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구필분 合久必分
삼국지는 합구필분(合久必分)에서 분구필합(分久必合)되는 과정을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의 관점으로 쓴 이야기이다.
연도로 본다면 184년 황건적 난이 일어나기 전부터 263년 유비의 촉나라가 망하고 280년 손권의 오나라가 망하는 과정까지의 약 100년 정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30%정도의 소설적 허구가 추가된 이야기가 삼국지이다.
합구필분(合久必分)은 '합한 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는 뜻이고 분구필합(分久必合)은 '나뉜 지 오래면 반드시 합한다'는 뜻이다.
한나라 통일국가는 4백여년 세월을 이어오며 나라의 끝자락에 이르자 조정은 부패하고 나라의 기운이 쇠하니 전국 장악력이 약해지면서 황건적 난이 일어나고 이후 군벌간의 세력다툼기를 거치면서 분열하는 합구필분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다시 위, 촉, 오 삼국으로 나뉘어 가면서 한나라가 몰락하는 합구필분의 과정을 거치고 다시 삼국이 진(晋)나라로 통일되어 가는 분구필합 과정 이야기가 삼국지이다.
왜 BC 206년부터 4백여년의 세월을 이어 온 한나라가 184년 황건적 난을 시작으로 분열하게 되었는가는 본 장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통해 간략히 들여다 보고 구체적인 합구필분의 까닭은 다음장에서 소개되는 한나라 영제의 이름풀이를 하면서 짚어 본다.
우선, 용어를 하나 정리한다.
역사서인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다른 것이지만 널리 독자에게 알려진 소설명이 삼국지이므로 이름삼국지를 써내려가는 서술상의 편의성과 독자에게도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하여 이후 서술 되는 내용에서 '삼국지'하면 소설 삼국지연의를 칭하는 것으로 한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라고 별도로 표기할 것이다.
'삼국지'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고 15년을 통치한 진(秦)나라 다음으로 통일국가를 세운 한(韓)나라 426년의 역사가 몰락해 가는 후한(後韓 : 25~220년) 말년. 즉, 동한(東韓) 말년인 184년 황건적 난이 일어나기 전부터의 역사를 시작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후한과 동한은 같은 나라 두 개의 호칭이다. 한나라는 서한(西韓)을 전한(前韓)이라 하고 후한(後韓韓)을 동한(東韓)이라 섞어서 호칭한다.
중국민족은 한(韓)족이다.
한(韓)족은 한(韓)나라의 후손이란 뜻이다.
한나라는 전한(서한), 후한(동한)을 거치며 중국역사 상 한(韓)민족이 세운 나라 가운데 가장 긴 426년을 이어 간다. 이후 한족이 세운 통일국가 수(隋) 37년, 당(唐) 289년, 송(宋) 319년, 명(明) 276년과 비교해 보아도 한나라의 426년 존속은 더 긴 것이다.
이렇게 중국역사에서 한나라의 위상은 중요한 것이다.
삼국지의 진정한 이해를 위하여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 보자.
주(周) 춘추전국(春秋戰國)
|
서주(西周)
|
BC 1066년 ~ BC 771년
|
동주(東周)
|
BC 770년 ~ BC 256년
|
춘추(春秋)
|
BC 770년 ~ BC 476년
|
전국(戰國)
|
BC 475년 ~ BC 221년
|
진(秦)
|
BC 221년 ~ BC 206년
|
한 (韓)
|
서한 (西韓)
|
BC 206년 ~ AD 23년
|
동한 (東韓)
|
AD 25년 ~ 220년
|
삼국 (三國)
|
위 (魏)
|
220년 ~ 265년
|
촉 (蜀)
|
221년 ~ 263년
|
오 (吳)
|
222년 ~ 280년
|
진 (晋) 16국 (十六國)
|
서진 (西晋)
|
265년 ~ 316년
|
동진 (東晋)
|
317년 ~ 420년
|
16국 (十六國)
|
304년 ~ 439년
|
남북조 (南北朝)
|
남조 (南朝)
|
송 (宋)
|
420년 ~ 479년
|
제 (齊)
|
479년 ~ 502년
|
양 (梁)
|
502년 ~ 557년
|
진 (陳)
|
557년 ~ 589년
|
북조 (北朝)
|
북위(北魏)
|
386년 ~ 534년
|
동위(東魏)
|
534년 ~ 550년
|
북제 (北齊)
|
550년 ~ 577년
|
서위(西魏)
|
535년 ~ 557년
|
북주(北周)
|
557년 ~ 581년
|
수(隋)
|
581년 ~ 618년
|
당(唐)
|
618년 ~ 907년
|
오대십국(五代十國)
|
후양(后梁)
|
907년 ~ 923년
|
후당(后唐)
|
923년 ~ 936년
|
후진(后晉)
|
936년 ~ 946년
|
후한(后韓)
|
947년 ~ 950년
|
후주(后周)
|
951년 ~ 960년
|
십국(十國)
|
902년 ~ 979년
|
송(宋)
|
북송(北宋)
|
960년 ~ 1127년
|
남송(南宋)
|
1127년 ~ 1279년
|
요(遼)
|
907년 ~ 1125년
|
서하(西夏)
|
1032년 ~ 1227년
|
금(金)
|
1115년 ~ 1234년
|
원(元)
|
1279년 ~ 1368년
|
명(明)
|
1368년 ~ 1644년
|
청(淸)
|
1644년 ~ 1911년
|
중화민국(中華民國)
|
1912년 ~ 1949년
|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
1949년 10월 1일 ~
|
삼국지는 14세기 원말 ~ 명초기 때 인물인 나관중이 쓴 소설.
나관중이 소설을 쓰던 때는 북방민족이 중국 땅 중원을 차지하고 한족을 지배하던 때.
중국 한족의 근원이며 자부심인 한(韓)나라 426년 세월 보다 요(遼 : 907년)부터 원(元 : 1368년)까지 네 번의 북방민족이 지배한 세월이 461년이니, 한나라 426년 세월 보다 북방민족에게 한족이 지배 당한 세월이 35년이나 더 길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긴 세월을 북방민족에게 한족은 지배당한 것이다. 한족이 오랑케라고 말하는 이민족에게 말이다.
중원 땅을 점령하고 한족을 지배한 북방민족이 세운 나라를 보면
몽골족의 일족인 거란족이 세운 요(遼 : 907년 ~ 1125년), 티베트 계통의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西夏 : 1032년 ~ 1227년), 퉁구스족 계통의 여진족이 세운 금(金 : 1115년 ~ 1234년), 몽골족이 세운 원(元 : 1279년 ~ 1368년)나라가 461년 동안 한족을 지배한다.
당(唐) 멸망 후 등장한 오대십국(五代十國)의 분열을 통일하고 한족이 세운 송(宋)나라가 북송(北宋 : 960년 ~ 1127년)과 남송(南宋 : 1127년 ~ 1279년)으로 한족의 나라로서 존재했지만 한족의 자부심이 깃든 강력했던 통일국가 당(唐)나라 멸망 후 이어지는 오대십국의 끝자락인 십국(十國 : 902년 ~ 979년)의 초기 907년부터 중원은 이미 북방민족이 세운 나라의 차지가 된 후 461년 동안 한족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한(漢)족은 통치의 주체로 본다면 한족 역사상 가장 긴 세월 461년 동안 북방민족들에게 중원땅을 빼앗기고 지배를 당하면서 한족은 존폐의 위기에 처한다. 한족 최대의 시련기에 국력을 모으기 위해 가장 중국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내 세울 필요가 있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약 1,200년 전 이야기인 삼국지의 인기가 여전한 것에 주목하고 삼국지 이야기를 그 소재로 잡는다. 그리고, 한족은 진시황제가 최초로 중국 땅을 통일한 진(秦)나라가 아닌 진나라 다음으로 왕조를 세운 유방의 한(漢)나라를 자신의 뿌리로 보게 된다. 그래서 한(漢)족이다. 그후 이어진 정치적 작업은 그렇다면 후한 이후 등장한 위, 촉, 오 삼국 가운데 어느 나라를 한나라의 계승국가로 볼지로 모여졌고 여러 논의를 거치면서 유비의 촉한(蜀漢)을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은 국가로 보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것이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
촉한정통론 논의 과정을 보면
후한 말기 황건적 난 토벌에 참여한 군벌들은 황건적 토벌 후 그대로 군대를 유지하며 지역별로 세력을 유지 확장한다. 이 군벌은 최종적으로 조조의 위, 유비의 촉, 손권의 오 삼국으로 재편된다. 한나라 황실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허울 뿐. 한나라 황실은 이미 조조의 지배하에 들어간 상태였다.
조조는 황제를 끼고 전국을 황제의 조칙을 빌미로 통치하며 중원 지방을 포함한 중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 지배 영역은 후한 13주 가운데 사예주, 연주, 청주, 예주, 서주, 기주, 병주, 유주, 양주(凉州)까지 9주에 이르렀으니 토지, 인구, 병력 등 종합적 국력에서 유비의 촉과 손권의 오를 훨씬 능가한다. 조조의 대를 이은 조조의 아들 조비는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220년 위왕조를 세운다. 이로써 한나라는 끝난다.
서촉 땅 익주를 근거지로 자리잡은 유비의 촉은 전한(前漢) 경제의 후손이라는 유비의 핏줄을 앞세운다. 유비의 촉나라는 혈통상으도 한나라의 정통성을 잇는 계승자라며 흥한(興漢)을 명분으로 내걸고 국호를 한(漢)으로 삼고 한나라 재건을 기치로 내건 바 있다. 그래서 유비의 촉을 촉한(蜀漢)이라 한다. 유비는 한나라 계승자라는 연속성을 강조하며 221년 촉한(蜀漢)을 세운다.
그렇다면 위나라와 촉나라 가운데 누가 한나라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봐야하는가?
한족의 주장을 보면 이렇다.
위나라를 한나라의 계승으로 보는 시각은 한 왕조 헌제로부터 선양이라는 적법한 형식을 거쳤으니 위나라가 한나라를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촉한을 한나라의 계승으로 보는 시각은 한 왕조 헌제로부터 위나라로의 선양은 사실상 강제에 의한 것이니 이는 참위(僭位). 즉, 한나라의 제위를 찬탈하여 황제에 오른 것으로 주장하며 한나라를 계승한 것은 혈통과 흥한(興漢)을 명분으로 건 유비의 촉한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의 과정을 거친 후 한족은 유비의 촉(蜀)나라가 한나라를 계승한 것으로 정리한다.
이렇게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이 확정된다.
이 촉한정통론에 따라서 한나라의 제위를 찬탈하며 한나라를 망하게 한 위나라 조비의 아비가 되는 조조를 악역으로 삼고, 눈앞의 이익보다는 유교적 명분을 유지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살았던 촉나라 유비와 촉나라 몇몇 인물, 제갈공명과 관우 등을 중점적으로 미화하고 띄움으로써 북방민족에게 461년 오랜 지배를 받고 있던 백성을 유교를 구심점으로 다시 한족의 일체성을 회복하고, 유교의 상하관계의 질서를 다시 확인하며 유지하고, 삼국지 자체의 재미있는 이야깃꺼리도 제공하는 복합적 필요성에서 삼국지는 쓰여진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삼국지를 읽는 독자는 촉한정통론에 의하여 쓰여진 소설의 허구가 어떤 것인지를 분별하며 보는 것도 묘미일 것이다.
촉한정통론에 의해 쓰여진 삼국지 허구의 장면을 널리 알려진 몇가지만 먼저 맛 보자.
유비를 인자로운 인물로 띄우기 위한 예는 이렇다.
황건적 난을 진압 한 후 유비는 안희현 현위로 부임한다. 유비에게 시찰 나온 독우가 뇌물을 요구하며 부당한 처사를 계속하자 열받은 장비가 독우를 매질하는 삼국지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허구다. 사실은 장비가 팬 것이 아니라 유비가 때린 것이다. 하지만 인자한 군자의 대표적 표상으로 유교적 구심점의 인물로 낙점 된 유비가 열받아서 매질을 하게 할 수 없지 않은가?
관우에 대한 허구 장면.
관우가 전국적 용장으로 등극하게 되는 컷.
낙양을 점령하고 폭정을 일삼는 동탁을 치기위해 17지방 군벌들이 동탁 토벌연합군을 결성하고 동탁을 치러 낙양으로 진군한다. 양군이 대치하고 첫 싸움으로 동탁군에서는 여포의 부장인 화웅이 나서 동탁 토벌연합군의 장수 여러명을 순차적으로 가볍게 제압한다. 이에 연합군에서는 화웅과 맞서 싸우려는 장수가 나서지 않게 되고 사기가 떨어져 가는 순간 관우가 나선다. 그리고 관우가 화웅의 목을 술잔이 식기도 전에 베어 오는 장면은 관우를 일약 전국구 스타로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화웅을 벤 것은 관우가 아니라 손견이다.
또 하나 관우를 의리의 대명사로 만드는 컷.
조조에게 투항해 있던 관우가 유비의 거처를 알 게 되자 조조를 떠나며 다섯 관문의 장수를 베는 장면도 역사적 사실엔 없다.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에서는 관우가 도망갔다고 짧게 기록되어 있다. 관우가 소설 속 다섯 관문을 지나가는 과정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서 본다면 있을 수 없는 일. 그때는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존폐를 놓고 쌍방 백만이 넘는 대군이 진을 치고 큰 싸움을 벌이 던 상황인데 그 전장의 중심을 관우가 홀로 유비의 두 부인을 모신 마차를 이끌며 이리저리 지났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과장의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제갈공명에 대한 허구 장면.
적벽대전 컷에서 안개가 자욱한 날 공명은 지붕을 짚으로 덮은 배를 끌고 조조에게 접근한다. 놀란 조조가 화살을 무수히 쏘고 화살은 뱃지붕의 짚에 꽂힌다. 공명은 노숙과 배 안에 앉아서 한가로이 술을 마시는 동안 짚으로 덮은 배의 지붕에 화살 10만개가 꽂힌다. 이렇게 조조로부터 화살 10만개를 얻어 오는 장면도 허구이다. 단지, 이와 유사한 장면을 본다면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에서 손권이 조조와의 전쟁 중에 손권의 배가 조조가 쏜 화살을 잔뜩 맞아서 배의 중심이 화살을 맞은 한쪽으로 몰려 침몰하려 하자 손권은 황급하게 배를 반대로 돌려서 화살을 잔뜩 맞아 균형을 잡은 후 돌아오는 장면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한 일을 촉한정통론에 의해서 유비, 관우, 제갈량이 아주 멋지게 한 것으로 소설화 된 허구의 예나 다른 인물들의 실제 사실과 소설 속 장면이 다른 예는 본문에서 차차 설명한다. 한마디로 유비, 관우와 함께 제갈량은 삼국지 소설이 쓰여지던 당시의 촉한정통론이라는 중국의 정치적 유익 때문에 삼국지의 스타로 부상한 인물이고 가장 큰 피해자는 조조이며 그 외의 인물들도 있다.
이와 같은 삼국지 소설 속 촉한정통론에 의하여 쓰여진 허구가 어떤 것인지를 독자가 직접 분별하는 노력까지 별도로 해야한단 말인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이름삼국지는 삼국지 등장 인물들의 인생을 이름으로 분석한 이름풀이로 전개하게 되니 이름 주인공의 인생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검증했고 이를 근거로 삼국지 소설 속 허구를 걸러내는 작업을 필수작업으로 우선한 후 쓴 것이니 그렇다.
이름풀이는 그 인물의 인생을 들여다 보는 과정이므로 그 인물의 삼국지 소설 속 내용이 사실이어야 한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삼국지는 내용의 30% 정도가 허구. 이점이 이름삼국지를 구성하는 이름풀이 과정에 들어가기 전 확인하고 검증해야하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유의점이 되었다. 이 과정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소설 속 장면과 진수의 정사 삼국지, 후한서, 그리고 다양한 역사적 서적들과 전승되어 오는 삼국지 관련 내용들을 바탕으로 했다. 이 부분은 서문에서 이미 밝혔고 뒷부분의 참고 서적으로 설명을 대신한다.
우리는 다음장부터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삶의 궤적을 살펴 보게 된다.
일간지 신문에 연재 되는 양을 기준으로 본다면 약 4년치 1,200회 분량 정도의 긴 여정이다. 삼국지에는 약 3천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인생의 매순간마다 왜 그런 결정을 하였는지 또는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래서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되 짚어 봄으로써 우리의 인생 살이에 도움을 받는 고찰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 고찰은 삼국지 등장 인물의 이름을 '어드카빙주 성명학'으로 분석하는 이름풀이로 한다. 우리 역사의 인물이나 널리알려진 생존자의 이름풀이로 어드카빙주 성명학의 정확성을 확인해 주고 싶었지만 명예훼손 등의 소란스러움을 피해가기 위해 삼천여명의 이름이 등장하는 삼국지를 통해 이름풀이를 하게 되었다. 한글이름이나 한자이름이나 영어이름이나 모두 이름풀이 방식은 같으니 독자는 부록의 어드카빙주 성명학 이름풀이 방법을 참조해 자신의 이름풀이나 주변 인물의 이름풀이를 해보고 인생살이에 참조한다면 유익할 것이다.
어드카빙주 성명학은 이름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본다.
인생 매순간의 선택, 결정, 실행 과정과 그 결과를 분석하는 이론이 어드카빙주 성명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결국 우리 자신이 된다. 따라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좋은 습관의 누적"이라고 했다.
어드카빙주 성명학 이론으로 이름풀이를 해 보면 살아 온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알 수 있다. 이름만으로 인생 매 순간 상황에 대한 또는 미래에 대한 선택, 결정, 실행, 체크(반응)의 연속 과정을 어떻게 하는지. 즉, 삶의 습관이 어떤지를 겉기운과 속기운으로 분석하여 형통한 인생을 사는 지 아니면 굴곡있는 어려운 인생을 사는 지를 분석해 낸다. 이 어드카빙주 성명학은 국내외 최초 이론으로 기존의 성명학과 다르다. 이 부분은 이 책에서 다루게 될 삼국지 등장 인물의 이름풀이를 보면 확인 될 것이다.
자, 그럼 새로운 장르의 삼국지. 이름삼국지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2013. 2. 19
이름은 인생의 비밀지도/좌우명
이름으로 인생을 경영할 수 있다
이름풀어 보면 인생살이 다 나오니 처세법도 알 수 있다
누구나 이름처럼 산다. 이것을 알고 삶이 지혜
<저작권자 (C) 어드카빙주. 무단전제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