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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 논의 과정을 보면
후한 말기 황건적 난 토벌에 참여한 군벌들은 황건적 토벌 후 그대로 군대를 유지하며 지역별로 세력을 유지 확장한다. 이 군벌은 최종적으로 조조의 위, 유비의 촉, 손권의 오 삼국으로 재편된다.
한나라 황실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허울 뿐
한나라 황실은 이미 조조의 지배하에 들어간 상태였다.
조조는 황제를 끼고 전국을 황제의 조칙을 빌미로 통치하며 중원 지방을 포함한 중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 지배 영역은 후한 13주 가운데 사예주, 연주, 청주, 예주, 서주, 기주, 병주, 유주, 양주(凉州)까지 9주에 이르렀으니 토지, 인구, 병력 등 종합적 국력에서 유비의 촉과 손권의 오를 훨씬 능가한다.
조조의 대를 이은 조조의 아들 조비는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220년 위왕조를 세운다.
이로써 한나라는 끝난다.
서촉 땅 익주를 근거지로 자리잡은 유비의 촉은 전한(前漢) 경제의 후손이라는 유비의 핏줄을 앞세운다.
유비의 촉나라는 혈통상으도 한나라의 정통성을 잇는 계승자라며 흥한(興漢)을 명분으로 내걸고 국호를 한(漢)으로 삼고 한나라 재건을 기치로 내건 바 있다.
그래서 유비의 촉을 촉한(蜀漢)이라 한다.
유비는 한나라 계승자라는 연속성을 강조하며 221년 촉한(蜀漢)을 세운다.
그렇다면 위나라와 촉나라 가운데 누가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봐야하는가?
한족의 주장을 보면 이렇다.
위나라를 한나라의 계승으로 보는 시각은 한 왕조 헌제로부터 선양이라는 적법한 형식을 거쳤으니 위나라가 한나라를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촉한을 한나라의 계승으로 보는 시각은 한 왕조 헌제로부터 위나라로의 선양은 사실상 강제에 의한 것이니 이는 참위(僭位). 즉, 한나라의 제위를 찬탈하여 황제에 오른 것으로 주장하며 한나라를 계승한 것은 혈통과 흥한(興漢)을 명분으로 건 유비의 촉한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의 과정을 거친 후 한족은 유비의 촉(蜀)나라가 한나라를 계승한 것으로 정리한다.
이렇게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확정된다.
삼국지는 촉한정통론에 의하여 쓰여진 소설
따라서, 아들 조비에 의하여 한나라의 제위를 찬탈하며 한나라를 망하게 한 위나라 조조를 악역으로 삼고
눈앞의 이익보다는 유교적 명분을 유지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았던 촉나라 유비와 촉나라 몇몇 인물, 제갈공명과 관우 등을 중점적으로 미화하고 띄움으로써
북방민족에게 461년 오랜 세월동안 지배를 받고 있던 백성을 다시 유교를 구심점으로 한족의 일체성을 회복하고
유교의 상하관계의 질서를 다시 확인하고
삼국지 자체의 재미있는 이야깃꺼리도 제공하는 복합적 필요성에서 삼국지는 쓰여진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삼국지를 읽는 독자는 촉한정통론에 의하여 쓰여진 소설의 허구가 어떤 것인지를 분별하며 보는 것도 묘미일 것이다.
촉한정통론에 의해 쓰여진 삼국지 허구의 장면을 널리 알려진 몇가지를 보면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의한 유비를 인자로운 인물로 띄우기 위한 예는 이렇다.
황건적 난을 진압 한 후 유비는 안희현 현위로 부임한다.
유비를 시찰 나온 독우가 뇌물을 요구하며 부당한 처사를 계속하자 열받은 장비가 독우를 매질하는 삼국지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허구다.
사실은 장비가 팬 것이 아니라 유비가 때린 것이다.
하지만 인자한 군자의 대표적 표상으로 촉한정통론에 의한 유교적 구심점의 인물로 낙점 된 유비가 열받아서 매질을 하게 할 수 없지 않은가?
관우에 대한 허구 장면.
관우가 전국적 용장으로 등극하게 되는 컷.
낙양을 점령하고 폭정을 일삼는 동탁을 치기위해 17지방 군벌들이 동탁 토벌연합군을 결성하고 동탁을 치러 낙양으로 진군한다.
양군이 대치하고 첫 싸움으로 동탁군에서는 여포의 부장인 화웅이 나서 동탁 토벌연합군의 장수 여러명을 순차적으로 가볍게 제압한다. 이후 연합군
에서는 화웅과 맞서 싸우려는 장수가 나서지 않게 되고 사기가 떨어져 가는 순간
관우가 나선다.
그리고 관우가 화웅의 목을 술잔이 식기도 전에 베어 오는 장면은 관우를 일약 전국구 스타로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화웅을 벤 것은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에 의하면 관우가 아니라 손견이다.
또 하나 관우를 의리의 대명사로 만드는 컷.
조조에게 투항해 있던 관우가 유비의 거처를 알 게 되자 조조를 떠나며 다섯 관문의 장수를 베는 장면도 역사적 사실엔 없다.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에서는 관우가 도망갔다고 짧게 기록되어 있다. 관우가 소설 속 다섯 관문을 지나가는 과정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서 본다면 있을 수 없는 일. 그때는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존폐를 놓고 쌍방 백만이 넘는 대군이 진을 치고 큰 싸움을 벌이 던 상황인데 그 전장의 중심을 관우가 홀로 유비의 두부인을 모신 마차를 이끌며 남에서 북으로 다시 북에서 남으로 관도 전장터를 이리저리 지났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과장의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제갈공명에 대한 허구 장면.
적벽대전 컷에서 안개가 자욱한 날 공명은 지붕을 짚으로 덮은 배를 끌고 조조에게 접근한다. 놀란 조조가 화살을 무수히 쏘고 화살은 뱃지붕의 짚에 꽂힌다. 공명은 노숙과 배 안에 앉아서 한가로이 술을 마시는 동안 짚으로 덮은 배의 지붕에 화살 10만개가 꽂힌다.
이렇게 조조로부터 화살 10만개를 얻어 오는 장면도 허구이다.
단지, 이와 유사한 장면을 본다면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에서 손권이 조조와의 전쟁 중에 손권의 배가 조조가 쏜 화살을 잔뜩 맞아서 배의 중심이 화살을 맞은 한쪽으로 몰려 침몰하려 하자 손권은 황급하게 배를 반대로 돌려서 화살을 잔뜩 맞아 균형을 잡은 후 돌아오는 장면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촉한정통론에 의해서
유비, 관우, 제갈량이 아주 멋지게 한 것으로 소설화 된 허구의 예나 다른 인물들의 실제 사실과 소설 속 장면이 다른 예는 이후 본문에서 차차 설명한다.
한마디로 유비, 관우와 함께 제갈량은 삼국지 소설이 쓰여지던 당시의 촉한정통론이라는 중국의 정치적 유익 때문에
삼국지의 스타로 부상한 인물이고
가장 큰 피해자는 조조이며 그 외의 인물들도 있다.
이와 같은 삼국지 소설 속 촉한정통론에 의하여 쓰여진 허구가 어떤 것인지를 독자가 직접 분별하는 노력까지 별도로 해야한단 말인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
삼국지 소설 속 허구는 이름삼국지를 전개하면서 수시로 비교 확인할 것이므로 !
누구나 이름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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