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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명함
삼국지를 처세와 경영에 참고하시려는 분들을 위하여 인물별로 처세와 그 삶의 결과를 분석한 최초의 실용서적 이름삼국지
누구나 이름의 기운 처럼 산다.
이름의 기운을 알고 좋은 선택을 하면 형통한 인생을 살 것이고 이름의 기운을 모르고 나쁜 선택을 한다면 어찌 잘 살 겠는가?
삼국지 인물들의 이름풀이를 보면서 내 이름을 풀어보고 내 이름의 기운을 알고 잘 산다면 이 책을 쓰는 보람이 되겠다.
이름삼국지는 어드카빙주 성명학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어드카빙주 성명학은 이름으로 인생 매순간마다 어떤 선택,결정,실행을 하는가
그래서 어떤 인생을 사는지를 이름으로 보는 독특한 성명학이다.
이름삼국지는 삼국지 소설 속 인물들은 왜 그 장면에서 그런 선택,결정,실행을 했는가
그래서 어떤 결과를 이루었는가에 대하여 삼국지에 나오는 3천여명의 이름풀이를 바탕으로 삼국지 관련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서적과 다양한 삼국지 관련 소설과 이야기 문헌 등을 참조하여 인물 중심으로 소개하는 새로운 장르의 장편 소설이다.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는 이름의 기운 과도(過度)와 다익다실(多益多失) 때문에 공(公), 과(過)가 확실했던 용맹한 장수 장비.
한자에 있는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는 재해의 기운과 인생3구간 이름의 기운인 정체(停滯)와 만장(萬丈)이 만나는 때 암살당한다.
장비(張飛)는 삼국시대의 맹장(猛將)으로 촉한의 건국공신이다. 자는 익덕(益德). 165년 ~ 221년 7월. 향년 57세.
장비의 일생 동안 있었던 중요한 장면을 중심으로 나이별로 이름의 기운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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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구간 1~20살 전후 때 이름의 기운은 련후, 태평, 행운, 복귀, 개혁, 겸진.
1구간으로는 자라온 가정형편을 보며 평생 살아가게 되는 기본적 인성이 형성되는 구간이다. 즉, 1구간의 성품은 평생 영향을 준다.
인생 1구간의 20세 때인 184년 유비, 관우와 함께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개혁의 이름기운. 또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장비의 성품도 개혁의 이름기운 때문이다.
황건적 토벌 때 있던 일이다.
황건적의 우두머리 장각에게 유리한 승기를 잡고 있던 유비의 스승 노식은 조정에서 전황을 감찰 나온 황문시랑(黃門侍郞) 좌풍(左豊)이 뇌물을 달라고 하자 "군량도 부족한데 무슨 돈으로 드리겠소" 한다. 노식이 뇌물을 주지 않자 좌풍은 노식이 전력을 다하지 않고 게으르다고 참언한다. 조정에서는 노식의 후임으로 동탁(董卓)에게 군지휘권을 주고 노식에게는 죄를 뒤집어 씌우고 호송한다. 때마침 이것을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본다. 노식으로부터 일의 경과를 듣던 유비 곁의 장비는 분노하여 호송병을 죽이고 노식을 구하려고 했지만 유비에게 제지당한다. 이후 노식의 후임으로 온 동탁은 장각(張角)에게 크게 패해 달아난다. 이를 본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구해주자 동탁은 곧 유비를 불러 "세 사람은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는가?" 묻는다. 유비가 "셋 다 아직 벼슬이 없습니다" 하자 동탁은 매우 업신여겨 도무지 예의를 갖추려 않는다. 이에 장비는 분노하고 동탁을 살해하려 한다. 이때도 유비가 제지한다. 이는 장비의 이름기운 인생1구간에 있는 개혁과 인생2구간에 있는 과도 때문이다.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름의 기운 련후와 하고 싶은 대로 또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름의 기운 태평 때문에 장비는 평생 성질대로 산다.
장비는 련후와 태평의 부정적 이름기운 때문에 잘못 되는 선택을 하곤 했지만 유비, 관우가 때로는 질책하며 때로는 그냥 눈감아주며 받아 준 것은 복귀와 행운의 이름기운 때문이다.
겸진은 사고를 친 후에는 겸손하게 나감을 뜻하는 이름의 기운이다.
즉, 겸진은 사고치고 난 뒤 오메 기 죽어~ 하고 깨겡 하는 것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겸진이 삶에 큰 전환점으로 작용해 한번의 사고가 전화위복의 전환점이 되어서 그 후에는 겸손하고 차분하게 처신하여 누구에게나 인정 받고 지지를 받아 원하는 바를 이루니 사회적 성공 또는 큰 부자가 되는 이름의 기운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고 장비처럼 평생 반복하는 겸진의 이름기운으로 사는 인물도 있다. 장비의 인생을 볼 때 련후, 태평, 겸진의 연속과정에서 긍정적 성과도 있었지만 부정적 결과도 작게 혹은 크게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 비밀이 이름의 기운 복귀 때문이다. 복귀는 긍정적으로는 좋게 복귀됨을 부정적으로는 나아짐이 없는 원래의 상황으로 복귀되는 두가지 이름의 기운을 갖고 있다.
장비에게 련후, 태평, 겸진의 연속과정에서 부정적 결과를 낳은 대표적는 예는 훗날 인생 2구간에서의 여포와 갈등으로 서주성을 빼앗겨 근거지를 완전히 잃게 만든 것, 그리고 인생 전체에서 보여 준 술취함과 부하 매질을 들을 수 있다. 유비는 이를 염려하여 언제나 장비를 훈계하며 말했다. "매일 병사들을 채찍질하면서 그들을 측근에 임용하고 있으니 이는 화를 부르는 길이오" 그러나 장비는 평생 고치지 못했고 끝내 관우 복수전을 위한 흰천으로 만든 군복 10만 벌을 못만들자 부하인 범강과 장달 이 둘을 무자비하게 때린다. 그날밤 장비는 이 둘에게 살해 당하며 생을 마감한다.
이름기운 태평에 대한 무장으로서의 긍정적 기운은 겁이 없음이니 훗날 인생 2구간에서 싸우자고 덤볏다간 단 1합에 목이 날아가는 당대의 용장 여포, 마초 등과 겨룬 일이고 여럿 적진의 장수를 벤 좋은 결과 등이 있다.
겸진은 기본적으로 돈이 있는 기운이기도 하다.
1구간에 있는 돈의 기운은 무엇인가? 집안이 부유함 혹은 집안의 도움으로 돈벌이를 해 돈이 있음 혹은 물려 받은 유산을 뜻한다. 장비는 유비, 관우와의 도원결의 후 황건적 토벌에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는다. 이 돈으로 군사를 모으고 병장기를 마련하는 군자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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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구간 21~40세 전후 나이 때 이름의 기운은 다익다실,과도,영웅,추앙,여행, 희망.
인생 2구간에서의 대표적 전투는 홀로 장판교에서 조조의 대군을 막은 일. 장비 나이 25세. 건안 13년 208년. 이 때 작용한 이름의 기운은 과도, 영웅, 추앙. 홀로 조조의 군대를 저지하는 과도함으로 장비는 적군과 아군으로부터 영웅으로 추앙 받는다.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는 장판교 전투 장면을 이렇게 서술한다.
유비는 조조를 따라 여포를 치고 함께 허도로 돌아왔다. 이때 조조가 장비를 중랑장으로 임명했다. 유비는 조조를 등지고 원소, 유표에게 의지했다. 유표가 죽자 조조가 형주로 들어오므로 유비는 강남으로 달아났다. 조조는 그를 뒤쫓아 하루 낯 하루 밤이 지나 당양현 장판까지 이르렀다. 유비는 조조가 곧 다다를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처자식을 버린 채 달아나며 장비에게 기병 스무명으로 뒤를 막게했다. 장비는 냇물을 점거하여 다리를 끊고, 눈을 부릅뜨고 창을 비껴 잡으며 말했다. "나는 장익덕이다. 나와 함께 죽음을 결정 지으며 싸울 수 있겠는가!" 적군은 감히 가까이 다가가는 자가 없었고, 이로써 유비는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장판교에서의 이 명장면을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는 이 정도로만 서술하고 있는데 속을 들여다 보면 유비는 비겁하게 처자식도 내팽개치고 도망간 치졸한 인간으로 만들고, 장비는 장판교 다리 위에서 있던 것이 아니고 부순 다리 앞이나 옆에서 또는 장판교 근처 물속에서 말위에 올라 있는 단순무식한 싸움꾼으로 잘못 생각하게 쓰고 있다.
과연 그런가? 중국 CCTV가 제작한 삼국지 드라마 삼국연의나 소설 삼국지에서 이 장판교 장면은 이렇게 나온다. 장비는 몇 않되는 기병에게 이른다. 장판교 근처 숲으로 가서 나뭇가지를 여러갈래로 엮고 말꼬리에 묶은 후 숲속에서 많은 군사가 매복해 있는 것처럼 흙먼지를 일으키 게 한다. 잠시후 조조의 적진에서 홀로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서 기진맥진 피투성이로 돌아 오는 조자룡이 급하게 장판교를 넘어가고 조자룡의 뒤를 쫒던 조조군의 문빙이 먼저 도착하고 이어서 조인,이전,악진,하후돈,하후연,장요,장합,허저 등 위나라 주요 장수들과 그 뒤를 이어서 군대가 함께 몰려온다. 하지만 장비는 장판교 위에 홀로 서서 호랑이 같은 수염과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장팔사모를 치켜들며 “내가 바로 연나라 사람 장익덕이다! 누가 나와 싸우겠느냐!” 하고 천둥 같이 큰 소리로 호통친다. 조조군에서는 감히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다. 이는 경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판교의 금강역사’라는 유명한 장면이다. 이 상황을 보고 받고 조조는 급히 말을 몰아 장판교에 이른다. 조조는 "일전에 관운장이 내 동생 장익덕은 백만 적군 속에서도 적장의 머리 베기를 마치 주머니 속에 있는 물건 꺼내듯 한다했다. 관우가 말했던 그 장비다 가볍게 나서지 말라" 고 명령한다. 숲속에서 이는 먼지를 보며 조조와 그의 장수들은 또 제갈량의 속임수에 걸려들까 더욱 의심하며 멈춰서서 더 다가오지 못한다. 이에 장비는 더 기세 등등하게 "싸울거야 말거야, 내가 다 죽여주랴 이놈들아"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치고 그 소리에 조조 곁에 있던 하후걸(夏侯傑)의 말이 놀라서 발버둥치는 바람에 하후걸은 말에서 굴러 떨어진다. 먼저 조조가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자 수하 장수들과 군졸들도 일제히 서쪽을 향해 달아난다. 이 과정에서 조조군은 서로 부딪히고 짓밟혀 죽는 자가 나온다. 이때의 군영은 맨 앞에 말을 탄 장수와 그 뒤를 이어 말을 탄 기병이 나가고 그 뒤를 일반 군졸이 따랐다. 그런데 이 행진 대열이 급하게 거꾸로 되돌려지면 군졸들은 뒤돌아 몰려오는 아군 기병의 말에 깔리기 십상인 것이다. 한편 소설에서 낙마한 하후걸은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는 하후패란 인물이었는데 하후패가 훗날 유비의 촉한에 귀순하여 촉한을 위해 싸우다 죽었기 때문에 하후패가 낙마한 것이 아닌 하후걸(夏侯傑)이라는 가상의 장수가 낙마한 것으로 묘사된다. 하후패를 하후걸로 바꿔치기한 이 부분도 촉한정통론의 시각으로 쓰여진 소설 삼국지의 허구 때문이다. 조조군이 물러나자 장비는 장판교를 끊고 돌아서는데 이것은 이름기운 다익다실(多益多失) 때문이다. 홀로 조조군을 막은 것은 다익(多益)이고 다리를 끊음으로 조조가 복병이 없음을 깨닿고 다시 추격해 오는 빌미를 주었으니 다실(多失)인 것이다.
유비를 따라서 거처를 이곳 저곳으로 옮긴 것은 장비 이름의 기운 여행과 희망.
서주자사 도겸(陶謙)이 죽자 유비는 잠시 서주를 맡는다. 도겸은 죽기전에도 여러번 유비에게 서주를 맡아주기를 간청하지만 유비는 끝내 거절한다. 도겸은 죽는 순간에는 유비가 서주를 맡아달라는 자신의 간청이 진심임을 표현하려고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숨을 거둔다. 그 순간에도 유비는 도겸의 서주를 맡아달라는 간청을 거절 한다. 세 번째 거절이다. 도겸이 죽은 다음날 유비에게 달려 온 서주 백성과 서주의 신하들이 땅에 엎드려 통곡하며 간청한다. 관우와 장비도 거듭 권하자 유비는 잠시 서주를 맡기로 한 것이다. 이 때가 194년이니 장비 나이는 30세.
얼마후 조조에게 패한 여포(呂布)가 서주의 유비를 찾아와 의지하려 한다. 유비는 여포에게 아예 서주 패인을 내어다 주며 서주를 맡아달라고 한다. 여포는 얼씨구나 이게 웬 떡이냐며 주저함도 없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서주 패인를 인수하려는 순간 호랑이처럼 두 눈을 부라리는 장비와 관우의 눈과 바주친다. 여포는 놀라 머뭇거리며 서주 인수를 사양한다. 유비도 더는 권하지 않고 여포를 위한 주연을 베푼다. 다음날 여포는 답례로 유비를 자신의 숙소로 청해 술상을 마련한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즐거운 마음으로 술자리에 참석한다. 술이 웬만큼 돌자 여포는 유비를 후당으로 청하고 젊은 아내를 유비에게 인사 시킨다. 유비는 극구 사양한다. 여포가 "아우님 뭐 그리 사양할 건 없지 않소?" 하는 순간 장비가 호랑이 눈을 부릅뜨고 호통친다. "뭐라고? 유비 형님은 황실의 후예로 존귀하신 분이거늘 네 놈이 감히 우리 형님을 아우라고 지껄여? 네 이놈, 어디 한번 붙어보자. 네 너와 3백합이라도 겨뤄주마. 나와. 여포. 당장!". 유비는 놀라 장비를 꾸짖고 관우가 잽싸게 장비를 밖으로 끌어낸다. 여포는 어이가 없는 듯 한동안 말이 없다. 여포가 누구인가? 싸움으로 장비가 일대일로 여포를 대적할 상대인가? 일전에 여포가 동탁 수하로 있을 때 동탁 토벌군으로 나선 장비가 여포와 일대일로 싸우다 않되자 관우가 나섰고 뒤를 이어 유비까지 나서 셋이 동시에 여포와 싸우고도 이기지 못한 그 여포와의 싸움을 장비는 벌써 잊은 걸까? 잠시후 여포는 유비를 전송하러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다. 장비가 장팔사모를 꼬나잡고 달려오고 있었다. 유비는 급하게 관우를 시켜 말리게 한다.
다음날 여포는 유비를 찾아와 하직을 고한다. 유비의 처우에는 감사하지만 두 동생들이 자기를 불편해 하고 장비는 죽이려 덤벼드니 떠나는 게 좋겠다고 여포가 말한다. 여포가 지금 거처할 곳이 딱히 없음을 아는 유비가 서주성 인근의 소패에 머물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유비는 여포에게 양식과 군수품도 지원해주겠다고 말한다. 여포는 깊은 감사를 표하고 소패로 떠난다.
서주를 여포에게 그냥 넘겨주려한 유비의 속내는 뭔가?
여포가 젊은 아내를 유비에게 소개한 것은 유비에 대한 최고의 우애 표시. 몽골 유목민족 출신 여포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예우였는데 한족인 유비 삼형제는 여포의 이 행위를 이해 못한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로 생긴 일. 에스키모인들도 손님에게 자기의 아내를 소개 한다. 손님에게 자기 아내와의 잠자리를 허락하는 것으로써 손님 대접의 최고 예우를 표하는 것이다.
여포를 소패에 머물 게 한 유비의 결정은 잘 한 것일까?
얼마후 일이 벌어진다. 조조의 참모 순욱이 조조에게 간한다. ‘호랑이를 몰아내고 이리를 잡는 계략’이라며 유비에게 원술(袁術)을 토벌하라는 조칙을 조조에게 내리게 한다.
유비는 조칙을 받는다. 유비는 출정을 준비하며 서주를 누구에게 지키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장비가 나서자 유비는 아우는 술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그러자 장비는 금주 서약을 한다. 유비는 장비에게 서주를 맞기고 원술을 치러 출발한다. 서주는 평안할까?
장비는 금주를 하며 서주를 그럭저럭 잘 지키는데, 그래도 술을 끊을 수 없는 장비, 어느날 오늘만 딱 한잔만 하자며 술판을 벌였고 그날밤 서주는 여포에게 사단이 난다. 술자리에서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조표(曹豹)에게 술을 강요하는 장비, 조표는 세 번을 사양하다가 열받은 장비에게 심하게 매를 맞는다. 거처로 돌아 온 조표는 치를 떨며 이를간다. 그리고는 여포에게 달려 간다. 안에서 호응을 해줄테니 서주를 습격하라고. 여포는 곧바로 군사를 몰아 서주성으로 들어 오고 장비는 술을 마시다가 급하게 도망간다. 술에 취한 장비를 깔본 조표는 군사를 몰아 장비를 쫒지만 장비가 누구인가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만명을 대적하는 용장이 아니던가 그리고 장비에게 술취함 정도는 일상이니 조표는 오히려 장비에게 죽는다. 유비의 처자도 서주성에 놔둔체로 혼자 달아 난 장비는 곧바로 유비에게 달려갔고 유비와 관우 및 신하들은 서주성을 여포에게 빼앗겼음을 알고 침묵한다. 성질급한 장비 책임을 지고 자살하려고 칼을 목에 들이 대는 순간 유비가 제지한다. 장비는 꺼이꺼이 울면서 포기한다.
배신을 밥먹듯하던 여포도 유비의 호의는 아는 듯 서주성을 점령한 후에도 유비의 식솔은 안전하게 잘 대접한다.
그 후 유비와 여포는 화해하고 이번에는 여포가 유비에게 소패성을 내준다. 여포 때문에 소패성에 거주하게 된 것에 불만인 장비는 산적으로 변장해 여포의 군마를 탈취한다. 분노한 여포는 소패성을 공격한다. 유비 일행은 몸을 피해 조조에게 의지하고 훗날 건안 34년(198년)에 조조와 공동으로 여포를 격퇴한다. 이때 장비 나이는 34세. 인생2구간 때이다.
조조에게 패한 여포, 목숨을 구걸하는데
자신을 살려주면 앞장서서 싸울테니 천하를 도모함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여포의 무용을 아는 조조. 잠시 머뭇거리며 유비에게 묻는다. 유비는 여포의 의붓아버지 둘이 어찌 되었던지를 일깨워준다. 병주자사 정원과 동탁. 여포의 무력이 탐나서 여포를 양아들로 둔 바있던 두 의붓아버지 모두 여포의 손에 죽었던 일을 유비는 조조에게 상기시켜준다. 이에 여포는 "팔 길고 귀 큰 유비 이놈아 내가 너를 선대해주었거늘 그럴 수 있느냐"며 성질을 부리지만 유비는 못들은 척하고 여포는 참수당한다. 유비와 여포의 관계에서 누가 선의로 대했던가.
건안 5년 200년에 조조는 친히 군대를 이끌고 유비를 공격해온다. 유비는 패배하고 관우, 장비와도 생이별을 하게 된다. 유비 삼형제는 서로 헤어진다.
조조군에게 포위당한 관우는 후 세가지 조건을 걸고 조조가 수락하자 조조에 투항한다. 세가지 조건은 이렇다. 첫째,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 황제께 항복하는 것이다. 둘째, 두 분 형수님을 유비 형님의 봉록으로 부양하고 누구도 거처에 들지 말라. 셋째, 유비 형님의 거처를 알면 바로 돌아간다.
한편 장비는 어찌 되었을까?
장비는 망탕산에서 무사히 탈출해 고성현령을 쫓아내고 그 곳에 독자 세력을 구축해 눌러앉았다. 이 무렵 장비는 나무를 하러 간 어떤 아낙 한 명을 강제로 납치하여 아내로 삼았는데 이 여자가 하후패(夏侯霸)의 여동생인 하후씨이다. 이윽고 조조 밑을 떠난 관우가 만나러오자 장비는 배신자라고 말하며 관우에게 덤벼들었다. 관우는 자기를 추격해온 채양(蔡陽)을 토벌한 것으로, 겨우 장비를 납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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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3구간 41~60세 전후의 이름 기운은 인기, 양육, 만장, 정체, 점진, 믿음.
오나라 손권과 연합해 싸운 조조와의 적벽 전투 승리 후 유비는 형주의 강남을 평정하고, 장비 나이 46세 건안 15년(210년) 주유가 죽자 손권과 협의하여 형주의 남군 일대를 넘겨받는다. 이때 장비는 의도태수(宜都太守)·정로장군(征虜將軍)에 임명되고 이후 남군태수(南郡太守)로 전임된다.
한중(漢中)의 장로(張魯)는 조부와 부친의 도(道)를 계승한 쌀 다섯말을 바치면 무슨 병이나 고칠 수 있음을 내세운 오두미도(五斗米道)로 한중에 자리를 잡는다. 장로는 각지에 의사(義舍)를 설치하고 그곳에 의미(義米)와 의육(義肉)을 두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한다. 또한 형법을 너그럽게 하여 한중을 천하에서 가장 안정된 지역으로 만든다. 조정에서는 장로를 진남중랑장(鎭南中郞將)으로 임명하고 한녕(漢寧)태수를 겸하게 한다. 세력을 확장하려던 장로(張魯)는 한중과 경계가 맞다은 서촉 익주의 유장(劉璋)을 치기위해 준비한다. 이 소식을 들은 유장은 신하들과 의견을 모아서 같은 성씨인 유비에게 군사적 도움을 청한다. 유비는 유장을 돕기 위해 익주로 들어간다. 이 때 손권(孫權)의 여동생인 유비의 아내 손부인은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오나라 손권의 거짓 편지에 속아서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을 데리고 오나라로 돌아가려 길을 나선다. 이 급보를 들은 장비는 조운(趙雲)과 함께 손부인을 뒤 쫒아서 유선을 다시 데려오고 손부인은 오나라로 되돌아가게 놔 둔다. 유선을 지킨 것은 장비 이름의 기운 양육과 믿음.
유장을 돕기 위해 익주으로 떠난 유비는 유장(劉璋)의 배신으로 사이가 벌어지자 유장을 돕는 것이 아니라 유장을 정벌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유장을 공격하러 서촉 땅 익주로 들어간다. 이 정벌길에서 낙봉파에 이르자 유비가 타던 흰색말 적로마로 바꿔타고 전진하던 봉추 방통(龐統)이 유장의 군대에게 유비로 인식되어 집중적으로 화살 공격을 받고 전사한다. 유비의 군에서 제갈량 다음으로 중요한 군사전략가였던 봉추를 잃자 유비는 제갈량에게 구원을 청한다. 이에 유비의 근거지인 형주는 관우에게 맞기고 제갈량은 장비와 함께 유비 구원에 나서 서촉 익주로 들어간다.
여기서 잠시 장비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로마와 유비의 나쁜 이름의 기운을 방통이 대신하는 것을 살펴 보자.
지난날 안정적인 근거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던 유비는 사마휘에게 인재를 청한다. 사마휘는 유비에게 와룡과 봉추 둘 중에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이 두명의 인재 중 한명인 봉추가 213년 서촉 정벌길에서 36세 나이로 죽은 것이다. 와룡은 제갈공명을 말한. 봉추는 주군인 유비를 대신해서 죽은 것이다.
왜?
그 속을 좀 더 들여다 보자.
서촉 정벌을 위해 진군하던 날 아침 봉추 방통은 자신의 말을 타고 유비와 작전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방통이 타고 있던 말이 날뛰면서 방통을 땅에다 내팽겨친다. 놀란 유비가 자신의 말과 바꿔 타자며 흰색 적로마를 방통에게 주고 방통은 유비의 흰색 적로마에 올라 출정을 한다. 마상을 보는 이들은 적로마를 주인을 해치는 말로 본다. 하지만 주인 유비는 멀쩡하고 대신 군사 방통이 죽었으니 유비의 천운은 ... 이 때가 유비 나이 53세로 유비는 이름의 기운으로 인생 3구간인데 이 때 유비 이름에는 '박락'이라는 극히 흉한 이름의 기운이 있다. 이 유비의 흉한 이름의 기운 박락을 봉추 방통이 대신 죽어 준 것이다.
적로마는 과연 나쁜 말인가?
적로마의 명예를 위해 유비가 적로마를 얻게 된 경위부터 지금까지를 보자.
지난날 유비가 형주의 유표에게 의탁하고 있던 때 일이다. 유표에게 항복해 온 장무와 진손이 강하 땅에서 백성을 노략질하며 반란을 일으키려는 일이 발생한다. 놀라 근심하는 유표에게 유비는 근심하지 말라며 군사 3만을 받아 형주를 떠나 하루가 지나기 전에 강하에 이른다. 장무와 진손은 군사를 거느리고 유비와 맞선다. 관우, 장비, 조자룡과 함께 적진을 살피던 유비의 눈에 장무가 타고 있는 준마가 눈에 들어 온다.
"저것은 분명 천리마로다"
조자룡은 유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적진을 향해 말을 내 달려 맞서는 장무를 3합이 되기 전에 창으로 배를 찔러 죽인 후 잽싸게 말고삐를 움켜잡고 돌아와 유비에게 말을 건낸다. 이 말이 유비가 타던 흰색 적로마인 것이다. 유비의 손에 들어 온 이 말을 유표가 본다. 유표가 탐내하자 유비는 말을 유표에게 준다. 크게 기뻐하며 사양하지 않고 말을 받아 돌아 오던 유표와 괴월이 마주친다.
" 못 보던 말인데, 주군 어디서 난 것인지요?" 괴월의 물음에 유표가 대답한다.
"유비 현덕이 내게 주었네"
괴월은 말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말한다.
"눈 아래가 움푹 패어 눈물이 고일 정도이고 이마에 흰점이 있으니 이는 적로마(的盧馬)입니다. 적로마는 주인을 해치는 말이라. 장무도 이 말 때문에 죽은 것이니 주군께서는 이 말을 타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튿날 유표는 적로마를 유비에게 돌려준다.
말을 되돌려 받고 오던 길에 형주의 막빈으로 있는 이적이란 자가 유비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말한다.
"공은 부디 그 말을 타지 마시지요. 어제 괴월이 유표에게 고하는 것을 들으니, 이 말은 적로마인지라 주인을 해친다 합니다. 그래서 되 돌려주신 것이니 부디 타시지 마십시요"
유비가 말한다.
"저를 염려해주시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지 어찌 한필 말에게 달려있다 하겠소이까?"
이적은 유비의 대답에 탄복하여 즉시 유비를 따른다.
훗날 적로는 절체절명의 순간 단계를 건너 뛰어 유비를 구한다.
그 전말은 이렇다.
형주 유표에게는 전처를 잃고 얻은 후처로 채부인이 있었다. 채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은 둘째 아들. 유표에게 큰 아들은 전처로부터 얻은 것이다. 유표가 후사를 놓고 고민하며 유비에게 조언을 구하자 유비는 장자를 폐하고 둘째 아들로 후사를 세우면 반드시 혼란스럽게 될 것이라 말한다. 채부인이 유비의 이 말을 엿듣고 유비를 죽이려 한다. 채부인의 명을 받은 동생 채모가 유비를 죽이려 하자 유비는 도망친다. 계곡쪽으로 달아나던 유비 앞에 깊고 빠른 물쌀이 막아선다. 유비는 겨를 없이 바로 뛰어든다. 깊고 거센 물쌀에 유비와 적로마는 잠기기 시작했고 놀란 유비가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친다.
"적로야, 적로야, 네 정녕 주인을 해치려느냐!"
순간 적로마는 갑자기 물 위로 솟구치더니 발끝으로 수면을 가볍게 걷어차며 세길이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건너뛰어 단계를 넘어간다. 주인 유비를 구한 것이다.
그리고 서촉 정벌 길에서는 봉추 방통을 태우고 가다가 방통이 죽는다. 만일 유비가 타고 있었다면 유비가 죽었을 것이다. 유비에게 적로마는 목숨을 두번이나 구해준 고마운 말이다.
다시 장비의 이야기로 되 돌아 가자.
유비의 서촉 정벌 지원 요청에 따라서 나선 때가 213년~214년이니 장비 나이 49~50세.
장비는 유비의 지원 요청에 따라서 유장의 익주 서촉정벌에 나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각 군과 현을 평정한다. 장비 이름의 기운 점진.
장비는 강주(江州)에 이르러 유장의 부장인 파군태수 엄안(嚴顔)을 성밖으로 유인해 끌어내려고 욕을 퍼부었으나 엄안이 반응이 없자 장비는 후퇴하며 샛길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군사를 매복시켜 둔다. 파서를 그냥 놔두고 돌아가려고 하는 것으로 오판한 엄안이 성밖으로 나오자 장비는 엄안의 군대 뒤에 매복하여 엄안을 생포한다. 항복하지 않는 엄안에게 장비는 화를 내며 끌고가 머리를 베도록 한다. 이에 엄안은 얼굴빛도 바뀌지 않은 채 말한다. "머리를 자르면 자르는 것이지 어째서 화를 내시는가!" 엄안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자 장비는 이에 감탄하고 엄안의 포박을 풀고 빈객으로 삼고 후하게 대접한다. 장비 이름의 기운 양육.
이후 장비는 올라가는 곳마다 모두 승리를 거두고 서촉 익주의 성도에서 유비와 합류한다. 장비는 서촉정벌에 큰 공을 세운 것이다. 장비 이름의 기운 인기와 점진.
서촉정벌로 익주가 평정된 후 유비는 장비에게 금 500근, 은 1000근, 동전 5000만개, 비단1000필을 하사하고 장비를 파서태수(巴西太守)로 삼는다. 장비 이름의 기운 믿음.
서촉 익주를 점령한 유비는 곧바로 장로에게로부터 한중 땅을 접수한 조조의 한중정벌에 나선다. 조조는 한중을 점령하고 하후연(夏侯淵)과 장합을 한중 땅 한천에 머물러 지키게 한다. 그리고는 장합을 시켜서 종종 장비가 태수로 있는 파서(巴西)의 경계선을 침공한다. 장합은 따로 군사를 이끌고 파서로 내려와서 그곳 백성을 한중으로 옮기려고 탕거, 몽두, 탕석까지 진군해 장비와 오십여일 동안 대치한다. 장비는 장합을 성밖으로 끌어내려고 온갖 욕설을 퍼부며 장합을 격동시키지만 장합은 장비가 어떠한 도발을 해와도 묵묵부답 무시하며 싸움에 나서지 않고 진채안에 머눈다.
장합과의 대치 국면에 별다른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장비는 장합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대낮부터 술판을 벌인다. 이 소식은 유비에게도 전해진다. 술고래 장비가 또다시 그것도 전장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때 매일 술독에 빠져있다는 소식에 유비는 걱정한다. 그러나 제갈량은 이것을 장비가 장합을 끌어내기 위해 술판을 벌이는 책략으로 간파하고, 오히려 진중 위문품으로 맛 좋은 술을 장비에게 보낸다. 제갈량이 보낸 술이 도착하자 장비는 더 왁자지껄하게 술판을 벌인다. 그날밤 장합은 성채를 나와 야습을 감행한다. 그러나 장비의 본진에는 이미 모든 병사가 빠져나와 아무도 없었다. 장비는 정예병 만여명을 이끌고 다른 길로 나서 와구에서 장합의 군대를 쳐서 전투가 벌여졌는데, 장합의 군대는 길이 좁아 앞과 뒤의 군사가 서로 구원할 수 없게 되자 장비는 장합을 격파한다. 장합은 말을 버리고 산길을 따라서 오직 휘하의 10여 명과 같이 샛길을 따라 퇴각하여 군대를 이끌고 남정(南鄭)으로 돌아간다. 장비는 장합의 탕거, 몽두, 탕석 세 성채를 모두 빼앗고 대승리를 거둔다. 파서지역은 비로소 평정을 되찾는다. 장합의 군대와 맞아 싸워 장비는 크게 이긴 것이다.
이상 언급된 장합과 엄안은 상당한 무용과 지략을 가지고 명성을 떨치던 장수들인데 장비가 이들을 격파하고 승리를 거둔 것은 장비가 저돌적이고 머리를 쓰지 못하는 단순한 이미지의 장비와는 거리가 있다.
이후 219년(건안 24년) 유비가 한중을 평정하고 한중왕에 오르자 장비는 우장군이 되고 가절을 받는다. 장비 나이 54세.
221년(장무 원년)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장비는 거기장군(車騎將軍) 사례교위(司隷校尉) 낭중목(閬中牧)을 겸임해 서향후(西鄕侯)에 봉해진다. 장비 나이 56세.
유비가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 정벌에 나서자 장비는 병사 1만명을 이끌고 강주에서 유비와 합류하기로 한다. 그러나, 221년 7월 관우의 복수를 위해 출정을 준비하던 도중에 장비는 휘하 무장 범강(范疆)과 장달(張達)에게 암살당한다. 향년 57세. 이 때 장비의 나이는 인생3구간이고 정체와 만장 이름기운 때문에 암살당한 것이다. 정체는 큰 사건, 어려움, 재물/건강/사람 등이 곤란해지는 기운이다. 인생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4구간 이름의 기운 재해의 기운도 암살당함에 일조를 한 이름의 기운이다. 유비는 장비의 시호를 환후(桓侯)로 추증한다.
관우는 병사들은 잘 대해 주지만 사대부들에게는 오만했고, 장비는 군자를 아끼고 존경했지만 소인은 보살피지 않았다. 장비는 관우가 죽은 뒤에는 매일 큰소리로 울고, 기분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면 취해 난폭해졌다. 부하들을 학대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유비는 이를 염려하여 언제나 장비를 훈계하며 말했다. "그대는 형벌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이 벌써 지나치고, 또 매일 병사들을 채찍질하면서 그들을 측근에 임용하고 있으니 이는 화를 부르는 길이오" 그러나 장비는 깨우치지 못했다. 범강과 장달이 장비를 죽인 것은 관우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흰천으로 만든 군복 10만 벌을 못만들자 장비는 이 둘을 무자비하게 때린다. 그리고는 3일 안에 만들라는 무리한 명령을 한다. 그날밤 범강과 장달은 어차피 3일안에 못 만들 게 뻔하니 그 때 죽느니 차라리 장비를 죽이자고 결의하고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장비의 목을 벤 후 오나라로 도망친다. 훗날 오나라 손권은 촉나라와의 화해를 위해 장달과 범강을 유비에게로 되돌려 보낸다. 장비의 차남 장소(張紹)는 이 둘의 목을 베어 장비의 제단에 올린다. 장비의 맏아들 장포(張苞)는 촉한을 위해 활약하다 전쟁 중 입은 부상으로 장비보다 일찍 죽었으므로 차남인 장소(張紹)가 대를 이었고 장소는 관직이 시중상서복야까지 이른다. 장비의 장녀와 차녀는 둘 다 유선(劉禪)의 황후가 된다.
이상의 인생 3구간 때 작용한 이름의 기운은 인기, 양육, 점진, 믿음과 인생전체에 영향을 주는 인생전체 이름의 기운 대축, 적응, 대응, 전환과 속마음 군림, 풍성,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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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는 싸움터에서 용맹했다. 성격은 과격하고 매우 급했다. 술을 과도하게 좋아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름의 기운은 인생전체에 영향을 주는 이름기운 다익다실과 과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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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에서의 장비
여타의 많은 게임이나 만화, 민간 여담에서의 장비의 무도하고 과감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정사에서는 이러한 이미지나 성격이 전혀 전해지지 않아 성질이 급하고, 술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는 인물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연의의 단순해 보이는 장비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실제적으로 장군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연의에서와 같이 정사에서도 관우와 함께 그 무인으로서의 용맹함이 잘 나와 있는데, 위서 정욱(程昱)전에 "관우와 장비는 홀로 만명을 당해낼 수 있는 무용을 가졌다"라 평하고 있다. 위나라의 인물들에 약간 편향된 평을 내렸다던 정사서의 저자 진수 조차 관우와 장비는 만인지적으로서의 관우와 장비의 용맹을 인정하며, 위의 수많은 인물들 역시 관우와 함께 장비의 용맹함을 인정한다.
이런 기록들에 비해 보고자 한다면 대부분 연의에서 촉의 인물들이 더욱 포장이 되었다고는 하나 장비만큼은 되려 연의에서 폄하된 점이 있다.
참고로 정사에서 관우와 장비가 받은 만인지적(萬人之敵-홀로 능히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무위(勇猛-무력(武力)의 위엄)를 갖춘 천하무적(天下無敵-세상에 필적할 만한 자가 없음)의 호걸(豪傑-지혜와 용기가 뛰어나고 기개(氣槪)와 풍모(風貌)가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장수의 능력을 평가함에 있어서 최고로 높게 평가하는 표현으로, 삼국지 정사에서 만인지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장수는 오로지 관우와 장비 둘 뿐이다. (이외에도 유사한 급의 표현으로 호랑이와 곰 혹은 삼군을 뒤덮는 용맹이라는 표현도 즐겨쓰이기도 한다.)
삼국지 이후 중국 역사서(정사 등) 에서 용맹한 장수나 훌륭한 장수를 일컬을때마다 "관우와 장비 같다" 라는 표현이 주로 쓰이는 것으로 보아, 삼국지 시대 이후 중국에서는 관우와 장비를 용맹한 장수의 아이콘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를 보아 관우와 장비의 용맹과 장수로서의 능력이 당시는 물론 후세까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 정사에서 관우와 장비의 능력을 평가한 부분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주유전 : " 관우와 장비처럼 곰과 호랑이 같은 장수"
정욱전 : " 관우와 장비는 모두 만명의 적을 대적할 수 있는 자"
유엽전 : "관우와 장비는 삼군을 뒤덮을 만한 용맹으로 장군이 되고.."
장비전 : "장비의 웅장위맹은 관우에 버금갔으므로 위의 모신 정욱 등이 모두 장비를 칭하길 만인지적이라 했다"
곽가전 : 흔히 관우 장비의 만인지적 표현을 정욱전에서만 나오는것으로 국내에 알려졌는데, 실제 곽가전을 원문 전체를 보면 다음과 같이 곽가가 언급한 내용이 나온다.
"관우와 장비는 모두 만명의 적을 대적할 수 있다 (張飛關羽者 皆萬人之敵也 ..) -
진수 (삼국지 정사 편찬자) 의 평가 : "관우와 장비는 모두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 칭해진 당대의 호랑이 같은 신하(장수)였다" / "둘 다 국사(國士-나라의 뛰어난 선비)의 풍모가 있다."
-위나라에서 극히 경멸되어 `(단신으로) 만 명을 능히 해치울 수 있는 장수들` 이라고 칭해진 것으로 간주된다. 즉, 이들은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들이 아니며 만약 반란을 일으키면 큰 화를 불러일으킬 종자들이라는 뜻도 함유하고 있다.
삼국지 연의에서의 장비
자는 익덕(翼德)이다. (연의를 보면 장비 익덕은 본래 술과 고기를 파는 상인이었는데, 황건적의 난 때 장각은 청주, 유주, 서주, 이주, 양주, 연주, 여주, 형주 등 중국영토를 점점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관우를 만나서 형제처럼 지내다가 몇 년뒤 유비를 만나게 된다. 유비는 탁현 마을이라는 곳에 물건을 팔려고 장비와 함께 배를 타고 나서는 순간 마을을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때 유비, 관우, 장비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장비는 무기로 장팔사모(丈八蛇矛, 일 장 팔 척짜리(18자) 사모)를 썼다고 하는데, 창두가 뱀처럼 구불구불했고 길이가 1장 8척(3m 60cm)이었다 한다. 사모(蛇矛)가 처음 등장한 때가 동진(東晉) 이후이므로 장팔사모 역시 실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또한 터무니 없는 길이를 볼 때 당시 사람들의 과장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 책에서 성주가 준 성주 자신의 동생 인육을 먹고 죄책감에 빠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비는 유비가 현령이 되자 순시하러 온 독우가 뇌물을 요구하며 횡포를 부리자 장비가 분노하여 독우를 기둥에 묶고 매질을 하였다. 유비는 장비를 제지하고 현위를 사직하고 도망가게 된다. 그러나 《삼국지》에서는 오히려 유비가 독우를 매질했다고 되어 있다. 그 후 동탁과의 싸움에서 장비는 여포에게 도전했다가 패한 공손찬(公孫瓚)을 돕고, 여포와 필마단기로 싸운다. 관우와 유비까지 가세하여도 승패는 나지 않고 여포와 유비 삼형제 모두 지쳐서 싸움을 멈췄다고 한다. 그 후에는 유비와 함께 공손찬, 공융(孔融), 도겸 밑을 떠돌면서 그들을 군사 면에서 돕는다. 정사에서는 배주로 인용된 영웅기에서 유비가 조조와 함께 반동탁연합군에 참여했다고 서술한 것 외에 유비 세력의 동향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며, 《삼국지연의》에 나타난 반동탁연합군 아래에서 보여준 유 ·관 · 장 3형제의 활약은 허구다.
또한 장비는 여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에게 결투를 신청했지만 유비가 이를 말리고 관우가 장비를 데리고 나갔다고 기술되어 있다.
원술을 토벌할 때 원술 휘하의 맹장 기령(紀靈)을 토벌한다. 그 후 유비가 조조에게 반기를 들고 조조가 파견한 유대(劉岱)와 왕충(王忠)과 대치한다. 장비는 일부러 술에 취해 한 병사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그 병사를 유대에게 투항하게 만들어 장비가 야습한다는 사실을 밀고시킨다. 유대는 진지를 비우고 복병을 준비하지만 장비가 의표를 찔러 바깥쪽에서 공격, 유대를 생포했다.
또 연의에서 적벽 전투에서 익주 평정에 걸쳐 방통이 뇌양현령에 임명되고 매일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장비가 순시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방통의 재능을 알아보고 감복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장비는 방통을 보러 뇌양현에 간 적이 없다고 한다. 또 유장을 구원하러 장로가 파견한 마초(馬超)와 필마단기로 싸우는데 밤이 되도록 화톳불을 켜놓고 싸우지만 끝내 승부가 나지 않았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전해져오나 정사에서는 마초가 장로의 부하 양송(楊松)의 참언이 계속되며 입지에 위협을 받자 강족들 땅으로 피신했다가 유비에게 투항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일화
관우가 고기를 보관하는 항아리의 뚜껑을 열고 그 속에 들은 고기를 나누어 주었는데, 그 일로 관우와 싸웠다가 유비의 중재로 도원결의를 맺었다. 장비는 흔히 무식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무예 뿐 아니라 지모로서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또한 영웅을 알아보는 안목도 갖추었다. 장판교에서는 흙먼지를 일으키는 계책으로서 필마단기에 호통만으로 조조의 백만대군을 도망가게 만들었다. 유비의 명을 받고 정사를 게을리하는 방통을 꾸짖으러 갔다가 그의 뛰어남을 알아보고 방통을 유비에게 천거하기도 했다. 또한 촉 쟁탈전에서는 엄안을 지모로 사로잡았고 또한 그의 충절과 기상에 감복하여 그를 극진히 대접하여 엄안을 유비에게 투항토록 하였다. 마초와 무예로 3일 밤낮을 겨루었지만 승부를 내지 못했고 마초의 거짓 퇴각을 눈치채고 거짓 퇴각으로 맞받아쳤다. 또한 한중 쟁탈전에서는 위의 명장 장합에게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기타
장비의 장팔사모가 유명하지만, 사모창은 오호십육국 시기 이후에 북방 기마민족을 막기 위해 고안된 무기이다. 따라서 실제로 장비가 장팔사모라는 사모창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는 관우의 청룡언월도도 같은 이유로 관우가 사용했을 가능성은 낮다. 언월도는 이미 삼국시대 이전에 존재했지만, 청룡언월도와 같은 "언월창" 형식의 언월도는 오호십육국 시기 이후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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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8
이름은 인생의 비밀지도/좌우명
이름으로 인생을 경영할 수 있다
이름풀어 보면 인생살이 다 나오니 처세법도 알 수 있다
누구나 이름처럼 산다. 이것을 알고 삶이 지혜
<저작권자 (C) 어드카빙주. 무단전제 -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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