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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권 - 정치를 잘했고 인사人事와 수성守城의 달인이다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3-02-20 03:20    

손권 71세 182년 ~ 252년 4월

손권은 정치를 잘했다. 또한 인사人事와 수성守城의 달인이다.

오태조 대황제 손권(吳太祖 大皇帝 孫權, 182년 음력 5월 18일 ~ 252년 음력 4월 16일)은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초대 황제로, 자는 중모(仲謀)이며 양주(揚州) 오군(吳郡) 부춘현(富春縣) 사람이다. 손견(孫堅)의 차남으로 손책(孫策)의 동생. 200년, 형 손책이 급사하자, 손권은 나이 19세에 오후(吳侯)의 자리에 올라, 강동을 다스렸다. 수성(守成)의 명수로 평가되고 있다. 이름의 기운에 있는 마디는 성실한 기운으로 이 기운 때문에 수성(守成)을 잘했고 희락 이름의 기운은 정치를 잘하는 기운이다.

 

생애
손권이 태어날 당시 아버지 손견(孫堅)은 갓 태어난 그의 풍모를 보고 고귀한 위치에 오를 상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어머니 오부인은 손책을 낳을 때 달이 품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손권을 낳을 때는 태양이 품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각각 꾸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손견은 “달과 태양은 음과 양의 정수로 최고위의 상징이므로, 우리 자손은 번영을 누릴 것이 틀림없다”라고 예견했다.

 

초평(初平) 3년(192년), 아버지 손견이 전사하고 원술(袁術) 밑에서 몸을 의지하고 있던 손책(孫策)이 강동에서 궐기하자, 손권은 형을 따라 각지를 전전하였다. 손권은 명랑하고 도량이 넓고, 생각이 깊으면서 동시에 결단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손책은 책략을 세울 때 항상 손권과 상의하였고, 그의 의견을 높이 평가하여 손책 자신도 그에게 못 미친다고 말했다.

 

손권의 인생1구간 이름의 기운인 추실은 중도에 꺾기는 기운이다. 이 기운 때문에 손책은 죽는다.
손권의 인생1구간 이름의 기운인 치밀과 마디는 때문에
손권은 겨우 15살(196년)에 양선현의 수장이 되었고 그로부터 얼마 뒤 추천을 받아 봉의교위대행이라는 직무를 맡게 된다. 199년(건안 4년) 손권은 손책을 따라 여강태수 유훈을 쳐서 격파하고, 더욱 진군해 사이(沙羨)에서 황조(黃祖)를 격파했다. 그러나 200년에 손책은 허공(許貢) 휘하의 자객에게 습격당해 26세로 단명하고 만다. 손책은 후사를 19세의 손권에게 부탁했다. 손권은 형의 죽음을 슬퍼해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손책의 장사(長史)였던 장소(張昭)는 그를 격려해 상복을 벗게 하고 말에 태워 진영을 시찰하도록 했다. 훗날 손권은 손견을 무열황제에 추증했지만 손책을 장사환왕으로 추증했다.

 

당시 오나라가 지배하던 지역은 회계, 오군, 단양, 예장, 노릉 등이었지만 그들 군에서도 험준한 오지까지는 복종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군신 관계도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2] 항상 사태를 주시하면서 주군을 물갈이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주유(周瑜)와 장소는 손권이 장차 대업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이라고 예견하고 정성을 다해 그를 섬긴다. 그리고 장소를 스승으로 예우하고 주유, 정보(程普), 여범(呂範) 등을 군사지휘관에 임명하며, 노숙(魯肅)과 제갈근(諸葛瑾) 등 우수한 인재를 불러들였다. 그런 다음 그들을 각지에 파견해 불복종 지역을 토벌할 것을 명했다. 조조(曹操)는 손책의 죽음을 기회로 삼아 손권을 공격하려 했지만, 오나라의 사자로 허도에 머물고 있던 장굉(張紘)은 오히려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며 조조를 설득했다. 그래서 조조는 손권을 토로장군에 임명하고 회계태수를 겸임시켰다.

 

202년 원소(袁紹)를 격파한 조조는 손권에게 편지를 보내 자식을 인질로 보내도록 요구했다. 손권은 주유와 어머니 오씨 부인과 상의한 뒤, 결국 인질을 보내지 않았다. 같은 해 오씨 부인이 서거했다.

 

203년 손권은 황조를 토벌하러 나서 그 수군을 격파했다. 하지만 거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사이에 산악지대의 불복종민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자 회군해 진압하였다. 207년에도 황조를 공격해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왔다. 208년 봄, 손권은 또다시 황조를 공격했다. 황조는 수군으로 손권의 침공을 저지하려 했지만 여몽(呂蒙)에게 격파되었다. 그리고 능통(凌統), 동습(董襲) 등이 정예병을 이끌고 공격했기 때문에 거성은 마침내 함락되었고, 황조는 죽임을 당했다. 이로써 손권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손권은 이 과정에서 황조의 부장이었던 감녕(甘寧)도 얻게 된다.

 

같은 해 형주목 유표(劉表)가 죽자 조조는 형주를 침공하고, 유표의 후계자 유종(劉琮)은 조조에게 항복한다. 남쪽으로 도망온 유비(劉備)는 제갈량(諸葛亮)을 손권에게 사자로 보냈다. 손권은 개전과 항복을 놓고 결단하지 못했는데, 제갈량에게 설득당해 유비와 동맹을 체결하여 조조와 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 무렵 조조로부터 “이번에 수군 80만의 군세를 정비하여 그대와 오나라 지역에서 사냥을 하고 싶다”라는 편지가 당도했다. 군신들은 항복하지 않으면 토벌하겠다는 조조의 최후통첩으로 알고 두려워했다. 장소 등이 항복을 주장하며 신료들 간에 논의가 길어지자 손권도 차츰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전파 주유[3]의 한마디로 개전을 결의, 손권은 책상 모서리를 칼로 자르며 “앞으로 항복을 입에 담는 자는 이 책상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며 단호한 의지를 표명했다. 전황은 조조 진영에서 역병이 돌고 황개(黃蓋)의 거짓 항복이 조조에게 통해서 싸움이 우세하게 전개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적벽에서 조조군을 완전히 격파하였다.

 

209년 주유는 1년간의 공방 끝에 조인(曹仁)을 남군에서 퇴각시켜 그 지역을 평정했다. 손권은 주유를 남군태수로 임명하고 좌장군 유비가 형주목을 맡아 공안에 근거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손권은 점차 유비의 세력이 확대되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여동생을 유비와 혼인시켜 우호 관계를 깊게 하였다.[출처 필요] 211년에는 자신의 본거지를 말릉으로 옮기고, 다음해 건업(建業)으로 개명했다.

 

213년 조조가 유수를 침공하자, 손권은 이를 저지하며 1개월 넘게 서로 대치하였다. 당시 손권은 몸소 배에 올라타 조조의 진영을 시찰하러 나섰다고 한다. 손권의 시찰단은 무기나 대오 등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이 완벽히 정돈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조조는 “자식을 낳는다면 손권과 같은 자를 원한다”라고 칭찬하며 군사를 퇴각시켰다고 한다.

 

214년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손권은 형주 반환을 요구했다. 이에 유비는 양주를 손에 넣으면 돌려주겠노라 답한다. 이에 화가 난 손권은 여몽을 파견해 장사, 영릉, 계양 세 군을 무력으로 탈취해 형주를 지키는 관우(關羽)와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조조가 한중을 침공해 왔으므로 유비는 익주를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손권과 화해하였다. 이리하여 형주를 동서로 분할해 동쪽을 손권이, 서쪽을 유비가 다스리게 되었다.

 

그 후 손권은 합비를 10만 군세로 포위했는데,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퇴각하다가 장료(張遼)에게 기습당했다. 손권의 군사는 뿔뿔이 흩어지지만, 능통의 분전으로 겨우 궁지에서 벗어났다.

 

217년 손권은 조조에게 표면상으로만 항복한다. 이는 형주를 둘러싼 유비와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219년 관우는 조인이 지키는 양양을 포위했다. 구원에 나선 우금(于禁)마저 패하고 투항하여 조조가 곤경에 처하게 되자, 이때 손권이 충성의 증거로 관우를 치겠다고 조조에게 서신을 보냈다. 이리하여 손권은 관우의 배후를 쳐 형주를 평정하고 그를 사로잡아 처형했다.

 

220년 조조가 죽자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헌제(獻帝)를 폐하고 스스로 황제(문제)로 즉위하였으며, 다음해에는 촉한의 유비도 제위에 올랐다. 손권은 계속하여 위나라에 신하의 예를 갖춰 문제로부터 오왕으로 봉해진다. 같은 해 7월, 유비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침공하자 손권은 육손(陸遜)을 총지휘관에 임명해 방어케 하였다. 그리고 이 틈에 위나라로부터 침략 받지 않도록 자주 사자를 파견했다. 이때 문제가 상아, 진주, 공작 등 귀한 진상품만을 헌상할 것을 요구하자 가신들이 일제히 분개하며 거절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손권은 “백성들의 목숨이 나 한 사람의 결단에 달려 있다”라며 이를 물리치고 바라는 물품을 모두 보내줬다고 한다. 222년(황초 3년) 육손이 화공으로 유비군을 격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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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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