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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표 - 형주자사 후계구도를 잘못해 아들은 조조에게 형주를 빼앗긴다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3-03-01 16:38    

유표 67세 142년 ~ 208년

 

형주자사로서 통치를 잘 한 것은 인생3구간 이름의 기운 통솔,완성,대응,삼균 긍정적 기운 때문이다.
전란이 계속되어 토지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안전한 형주에 모여들게 되어 형주는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독야청청 이름의 기운중 긍정적 선택과 실행을 한 까닭이다.

유표의 용모는 키가 8척에 달하고, 위엄이 있는 풍모였다고 한다. 인생1/2구간의 좋은 이름 기운으로 볼 때 형주자사가 된 것은 그의 능력이 준비 되었음을 나타내준다.

하지만 유표는 후계자 문제를 쉽게 결단내리지 못하여 훗날 그 사업이 그대로 조조에게 흡수되었는데 이는 이름의 기운 치밀의 부정적 기운인 우유부단함으로 적정한 판단을 못하는 기운 때문이며 정체의 기운도 그 한 몫을 했다. 조조에게 기업을 빼앗기는 결정적 이름의 기운은 박락 때문이다. 박락[ 剝落 剝 벗길 박 , 깍아 내릴 박 落 떨어질 락]은 빼앗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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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표(劉表, 142년 ~ 208년 8월)는 중국의 후한 말의 정치가로, 자(字)는 경승(景升)이며. 연주(兗州) 산양군(山陽郡) 고평현(高平縣) 사람이다. 경제(景帝)의 사남인 노공왕(魯恭王) 유여(劉餘)의 후손이다.

생애
유표 나이 43세. 184년. 처음에는 대장군 하진(何進)을 섬겼다.
유표 나이 49세. 190년. 영제(靈帝) 사후, 칙서에 따라 장사태수 손견에게 살해당한 형주자사(荊州刺史) 왕예(王叡)의 후임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향했다.

당시 장강 이남에는 종적(宗賊)이라는 도적떼가 들끓었고, 토호들은 후한 조정의 지배를 거부하여 제멋대로 할거하고 있었다. 유표는 그 때문에 장강 이남에 있는 본래 형주의 주도(州都)인 한수(漢壽)로 부임하지 않고 의성(宜城)으로 들어가, 남군 지역의 유력 호족인 채모(蔡瑁) · 괴월(蒯越) · 괴량(蒯良) 등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의 조력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들의 조언에 따라 종적들의 우두머리를 유인하여 살해하고 그 휘하 무리들을 흡수했다. 강하의 도적 장호와 진좌가 양양성을 점거하자, 사람을 보내 항복시켜 마침내 강남 일대를 지배하에 두는 데 성공한다. 이후 양양을 주도로 삼고 통치했다.

유표 나이 49세. 190년 각지에서 반동탁연합의 의병이 일어나자 유표도 참가하였다.
유표 나이 51세. 192년 남양에 웅거한 원술(袁術)이 장사태수 손견(孫堅)으로 하여금 유표를 공격하게 했다. 이 싸움에서 유표 수하의 강하태수 황조가 져 양양성이 직접 포위당하는 지경까지 몰렸으나, 황조의 군사가 쏜 유시에 손견이 맞아 죽어 위기를 넘겼다. 그리하여 유표는 마침내 원술의 침략을 저지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표가 옥새를 얻어 장사로 돌아가는 손견을 원소의 명령을 받아 공격하였으며, 이에 분노한 손견이 장사로 귀환하고 형주에 침입하자, 황조에게 명령하여 이를 방어하고, 원소(袁紹)와 동맹하여 대항했다. 황조는 포로로 잡히기까지 하며 고전했지만, 괴량의 계책으로 추격하던 손견을 살해하여 형주를 지킬 수 있었다. 이 때 괴량이 손씨를 완전히 파멸시키도록 권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손견의 유해와 황조를 교환함으로 마무리지었다.

192년 겨울에 조정에 공물을 바쳤고, 193년 이각(李傕)이 실권을 장악한 조정에서 가절(假節), 진남장군(鎭南將軍), 형주목(荊州牧)으로 승진하고 성무후(成武侯)에 봉해졌다. 이는 유표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속셈이었다. 같은해 원술과 조조가 다투자 원술의 보급로를 끊어 원소와 협조관계에 있던 조조를 지원하였다.

유표 나이 56세. 197년 양현(穰縣)에 장제가 쳐들어왔으나, 유시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유표는 장제의 군사를 들여보내게 하였고, 이후 장제의 군사를 거느린 조카 장수와 동맹을 맺었으며, 장수를 도와 조조와 싸웠다. 장사태수 장선(張羨)이 장사, 무릉, 영릉, 계양 4군을 들어 유표에게 항거하고 조조에게 투항하자, 유표는 장선을 공격하였으나 몇 년이 지나도록 거꾸러트리지 못했다. 장선이 얼마 못 가 병들어 죽자, 유표는 그 뒤를 이은 아들 장역(張繹)의 세력을 아울렀다. 이로써 유표는 남으로 영릉, 계양, 북으로 한천을 거두어 땅이 수천 리에 달하고, 병력은 10여만에 이르렀다.

이후 조정에서는 어사중승(御史中丞) 종요(鍾繇)를 유표에게 파견하여 유표를 진남장군(鎭南將軍)에 임명하였고, 북 · 피리 · 큰 수레를 하사하는 한편 조칙을 내려 백부(伯父)라는 존칭을 주었다. 또한 진남장군의 밑에 장사(長史) · 사마(司馬) · 종사중랑(從事中郞) 등의 속관을 두었고, 막부를 열어 인재를 초빙할 권한을 주는 등 격식을 삼공(三公)과 같이 하였다. 또한 좌중랑장(左中郞將) 축탐(祝耽)을 보내 부절을 주어 위엄을 더하였고, 교주(交州) · 양주(揚州) · 익주(益州)를 다스리도록 하였다.

유표 나이 59세. 200년 관도 전투에서는 원소에게서 구원을 요청받았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 후 여남에서 유비가 몸을 의탁해 오자, 그를 받아들였다. 조조가 요동에 원정한 사이, 유비는 조조의 본거지를 급습하자고 진언하였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조조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유비를 신야(新野)에 주둔시켰다.

유표 나이 67세. 208년 8월 조조가 형주에 침공을 개시하기 직전에 67세에 나이로 병사하였다. 남향태수(南鄕太守) · 낙양정후(樂陽亭侯) 민사(旻思) 등이 향리의 유지들과 함께 자금을 모아 시신을 운구하였다.

유표는 본래 장자 유기를 아꼈으나, 차자 유종이 후처 채씨의 인척이 되면서 채씨의 공작에 따라 점차 유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또 채모와 장윤이 유종의 후원이 되었다. 결국 유표는 유기를 황조의 후임 강하태수로 내치고 유종을 정식 후계자로 삼았다. 이에 따라 유종이 유표가 죽은 후 그 자리를 계승하였으나, 유기도 유비에 의해 형주의 주인으로서 일어났다.

인물 및 일화
유표의 용모는 키가 8척에 달하고, 위엄이 있는 풍모였다고 한다. 유표는 정치를 잘 해 전란이 계속되어 토지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안전한 형주에 모여들게 되어 형주는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또 형주에 들어온 사람중에는 명사들이 있어, 형주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유표는 학문을 장려하였고, 송충이나 사마휘 등의 학자도 육성하게 되었다. 유표 자신도 유학자로서 당인(黨人)이었던 왕창(王暢)에게 사사하여, 젊을 적부터 유학자로서 알려져 “팔교”(八交) 혹은 “팔고”(八顧) 및 “팔우”(八友) 중 한 명에 뽑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표는 후계자 문제를 쉽게 결단내리지 못하여 훗날 그 사업이 그대로 조조에게 흡수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유표가 한숭으로 조조를 정탐하게 했는데, 한숭은 황제를 끼고 있는 조조를 만나게 되었다가 황제의 명을 받는 날에는 유표의 명령에 복종할 수 없게 되므로 거부했으나 유표는 기어이 한숭을 조조에게 보냈다. 돌아온 후 과연 한숭은 조조를 추켜올렸고, 유표는 한숭을 죽이려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또, 감녕을 쓰지 않아 결국 감녕이 손권의 부하가 되어 자신 수하의 황조를 잃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평가
진수는 《삼국지》에서 유표를 원소와 묶어 다음과 같이 평했다. “유표와 원소는 모두 위용이 있으며, 넓은 도량과 식견으로 이름이 당세에 알려졌다. 유표는 한남을 점거하고 섰으며, 원소는 하삭에서 웅위를 보였으나, 모두 겉으로는 너그럽고 속으로는 꺼리며, 모략을 좋아하나 결단이 없었으며, 재주가 있어도 쓰지 못하고, 좋은 것을 들어도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우고, 예의를 버리고 편애를 숭상했으니, 그 후사가 고통을 받고, 사직이 기울어져 엎어진 것이 결코 불행이 아니었다.”

즉 진수는 원소와 유표를 비슷한 자라고 생각하였다. 조조나 손권의 후계자 다툼에서도 서자를 후계로 세우는 것을 간언할 때 그 나쁜 사례로서 원소와 유표를 여러 번 썼다. 하지만 유종은 유표의 후계자로서 순조롭게 지위를 계승했고, 한편 유기는 유비를 의지하였다. 이 점에서 후계자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고 골육상쟁이 벌어졌던 원소 일족과는 다르다. 또한 형제가 조조와 유비에게 순순히 흡수되어 버렸던 것도 끝까지 조조에게 저항을 계속하던 원소 일족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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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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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름처럼 산다. 이것을 알고 삶이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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