들과 내응하며 처세하는 사람들을 탁류(濁流)라고 부르며 저항했지만, 제2차 '당고의 화(黨錮之禍)' 또는 '당고의 옥(黨錮之獄)' 또는 '당고의 금(黨錮之禁)'이라고 불리는 사건에 의해서 제압된다.
당고(黨錮)란 후한 말년에 사대부와 호족(豪族)이 환관의 독재권력에 반대하다가 관직을 빼앗기고 벼슬길이 막히는 종신금고(終身禁錮)를 당하는 것으로 금고형(禁錮刑)까지 겸하여 당하게 되면 관리의 신분은 박탈 당하고 서인(庶人) 이하의 신분으로 떨어진다.
169년 환관 후람(侯覽)이 사람을 시켜 장검(張儉) 등이 파당을 이루었다고 무고하는 상소를 올렸고, 같은 해 10월 황제에게 우방(虞放), 이응, 두밀 등 100여 명을 체포하도록 청하는 상소를 올려 받아드려진다.
이와 같은 관료파 당인에 대한 대 탄압으로 이응, 두밀 등 100여 명이 살해되고, 600∼700명의 관료파 당인들이 금고형에 처해진다.
172년 환관 후람이 죄를 짓고 고발을 받아 자살을 하지만 환관 조절과 왕보 등은 사예교위 단영을 사주하여 당인과 태학생 1,000여 명을 체포하게 한다.
176년 당인의 문하생, 부자(父子) 및 형제, 5촌 내의 친척은 모두 면직시키고 금고에 처한다는 조령이 내려진다.
이 사건들을 총칭하여 제2차 '당고의 화(黨錮之禍)' 또는 '당고의 옥(黨錮之獄)' 또는 '당고의 금(黨錮之禁)'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계속되는 당고의 탄압으로 관료층은 권력을 빼앗기게 되고 환관들은 십상시를 중심으로 조정과 국정을 더욱 농락한다.
이후에도 환관끼리의 권력 쟁투는 계속되었으니 왕보(王甫)는 발해왕(渤海王)인 유리(劉悝)를 반역자로 몰아 자살케 하는 등 권세를 떨쳤으나, 179년에 양구(陽球)의 탄핵을 받아 왕보는 죽는다.
나머지 환관 세력들의 거물이었던 조절(曹節)은 양구(陽球)와 진구(陳球)를 모략해 죽이고, 조절은 181년까지 천수를 누린 후 죽는다.
184년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난 뒤에야 조정은 비로소 황건난 토벌을 위해 인재가 필요 했으므로 당고령을 해제하고 당인을 사면하는 조령을 내린다.
이 기간 동안 강(羌)족과 선비(鮮卑)족 같은 이민족들의 침입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천재지변이 많이 발생했으며, 각 지방에서는 반란이 많이 일어난다.
이때 장환, 단경, 황보규 같은 사람들이 이런 반란들을 진압하는데 분주했지만, 영제 자신은 조정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아, 정치의 실권은 장양과 조충 등의 십상시(十常侍)라고 불리는 환관들에게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조정의 권력을 두고 싸움을 벌인 이상의 내용만으로도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은 뻔하니 백성의 삶은 말해 뭣하랴!
사회는 불안정했다.
이틈을 비집고 한나라 총 13개 주 가운데 9개주에 거쳐 최소 신도수 36만명 이상으로 세력을 키운 대현량사(大賢良師)라고 칭하는 장각(張角)이 184년 황건기의(起義)를 일으킨다.
이 황건기의(起義)에 의해 후한 왕조는 결정적 위기에 몰렸지만 노식, 황보숭, 주준과 이들을 도운 유비, 조조, 손견 등 지방 호족의 협력과 장각의 급사에 의해서 황건적 진압은 일단 성공한다.
그러나 황건기의가 발생하기까지의 정국을 보고 있던 군벌들 즉, 지방의 호족들은 황건난을 빌미로 군사를 거두지 않고 유지하며 그 세력을 더 키워간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지방 호족들이 대두하게 되며 후한의 국력은 더더욱 쇠퇴해 간다. 이후, 지방 군벌 간의 쟁투를 거치며 조조, 유비, 손권 세 사람을 주축으로 하는 삼국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한편 영제는 황후였던 송씨를 폐하고, 하씨를 황후로 앉히고 하씨의 오빠인 백정출신 하진(何進)을 대장군으로 삼는다. 하진과 십상시는 권력을 놓고 대립한다.
하황후와 영제의 친어머니인 동태후(董太后) 사이의 갈등도 깊어져 동태후는 폐해진 후 죽는다.
189년, 영제는 34살 나이로 붕어한다.
후계자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고 붕어했기 때문에, 붕어후에 유변(劉辯)과 유협(劉協) 사이에서의 황위 계승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영제 시대는 십상시 같은 내시를 중용하고 백성에게 무거운 부역을 부담하게 하여, 민심은 후한을 완전하게 떠나게 된다.
그 사이를 태평도 창시자
장각이 파고들며 9개주에 걸쳐서 삼 사십만의 교세를 확장하여 끝내는 황건기의를 일으키게 되니 한나라는 결정적으로 붕괴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백성에게 부과된 무거운 부역을 좀 더 알아보면, 관리에게 이리저리 뜻기는 것과 물지 않고는 되는 것이 없어서 바쳐야 했던 뇌물. 그러나, 백성 전체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한것은 동전의 가치 절하로 인한 엄청난 인플레이션!!!
후한 4대 목종(穆宗) 화제(和帝) 이후부터는 대외적으로는 해마다 서강, 흉노와 전쟁을 하면서 많은 돈을 쓴다. 뿐만아니라 대내적으로도 사치한 생활을 누린다.
그 돈을 모두 동전으로 마구 찍어서 썻다.
적은 양의 구리로 더 많은 동전을 찍어 내는 주조 기술을 개발하면서까지.
후한 8대 경종(敬宗) 순제(順帝) 때는 중앙정부의 1년 수입이 동전으로 60억개에 이르는데, 이는 서한 시기 2백년 내내 주조한 동전 총량의 2%를 상회하는 것이었다.
서한 시기 2백년 동안 찍은 동전은 총 3천억개.
4대 화제(和帝)부터 8대 순제(順帝)까지 팽창한 인플레이션은 줄지 않고 확장했을 것이다. 이렇게 악화된 경제를 한나라 무능한 군주의 쌍두마차 '환영(桓靈)'으로 불리는 11대 황제 환제와 12대 황제 영제가 잡을 수 있었겠는가? 한나라는 14대 헌제(獻帝)를 끝으로 망한다.
이상 영제 시대는 이름의 기운이 나쁜 황제 유굉이 환제에 이어 합구필분(合久必分)의 빌미를 더 제공하며 한나라를 더 몰락하게 한다.
누구나 이름의 기운 처럼 산다.
이름의 기운을 알고 좋은 선택을 하여 형통한 인생을 살자.
이제부터는 어드카빙주 성명학으로 이름을 풀어 보고 인관관계를 하자. 그 사람의 과거,현재,미래를 알 수 있고 혈액형보다 더 정확하게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이름삼국지 전개는 두가지 주제로 펼쳐지는데
첫째는, 이름풀이 주인공의 삼국지 소설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고
둘째는, 첫째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그 주인공의 이름풀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상황을 지금 우리의 삶 현장으로 새롭게 써내려 갈 것이다.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삼국지가 소설 속 1,800여년 전으로 거슬러 되돌아가서 칼과 창을 들고 전쟁을 하던 과거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 우리 삶의 현장 이야기로
삼국지 등장 인물에 따라서
정치인이 되기도 하고, 기업의 총수가 되기도 하고, 경영기획실장이 되기도 하고, 과장이 되기도 하고, 비정규직 일꾼이 되기도 하고, 편의점 알바생이 되기도 하는 등등 ...
삼국지 주인공 그 인물 이름기운을 바탕으로 지금의 현장에 적용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름삼국지'가 읽을 꺼리가 충분한 소설의 영역을 넘어서 처세와 경영, 그리고 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자리매김 된다면 금상첨화.
다음은 '이름삼국지 장각 1'편이다.
장각 이름풀이를 바탕으로 장각이 지금 우리의 삶 현장으로 들어온다.
이어지는 '이름삼국지 장각 1' 편에서 장각은 의원으로 [세월호 진상규명]에 앞장 선다.
그 현장에 장각이 있다.
다음편에...
누구나 이름처럼 산다
이름은 인생의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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