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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 - 맨주먹으로 한중왕이 된 대기만성형
  글쓴이 : 발행인     날짜 : 13-02-20 00:16    

이름경영 하라.
누구나 이름처럼 산다. 이름은 인생의 좌우명
더 좋은 방법, 제대로 된 이름과 기독교 신앙을 갖는 것

기독교인 작명/개명 전문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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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명함 

 
 

유비 63세 161년 ~ 223년 4월

중국민족은 한(韓)족이다.

한(韓)족은 한(韓)나라의 후손이란 뜻이다.

한나라는 전한(서한), 후한(동한)을 거치며 중국역사 상 한(韓)민족이 세운 나라 가운데 가장 긴 426년을 이어 간다. 이후 한족이 세운 통일국가 수(隋) 37년, 당(唐) 289년, 송(宋) 319년, 명(明) 276년과 비교해 보아도 한나라의 426년 존속은 더 긴 것이다.

이렇게 중국역사에서 한나라의 위상은 중요한 것이다.

삼국지는 14세기 원말 ~ 명초기 때 인물인 나관중이 쓴 소설로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에 의해 쓰여진 것입니다.
촉한정통론에 대한 설명은 좀 이따 하겠습니다.
나관중이 소설을 쓰던 때는 북방민족 몽골족이 만든 나라 원이 중국 땅 중원을 차지하고 한족을 지배하던 때.

중국 한족의 근원이며 자부심인 한(韓)나라 426년 세월 보다 요(遼 : 907년)부터 원(元 : 1368년)까지 네 번의 북방민족이 지배한 세월이 461년이니, 한나라 426년 세월 보다 북방민족에게 한족이 지배 당한 세월이 35년이나 더 길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긴 세월을 북방민족에게 한족은 지배당한 것이다. 한족이 오랑케라고 말하는 이민족에게 말이다.

중원 땅을 점령하고 한족을 지배한 북방민족이 세운 나라를 보면

몽골족의 일족인 거란족이 세운 요(遼 : 907년 ~ 1125년), 티베트 계통의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 : 1032년 ~ 1227년), 퉁구스족 계통의 여진족이 세운 금(金 : 1115년 ~ 1234년), 몽골족이 세운 원(元 : 1279년 ~ 1368년)나라가 461년 동안 한족을 지배한다.

당(唐) 멸망 후 등장한 오대십국(五代十國)의 분열을 통일하고 한족이 세운 송(宋)나라가 북송(北宋 : 960년 ~ 1127년)과 남송(南宋 : 1127년 ~ 1279년)으로 한족의 나라로서 존재했지만 한족의 자부심이 깃든 강력했던 통일국가 당(唐)나라 멸망 후 이어지는 오대십국의 끝자락인 십국(十國 : 902년 ~ 979년)의 초기 907년부터 중원은 이미 북방민족이 세운 나라의 차지가 된 후 461년 동안 한족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한(漢)족은 통치의 주체로 본다면 한족 역사상 가장 긴 세월 461년 동안 북방민족들에게 중원땅을 빼앗기고 지배를 당하면서 한족은 존폐의 위기에 처한다. 한족 최대의 시련기에 국력을 모으기 위해 가장 중국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내 세울 필요가 있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약 1,200년 전 이야기인 삼국지의 인기가 여전한 것에 주목하고 삼국지 이야기를 그 소재로 잡는다. 그리고, 한족은 진시황제가 최초로 중국 땅을 통일한 진(秦)나라가 아닌 진나라 다음으로 왕조를 세운 유방의 한(漢)나라를 자신의 뿌리로 보게 된다. 그래서 한(漢)족이다. 그후 이어진 정치적 작업은 그렇다면 후한 이후 등장한 위, 촉, 오 삼국 가운데 어느 나라를 한나라의 계승국가로 볼지로 모여졌고 여러 논의를 거치면서 유비의 촉한(蜀漢)을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은 국가로 보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것이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

촉한정통론 논의 과정을 보면

후한 말기 황건적 난 토벌에 참여한 군벌들은 황건적 토벌 후 그대로 군대를 유지하며 지역별로 세력을 유지 확장한다. 이 군벌은 최종적으로 조조의 위, 유비의 촉, 손권의 오 삼국으로 재편된다. 한나라 황실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허울 뿐. 한나라 황실은 이미 조조의 지배하에 들어간 상태였다.

조조는 황제를 끼고 전국을 황제의 조칙을 빌미로 통치하며 중원 지방을 포함한 중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 지배 영역은 후한 13주 가운데 사예주, 연주, 청주, 예주, 서주, 기주, 병주, 유주, 양주(凉州)까지 9주에 이르렀으니 토지, 인구, 병력 등 종합적 국력에서 유비의 촉과 손권의 오를 훨씬 능가한다. 조조의 대를 이은 조조의 아들 조비는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220년 위왕조를 세운다. 이로써 한나라는 끝난다.

서촉 땅 익주를 근거지로 자리잡은 유비의 촉은 전한(前漢) 경제의 후손이라는 유비의 핏줄을 앞세운다. 유비의 촉나라는 혈통상으도 한나라의 정통성을 잇는 계승자라며 흥한(興漢)을 명분으로 내걸고 국호를 한(漢)으로 삼고 한나라 재건을 기치로 내건 바 있다. 그래서 유비의 촉을 촉한(蜀漢)이라 한다. 유비는 한나라 계승자라는 연속성을 강조하며 221년 촉한(蜀漢)을 세운다.

그렇다면 위나라와 촉나라 가운데 누가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봐야하는가?

한족의 주장을 보면 이렇다.

위나라를 한나라의 계승으로 보는 시각은 한 왕조 헌제로부터 선양이라는 적법한 형식을 거쳤으니 위나라가 한나라를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촉한을 한나라의 계승으로 보는 시각은 한 왕조 헌제로부터 위나라로의 선양은 사실상 강제에 의한 것이니 이는 참위(僭位). 즉, 한나라의 제위를 찬탈하여 황제에 오른 것으로 주장하며 한나라를 계승한 것은 혈통과 흥한(興漢)을 명분으로 건 유비의 촉한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의 과정을 거친 후 한족은 유비의 촉(蜀)나라가 한나라를 계승한 것으로 정리한다.

이렇게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확정된다.

이 촉한정통론에 따라서 한나라의 제위를 찬탈하며 한나라를 망하게 한 위나라 조비의 아비가 되는 조조를 악역으로 삼고, 눈앞의 이익보다는 유교적 명분을 유지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았던 촉나라 유비와 촉나라 몇몇 인물, 제갈공명과 관우 등을 중점적으로 미화하고 띄움으로써 북방민족에게 461년 오랜 지배를 받고 있던 백성을 유교를 구심점으로 다시 한족의 일체성을 회복하고, 유교의 상하관계의 질서를 다시 확인하며 유지하고, 삼국지 자체의 재미있는 이야깃꺼리도 제공하는 복합적 필요성에서 삼국지는 쓰여진 것이다.

유비는 오랫동안 정의의 사자이자, 한 황실 정통성의 대명사로 통했다.
유비의 명성과 인덕의 경우는 정사의 여러 기술에서도 기술된 바가 있다.

연의에서는 당시 민중의 성군상과 유교적인 영웅을 묘사하기 위해 본인의 능력보단 그릇과 덕,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을 강조하여 묘사한 바가 있고

현대에 들어 유비에 대한 재 평가가 이뤄지면서 일부 학자들에게 무능한 군주였다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실제로 유비와 그의 부하들과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었던 면이 있으며
살아서 치렀던 대부분의 전투의 지휘와 정책의 시행은 유비 그 자신이 총괄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하후돈의 대군을 박망파에서 격파한 것도 제갈량이 아니라 유비였으며,
진수(陳壽)의 정사는 적벽대전에서 싸운 우두머리 중 하나로 유비를 기록하고 있고,
조조의 말년에는 한중을 방어하려 하는 조조의 친정 대군을 격파하는 등 여러 번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유비의 군사적 능력은 이릉 대전에서 진 것으로 인해 빛이 바랜 바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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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유현덕 이름의 이름지수 결론은
인생4구간 이름의 이름지수로
권위, 군림, 순풍괘범, 전진, 치밀, 정착이다
속마음 이름지수는 군림, 집안, 희망, 여행이다

유비 인생전체를 관통하는 이름의 이름지수
권위, 군림, 순풍괘범, 전진, 치밀, 정착, 집안, 희망, 여행 때문에 늦기는 했지만 61세 221년 건안 26년 4월 6일. 한漢나라 왕이된다.

이름지수 권위는 권위가 있음, 유비는 늦은 나이 때까지 근거지가 없이 살면서도 권위를 잃지 않았다.

이름지수 군림은, 새로운 때가 오니 바르게 마음을 갖고 행동하면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니 유비는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를 다 물리치면서 늘 명분까지 이뤄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지도자가 되려했다.

이름지수 순풍괘범은, 순풍에 돛단듯이 잘나감. 뭐든 성실하게 열과 성을 다해 결실을 맺음. 넓은 아량과 덕성. 지혜있고 의지견고함. 꿈과 희망 원대함. 뛰어난 지모와 책략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순풍에 돛단 듯 순항하는 성격. 유비와 참 잘 어울린다.

이름지수 전진은, 앞으로 나가는 것.
이름지수 치밀은, 매사에 신중하고 법도에 어긋남이 없음. 유비와 참 잘 어울린다. 유비는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를 다 물리치면서 늘 명분까지 이뤄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치밀하게 지도자가 되려했다.

이름지수 정착은, 갈 곳을 찾음. 자리를 잡음. 결혼을 잘함.

이름지수 집안은, 같은 뜻의 동지를 모아 나라를 일으키는 이름지수.

이름지수 희망은,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지만 미래의 가능성과 희망 , 새로운 목표를 놓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크게 형통한 상황을 만들면 태양이 드 높이 떠서 만물을 비추게 되니 큰 부자, 대기업, 큰 업적/실적 통치자가 되는 이름지수.

이름지수 여행은, 찾아다니는 이름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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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나이 인생1구간 이름의 이름지수는 모도,추앙,다익다실,도회,희망,여행이다

유비(류베이, 劉備, 161년 6월 7일 ~ 223년 4월 24일)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초대 황제(221년 4월 6일 ~ 223년 4월 24일)로, 자는 현덕(玄德), 시호(諡號)는 소열제(昭烈帝)이다. 삼국지(三國志)에서는 조위(曹魏)가 한실(漢室)의 대통(大統)을 계승한 정통 황조(皇朝)라 보았으므로 유비를 황제(皇帝)로서 존칭(尊稱)하지 않고 촉한(蜀漢) 선주(先主)라고 부른다. 진서(晉書) 열전에서 유비의 묘호를 열조(烈祖)라고 칭한 바가 있으나 이것은 그의 정식 묘호(廟號)가 아닌, 후세사가들이 추봉한 묘호이다. 황건적 평정 이후 한창 세력이 상승할 때는 유예주(劉豫州), 유좌장군(劉左將軍), 의성정후(宜城亭侯)라고도 불리었다.

전한(前漢) 경제(景帝)의 7남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수십 명의 아들들 중 한 명인 육성정후(陸城亭侯) 유정(劉貞)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지의 흔한 군웅들과는 달리 뚜렷한 기반 없이 출발하였으나 한 고조(漢 高祖)의 풍도를 가지고 관우(關羽), 장비(張飛), 마초(馬超), 황충(黃忠), 조운(趙雲), 위연(魏延), 제갈량(諸葛亮), 방통(龐統), 법정(法正), 황권(黃權), 이엄(李嚴), 마량(馬良) 등의 걸출하고 유능한 천하 각지의 인재(人才)·기재(奇才-기이한 재주 또는 이를 갖춘 사람)들을 차례대로 등용하여 당대 중원(中原)의 패자였던 위(魏) 무제(武帝) 조조(曹操)와 끝까지 맞서 싸워 촉한(蜀漢)을 건국하였다.

유비는 탁군 탁현(지금의 허베이 성 바오딩 시 줘저우 시) 출신으로, '한나라의 황손'으로 기록되었으며, 팔이 길어 그대로 뻗어 무릎까지 닿고, 귀도 남달리 커서 거울을 사용하지 않고도 자신의 귀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려서 아버지 유홍을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짚신과 멍석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나갔다. 집안 동남쪽에 높이 5길이 넘는 뽕나무가 있어 가마 덮개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 집에서 귀한 인물이 날 것이다”라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유비도 이 나무에 올라가 놀면서 “나도 이러한 덮개가 달린 가마(황제의 가마)를 탈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숙부 유자경은 "함부로 말하지 마라. 구족이 멸한다." 고 주의를 시켰다고 한다.

15살 때 유학길에 올라 노식(盧植)의 문하에서 수학한다. 이때 공손찬(公孫瓚)도 유비와 함께 공부했다. 그러나 유비는 독서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았고 개나 말 같은 동물들을 좋아하며 화려한 의복을 걸치거나 음악을 듣는 데에 몰두했다. 소싯적부터 명마(名馬)를 감별할 줄 알았으며 항상 말수가 적고, 늘 남을 공손히 대하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황건의 난 때 장각(張角)은 청주, 유주, 서주, 기주, 양주, 연주, 예주, 형주 등으로 세력을 점점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혼란한 시기에 유비는 기꺼이 천하호걸과 교류했으므로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그의 밑으로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 관우와 장비도 있었고, 세 사람은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한다.

유비는 맨주먹으로 한중왕에 오른 대기만성형.

유비의 나이 인생1구간 이름의 이름지수는 모도,추앙,다익다실,도회,희망,여행이다.

모도는 큰 그릇의 이름지수이다.

여행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이것저것 생각을 하고 준비하는 이름지수로 15살 때 유학길에 올라 노식(盧植)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교제한다.

유비의 집안 동남쪽에 높이 5길이 넘는 뽕나무가 있었는데 가마 덮개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 집에서 귀한 인물이 날 것이다”라고 예언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유비도 이 나무에 올라가 놀면서 “나도 이러한 덮개가 달린 가마(황제의 가마)를 탈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름지수 도회, 희망.

모도, 도회, 희망, 추앙의 이름지수가 유비를 지역 유협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게 했다.  

유협
유사(游士)와 협객(俠客)을 합친 유협들의 집단이라는 말이지만 실상은 권력의 공백기에 나타난 폭력 집단이다.
적당히 힘도 있고 젊은 데 선비가 되거나 농사를 짓기도 싫은 젊은이들이 마침 세상이 혼탁하니 일반인들을 힘으로 보호해 적당히 대가를 뜯어내고 사람들간의 은원 문제도 해결해주고 하던 무리들이다.
대표적인 유협 집단의 두목이 유방. 유방은 중국까지 통일했고 중국 왕조 역사상 최초의 백성 출신 황제가 되었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도 유협집단의 우두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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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나이 인생2구간 이름의 이름지수는 권위,군림,다익다실,도회,완성,풍성

황건적의 난에서 형주 웅거까지
영제 말, 황건의 난이 일어나자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주군(州郡)에서 모집한 의병들을 이끌고 교위인 추정의 군대에 가담해 황건적들을 토벌하여 그 공적으로 안희현위(安喜縣尉)에 임명되었다. 독우가 공무 때문에 안희로 왔을 때 유비가 독우에게 만나기를 청했지만 거절당하고 이에 곧바로 독우가 거처하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 곤장을 들고 200대를 때렸다. 그리고 인수를 풀어 독우의 목에 걸고 그를 말뚝에 묶은 다음 관직을 버리고 달아났다.

얼마 후 유비는 단양에서 병사를 모집하는 임무를 맡은 도위(都尉) 관구의(毌丘毅)와 행동을 같이하다가 하비에서 적을 무찌른 공로로 하밀승(청주 북해국 하밀현의 현승)에 제수되었지만 다시 관직을 버리고 만다. 그 뒤 유비는 고당위(청주 평원국 고당현의 현위)에 임명되어 현령으로 승진 하지만, 적에게 격파되어 공손찬에게로 달아난다.

공손찬의 부하시절공손찬은 유비의 동문으로 유비에게는 거의 친형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밀한 존재였다. 공손찬은 유비를 별부사마(別部司馬)에 임명하고 청주자사 전해(田楷)와 함께 기주목 원소 (袁紹)와 싸웠는데, 그가 자주 전공을 세웠으므로 그를 평원의 상(相)으로 임명했다.

23세 184년 중평 원년. 황건적을 진압하고 안희현 현위로 임명 됨
30세 191년 초평 2년. 공손찬의 천거로 평원상相이 됨

유비의 나이 인생2구간 이름의 이름지수는 권위,군림,다익다실,도회,완성,풍성

도회는 [도회 韜晦 (韜 감출 도 晦 그믐 회) 강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숨겨진 상황 또는 스스로 숨은 상황],
다익다실은 [다익다실 多益多失 얻는 것도 많지만 잃는 것도 많은 이름의 이름지수] 이다.

여론과 인덕은 얻고 아직 정착할 근거지는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이름의 이름지수가 도회와 다익다실이며

권위,군림,완성,풍성은 다익다실과 도회로 깔아 논 이름값을 받아서 부족함 없이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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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나이 인생3구간 이름의 이름지수는 통솔,박락,반반,괴리,믿음,점진이다.

조조가 서주를 정벌하자 서주목 도겸(陶謙)이 전해에게 구원을 요청해 왔으므로 유비는 전해와 함께 도겸을 돕는다. 이때부터 전해 밑을 떠나 도겸에게 몸을 의지하여, 예주자사에 임명된 후 소패에 주둔하였으며, 도겸이 죽은 후에는 주위의 권유를 받아 서주를 지배하게 된다.

공손찬 사후196년(건안(建安) 원년) 유비는 조조로부터 진동장군에 임명되어 원술(袁術)과 대치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하비의 수장인 조표가 배신하여 여포(呂布)를 불러들였고, 여포는 하비를 기습하여 유비의 처자를 사로잡는다.

유비가 여포에게 화친을 구하자 여포는 유비의 처자를 유비에게 되돌려보내고 유비는 소패로 돌아온다. 그러나 소패로 돌아온 유비가 1만여 명의 병사를 모집하자 여포는 이를 꺼림칙하게 생각하여 유비에게 공격을 감행하였다. 유비는 패주하여 조조에게 귀부 하였는데, 조조는 유비를 후대하여 예주목으로 삼았고 유비가 소패에서 군사를 모아 여포를 견제하는 것을 지원하였다. 이에 여포는 고순을 보내 소패를 공격하였고 조조는 하후돈(夏侯惇)을 지원군으로 보냈으나 결국 유비와 하후돈은 고순에게 패배하여 다시 유비의 처자는 사로잡혀 여포에게 보내진다.

10월, 이에 조조는 친히 여포를 정벌하여 유비와 함께 여포를 하비에서 포위하여 사로잡고 여포를 참형에 처한다. 여포가 자신을 살려 쓰도록 조조에게 말하여 조조가 의심을 품자, 유비는 여포가 행한 패악을 조조에게 말했고 조조도 이에 동의했다.

[조조의 부하시절]

유비는 조조와 함께 허도(許都)로 귀환해 좌장군에 임명되고 조조에게 후한 대우를 받았다. 유비가 왔을 때 조조의 참모 정욱(程昱) 등은 “유비는 영웅의 자질이 있고 민심을 얻고 있으므로 남을 섬길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하여 죽일 것을 권하지만 조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3] 그 무렵 헌제의 국구인 거기장군 동승(董承)이 조조를 주살하라는 밀칙을 받고, 유비도 은밀히 이 계획에 가담했다. 어느 날 조조는 유비를 식사에 초대해 “지금 천하에 영웅이 있다면 그대와 나뿐이다.”라고 말했다. 유비는 이 말을 듣고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화양국지(華陽國志)》에 따르면, 이때 천둥이 쳤기 때문에 유비는 그 탓으로 돌렸는데, 이것은 《삼국지연의》에서도 똑같이 기술된다. 그래서 유비는 조조 주살 계획이 탄로나기 전에 원술 토벌을 빙자해 서둘러 조조 밑을 떠난다. 그리고 원술을 멸한 후 유비는 하비를 점거하고 서주자사 차주(車胄)를 죽인 후 관우를 남겨 하비를 수비하게 한 뒤 소패로 돌아온다. 이때 군현들 다수가 조조를 배반하여 유비의 군세는 수만 명에 이르렀다. 유비는 세력을 키움과 함께 손건을 원소에게 사신으로 보내 조조에 대항하는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원소의 부하시절]

조조는 왕충(王忠)과 유대(劉岱)를 보내 유비를 공격하나 패배하게 된다. 200년 조조는 유비를 토벌하고, 유비는 또 다시 패배하여 청주로 달아났다. 당시 청주자사 원담은 유비가 예전에 무재로 천거한 적이 있어 군사를 보내 유비를 맞아보내고 원소에게 이를 알렸다. 원소는 장수를 보내 유비를 영접하고 업(鄴)에서 2백 리(80km) 떨어진 곳까지 가 유비를 만나는 등 유비를 대단히 환영했다. 전투에서 승리한 조조는 유비의 처자를 붙잡고 관우를 사로잡아 돌아온다. 이 때,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대치하게 되는데, 여남의 황건적 유벽 등이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원소에게 호응하자 원소에게 파견되어 유벽 등과 함께 허 아래를 약탈하였고, 이때 조조에게서 달아난 관우가 돌아왔다. 조조가 조인을 보내 유비를 공격하자 유비는 원소에게 돌아갔다.

유비는 원소 밑을 벗어나려고 원소에게 형주의 유표(劉表)와 협공하도록 진언하였다. 이리하여 원소는 유비를 여남에 파견하여 황건적 공도의 무리와 합쳐 수천 명의 병사를 이끌어 여남에 진을 치고, 조조는 채양(蔡陽)을 시켜 공격하지만 채양은 패배하고 전사한다. 조조는 원소를 격파한 후 몸소 남하해 유비를 격파하였다.

[유표의 빈객]

유비는 유표 밑에 몸을 의지한다. 유표 역시 교외에서 직접 유비를 영접하는 등 유비는 상빈으로서 대우받았고, 유표는 유비에게 군사를 주어 신야에 주둔하게 한다. 그러나 이 후 형주의 호걸 중에 선주에게 귀부하는 자가 날로 더욱 많아지자, 유표는 그의 마음을 의심하여 은밀히 제어하였다.

배송지가 《삼국지》에 주석으로 인용한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유비가 주연 석상에서, 변소에 가서 허벅지에 살이 찐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 자국을 본 유표가 그 이유를 묻자 “나는 항상 말안장에서 떠나본 일이 없기 때문에 허벅지에 살이 찌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말에 오르지 않아 벌써 허벅지에 살이 붙고, 세월이 흘러 노년에 가까운데 아무런 공적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한탄한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유명한 ‘비육지탄(脾肉之嘆)’이란 고사다. 또한 유표의 부하 괴월(蒯越), 채모(蔡瑁) 등이 연회를 이용해 유비를 살해하려고 하자 유비는 적로를 타고 힘을 내라며 다그치자 놀랍게도 3길이나 뛰어올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5] 배송지는 또 이 일이 실제로는 없었을 것이라는 손성의 비판을 뒤에 덧붙였다.

[삼고초려]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을 통솔할 군사(軍師: 군대의 우두머리)가 없어 늘 조조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인 사마 휘에게 군사를 천거(薦擧)해 달라고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룡이나 봉추 중 한 사람만 얻으시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對答)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 량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즉시 수레에 예물을 싣고 양양 땅에 있는 제갈량의 초가집을 찾아 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다. 그 열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가 되어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33세 194년 흥평 원년 봄. 도겸을 구하고 소패에 주둔. 겨울 도겸이 죽자 서주목이 됨
관련 이름지수는 믿음, 통솔

34세 195년 흥평 2년. 조조가 여포를 대파하고 연주를 치자 여포는 유비에게 몸을 의탁 소패에 주둔 함
관련 이름지수는 반반, 괴리

35세 196년 건안 원년. 유비가 원술과 싸우는 틈에 여포가 서주를 탈취. 여포는 유비에게 소패에 주둔하게 함. 여포가 유비를 공격하자 유비는 달아나 조조에게 의탁. 조조는 표表를 올려 유비를 예주목으로 삼게 함
관련 이름지수는 박락, 괴리

박락은 [박락 剝落 剝 벗길 박 , 깍아 내릴 박 落 떨어질 락(낙)],
괴리는 [괴리 乖離 괴리가 있음, 문제가 있음, 큰 사고]를 뜻하는 이름지수이다.

38세 199년 건안 4년. 유비가 거기장군 동승 등과 조조를 주살하기로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함.
관련 이름지수는 괴리

39세 200년 건안 5년.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자 유비는 패하여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고 관우는 조조에게 투항 함. 같은해 관우는 유비에게 다시 돌아 옴  
관련 이름지수는 박락, 괴리

40세 201년 건안 6년. 조조가 여남의 유비를 정벌하자 유비는 패하여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하고 유표는 유비를 신야에 주둔하게 함
관련 이름지수는 박락, 괴리, 믿음, 점진

이름지수 통솔, 믿음, 점진은 제갈량을 얻은 것과 형주에 근거지를 확보하고 서촉을 도모하여 익주를 얻은 것을 있게 한 이름지수로
통솔, 믿음, 점진 이름지수는 유비 인생 4구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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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의 나이 인생말년까지 + 인생전체 이름의 이름지수를 보는
인생4구간 이름의 이름지수는 권위, 군림, 순풍괘범, 전진, 치밀, 정착이다
속마음 이름지수는 군림, 집안, 희망, 여행이다

유비 인생전체를 관통하는 이름의 이름지수
권위, 군림, 순풍괘범, 전진, 치밀, 정착, 집안, 희망, 여행 때문에 늦기는 했지만 61세 221년 건안 26년 4월 6일. 한漢나라 왕이된다.

이름지수 권위는 권위가 있음, 유비는 늦은 나이 때까지 근거지가 없이 살면서도 권위를 잃지 않았다.

이름지수 군림은, 새로운 때가 오니 바르게 마음을 갖고 행동하면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니 유비는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를 다 물리치면서 늘 명분까지 이뤄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지도자가 되려했다.

이름지수 순풍괘범은, 순풍에 돛단듯이 잘나감. 뭐든 성실하게 열과 성을 다해 결실을 맺음. 넓은 아량과 덕성. 지혜있고 의지견고함. 꿈과 희망 원대함. 뛰어난 지모와 책략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순풍에 돛단 듯 순항하는 성격. 유비와 참 잘 어울린다.

이름지수 전진은, 앞으로 나가는 것.
이름지수 치밀은, 매사에 신중하고 법도에 어긋남이 없음. 유비와 참 잘 어울린다. 유비는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를 다 물리치면서 늘 명분까지 이뤄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치밀하게 지도자가 되려했다.

이름지수 정착은, 갈 곳을 찾음. 자리를 잡음. 결혼을 잘함.

이름지수 집안은, 같은 뜻의 동지를 모아 나라를 일으키는 이름지수. 같은 뜻의 동지를 모아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이름지수.

이름지수 희망은,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지만 미래의 가능성과 희망 , 새로운 목표를 놓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크게 형통한 상황을 만들면 태양이 드 높이 떠서 만물을 비추게 되니 큰 부자, 대기업, 큰 업적/실적 통치자가 되는 이름지수.

이름지수 여행은, 찾아다니는 이름지수. 

47세 207년 건안 12년.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영입

48세 208년 건안 13년 8월. 유표가 죽고 작은 아들 유종이 계승하지만 조조에게 투항. 번성에 있던 유비가 남으로 달아나다 장양에서 참패. 한수를 건너 유표의 장남 유기와 만나 하구에 이름.  제갈량은 사신으로 오나라 손권을 찾아가고 손권과 유비가 연합하여 적벽에서 조조군과 대치. 11월 손권과 연합하여 조조를 크게 이기고 형주의 강남 4군[무릉,장사,영릉,계양]을 손에 넣음

49세 209년 건안 14년. 손권의 여동생을 아내로 맞이 함

53세 213년 건안 18년 5월. 익주 유장의 군대를 연거푸 무찌르지만 이 과정에서 모사 방통을 잃음

54세 214년 건안 19년 5월. 유장을 항복시키고 익주목이 됨

59세 219년 건안 24년 12월. 형주를 오나라에 잃은 관우가 아들과 함께 체포되어 살해 됨

61세 221년 건안 26년 4월 6일. 한漢나라 왕이 됨. 연호를 장무로 고침

61세 221년 장무 원년 7월. 오나라 정벌군을 일으킴. 장비가 부하에게 살해당함

63세 223년 장무 3년 4월. 영안궁에서 유비는 병사한다

유비의 나이 인생말년까지 + 인생전체 이름의 이름지수를 보는 인생4구간 이름의 이름지수는 권위,군림,순풍괘범,전진,치밀,정착이다.

무일푼 맨주먹으로 한중왕까지 이룬 것은 권위,군림,순풍괘범,전진,치밀,정착 이름의 이름지수때문이다.

특히 군림,순풍괘범,전진,치밀,정착 이 이름의 이름지수는 유비가 죽은 후에 삼국지 스타로 후세에서 추앙 받게 된 이름이 이름지수이기도 하니 이름은 죽어서도 남고 그 이름의 이름지수는 죽어서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적벽의 싸움에서 삼국성립까지]

조조는 하후돈과 우금(于禁)에게 유표를 공격하라 명을 내렸는데, 유비가 박망 지역에서 이를 막아낸다. 유비는 자기 진영을 불태우고 도망가는 것처럼 꾸미고 복병을 써서 그들을 완전히 격파했다. 208년 유표가 죽자 채모는 조조에게 항복하고, 이에 따라 유종도 항복하고 만다. 제갈량은 “채모와 유종을 없애고 형주를 지배해야 한다”라고 진언했지만 유비는 듣지 않았다.

형주 주민의 상당수가 유비를 따라나서 하루에 겨우 10리(4km) 정도밖에 행군하지 못했다. 그래서 유비에게 “먼저 행군하여 강릉을 지켜야 한다”라고 진언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유비는 “지금 사람들이 나만 의지하고 있는데, 어찌 이들을 버리고 갈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것은 유비 이름지수 군림과 치밀에 대한 올바른 이름경영이다.

이름지수 치밀은, 매사에 신중하고 법도에 어긋남이 없음.
군림 이름지수 내용은, 새로운 때가 오니 바르게 마음을 갖고 행동하면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니 유비는 형주를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물리치면서 늘 명분까지 이뤄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지도자가 되려했던 것이다.

조조가 기병 5천 명을 급파했기 때문에 유비는 당양의 장판교에서 추격당해 크게 패하고 만다. 하지만, 유비 이름지수는 끝내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이름지수들로 이뤄졌으니 훗날을 도모할 기회를 다시 잡는다. 유비는 유표의 큰아들 유기(劉琦)가 있는 하구로 도망쳤다.
그 후 유비는 손권(孫權)과 동맹을 맺어 적벽에서 조조의 대군을 격파했다. 이름지수 집안. 집안은 같은 뜻의 동지를 모아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이름지수.
그리고 유기를 형주 자사로 천거하는 한편, 무릉, 장사, 계양, 영릉 등 4군을 평정하였다. 그 후 유기가 죽자 군신들은 유비를 형주자사로 추대했으므로 손권은 유비를 두려워해 자기 여동생인 손부인(孫夫人)과 결혼시켜 유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 애 썼다.
유비가 형주자사로 추대 된 것은 이름지수 권위, 군림.
이름지수 군림은, 새로운 때가 오니 바르게 마음을 갖고 행동하면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니 유비는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를 다 물리치면서 늘 명분까지 이뤄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지도자가 되려했죠? 드디어 형주 거점을 마련합니다.
손권이 자기 여동생인 손부인(孫夫人)과 결혼시켜 유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 애 쓴 것은 유비 이름지수 정착이다.
이름지수 정착은, 갈 곳을 찾음. 자리를 잡음. 결혼을 잘함.

유비 나이 51세 때인 211년 익주자사 유장(劉璋)이 조조의 침공을 두려워하자 유장의 별가종사였던 장송(張松)은 유비로 하여금 장로(張魯)를 토벌하게 하자고 진언했다. 이를 받아들인 유장은 법정(法正)을 유비에게 파견했다. 그러나 실은 장송이나 법정 모두 유비를 익주의 새 주인으로 맞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촉의 지형, 병기, 인마의 적고 많음 등의 정보와 지도를 제공한 장송의 행동에서 추측할 수 있다. 드디어 유비는 부군사 중랑장 방통(龐統)과 함께 익주로 들어서고, 유장은 몸소 마중나와 맞이했다. 유장은 유비를 행대사마 겸 사례교위로 천거하고 병사를 증강시켜 백수의 주둔군을 지휘하도록 했다. 유비는 곧바로 장로를 토벌하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인심 장악에 힘을 썼다. 유비 이름지수 치밀.  

유비 나이 51세 때인 211년 조조가 손권을 토벌하자 손권은 유비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므로 유비는 유장에게 1만 명의 병사와 군수 물자를 요청했다. 그러나 유장은 늙은 병사 4천 명과 요구한 군수 물자를 절반 밖에 보내지 않아, 이에 유비는 격노했다. 때 마침 장송은 “지금 촉 공략을 앞에 두고 어찌해서 떠나려는 것인가?”라는 내용의 편지를 유비에게 보내려고 하는데, 형 장숙(張肅)이 이 사실을 유장에게 알려 장송이 처형된다. 이때부터 유비와 유장의 사이는 매우 악화되었다. 유비는 백수관을 지키는 양회(楊懷), 고패(高沛)를 참살한다. 유비는 지름길로 관중에 이르러서, 여러 장수들과 군사와 처자들을 인질로 잡고, 병사를 이끌고 황충(黃忠), 탁응 등과 함께 진격해 부성(涪城)에 도착하여 그 성을 점거했다. 유장이 유괴(劉璝)·냉포(冷苞)·장임(張任)·등현(鄧賢) 등을 보내 부성에서 유비를 막게 했지만 모두 격파되어 패하여, 퇴각하여 면죽(緜竹)을 보전했다. 

유장이 다시 이엄(李嚴)을 보내 면죽의 여러 군대를 감독하게 했지만, 이엄은 부하들을 통솔하여 유비에게 항복했다.
유비의 군대는 더욱 강해지니, 여러 장수들을 나누어 파견해 군 아래의 현들을 항복시켰고,
제갈량, 장비, 조운(趙雲) 등이 병사를 거느리고 강을 거슬러 올라 백제(百帝)성과 강주, 강양을 평정하였으며,
오직 관우만이 남아 형주를 진수했다.
그리고 유비가 진군하여 낙성을 포위하는데 이때 유장의 아들 유순(劉循)이 성을 지키고 있었고, 공격 당한지 1년이 되었다. 

214년 낙성이 격파되자 유비는 제갈량, 장비, 조운을 이끌고 성도를 포위하고 유장의 항복을 받아냈다. 유비는 익주 자사를 겸하게 되고, 유장의 옛 신료도 그대로 고관으로 취임시켜 촉한의 기반을 구축했다.

유비는 드디어 촉 땅을 손에 넣은 것이다.
제갈량과 만났던 첫날 제갈량이 주창했던 천하 삼분지계의 한 축을 촉 땅을 근거로 이루게 된 것이다.

유비는 이름의 이름지수
권위, 군림, 순풍괘범, 전진, 치밀, 정착, 집안, 희망, 여행 때문에 늦기는 했지만 53세 214년에 드디어 촉 땅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름지수 권위는 권위가 있음, 유비는 늦은 나이 때까지 근거지가 없이 살면서도 권위를 잃지 않았다.

이름지수 군림은, 새로운 때가 오니 바르게 마음을 갖고 행동하면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니 유비는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를 다 물리치면서 늘 명분까지 이뤄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지도자가 되려했다.

이름지수 순풍괘범은, 순풍에 돛단듯이 잘나감. 뭐든 성실하게 열과 성을 다해 결실을 맺음. 넓은 아량과 덕성. 지혜있고 의지견고함. 꿈과 희망 원대함. 뛰어난 지모와 책략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순풍에 돛단 듯 순항하는 성격. 유비와 참 잘 어울린다.

이름지수 전진은, 앞으로 나가는 것.
이름지수 치밀은, 매사에 신중하고 법도에 어긋남이 없음. 유비와 참 잘 어울린다. 유비는 거점을 마련할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를 다 물리치면서 늘 명분까지 이뤄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치밀하게 지도자가 되려했다.

이름지수 정착은, 갈 곳을 찾음. 자리를 잡음. 결혼을 잘함.

이름지수 집안은, 같은 뜻의 동지를 모아 나라를 일으키는 이름지수. 같은 뜻의 동지를 모아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이름지수.

이름지수 희망은, 정해진 것이 없는 상태지만 미래의 가능성과 희망 , 새로운 목표를 놓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크게 형통한 상황을 만들면 태양이 드 높이 떠서 만물을 비추게 되니 큰 부자, 대기업, 큰 업적/실적 통치자가 되는 이름지수.

이름지수 여행은, 찾아다니는 이름지수. 

215년 54세 때 유비는 형주를 둘러싸고 손권과 대립하였으며, 결국 형주 동부의 강하, 장사, 계양을 오나라에 양보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218년 유비는 마초(馬超)와 장비를 시켜 무도의 하변을 취하게 하고 그 곳 이민족들과 연계하여 무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조조가 조홍(曹洪)에게 군사를 주어 마초를 물러나게 한다. 유비는 양평관에 주둔하고, 219년 봄 군대를 이끌고 정군산에 진지를 구축해 하후연(夏侯淵)과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유비는 황충에게 명해 높은 곳에 올라 북을 크게 치게 하고 적군이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해 공격, 하후연을 무찔러 죽였다. 이에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나섰지만, 유비는 한중을 끝까지 사수하며 상용까지 공략했다. 그리고 같은해 7월 위왕 조조에 맞서 한중왕에 오른다. 한편 형주에 있던 관우는 위의 조인(曹仁)이 지키는 번성을 공격하다가 손권에게 배후를 찔려 219년 12월 전사했다. 결국 오나라에게 형주를 빼앗기고 만다. 도원결의 아우 관우의 죽음은 아우 장비를 죽게 했고 끝내 유비도 죽게 된다. 도원결의 형제의 결의 때문에 오히려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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