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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기술로 ‘도심 속 유전’ 찾았다
  글쓴이 : 카빙편…     날짜 : 08-11-25 09:23    
     
    
처치 곤란 플라스틱 쓰레기서 석유 생산

고유가와 지구온난화로 저탄소 녹색성장이 주목받고 있다. 이미 선진 각 국들은 이 같은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세우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현재 ‘녹색성장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공공기관, 기업 등에서 ‘녹색성장’의 현재와 가능성을 살펴본다.<편집자 주>

“이 ‘동동구리무’ 뚜껑은 왜 이리 잘 깨져요?”

1940년대말 이 한 마디는 우리나라 플라스틱 산업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일제시대 화장크림 장사가 북을 ‘둥둥’치며 ‘구리무(크림의 일본식 발음)’을 외쳤다는데서 화장품의 대명사가 된 ‘동동구리무’는 많은 여성의 보물 1호였지만 잘 깨지는 뚜껑은 불만의 대상이었다.

당시 ‘동동구리무’를 만들며 급성장하고 있던 낙희화학공업(현 LG화학 전신)은 잘 깨지지 않는 뚜껑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던 중 암시장에서 거래되던 미제 크림의 뚜껑이 잘 깨지지 않는 이유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낙희화학공업은 플라스틱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1952년의 일이다.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공화국’

이후 우리나라 플라스틱 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플라스틱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됐다. 200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업체는 무려 1589만여 톤의 플라스틱을 생산, 이중 651만톤을 국내에서 소비했다. 한 언론은 우리나라를 ‘플라스틱 공화국’으로 칭했는데, 이는 그만큼 우리가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1952년 본격적인 플라스틱 제품 생산에 들어간 우리나라는 플라스틱 공화국으로 불릴 정도가 됐다. 사진은 폐플라스틱의 모습.

그러나 플라스틱의 인기는 한편으론 플라스틱 공해를 의미한다. 1970년 2월 18일 한 신문은 이미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소비가 격증, 제3의 ‘산업공해’로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데 효과적 처리대책으로는 ①신형 소각로 개발 ②재생사용 ③매립용재로서의 활용 ④자연 분해되는 새 고분자 개발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술의 발전은 수십 년 전의 ‘처리대책’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 특히 1970년대엔 상상하기 힘들었던 처리방법까지 등장했다. 바로 비닐봉지나 필름 포장지, 과자봉지, 라면봉지 등 재활용하기 힘든 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뽑아내 재활용하는 처리방식이다. 이 기술에서 가장 대표적인 국가인 일본은 1999년부터 이미 상용시설을 가동해 기름을 뽑아내고 있다.

폐플라스틱 유화 기술, 늦었지만 큰 성과

우리나라에선 신대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대체연료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이 과학기술부의 프론티어21 사업 지원을 받아 2000년 3월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시작은 늦었지만 신 박사는 1990년 초부터 폐타이어 유화기술을 연구했던 경험을 살려 이내 세계 수준의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코리아알앤디라는 업체가 신박사와 함께 연 3000톤 규모의 폐플라스틱 유화플랜트를 전북 김제에 설치하고 실증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플라스틱은 석유로 만든 원료를 합성해 만들어진 것으로 열분해 과정을 통해 다시 석유로 되돌릴 수 있다. 실제로 잘게 부순 각종 플라스틱을 400℃ 이상의 반응로에 넣어 녹인 뒤 냉각하면 혼합유와 가연성 가스, 찌꺼기가 나온다. 이때 혼합유를 정제하면 휘발유와 경유 등이 쏟아진다.

이론상 쉽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다. 열에 녹은 플라스틱이 반응로 벽에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작업을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예전엔 원료를 넣고 기름을 생산해낸 뒤 찌꺼기를 빼내고 청소를 해야 했다. 보다 대규모의 상업화를 위해선 원료만 집어넣으면 석유를 생산해내는 연속식 설비가 필요하다.

원료만 넣으면 자동으로 기름 ‘콸콸’

이에 신 박사는 원료만 넣으면 자동으로 기름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고안했다. 우선 수직원통형 가열로 안에 나선형 튜브를 설치하고 펌프로 플라스틱을 고속으로 순환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덕택에 넓은 가열면적을 확보해 녹은 플라스틱에 반응기가 막히는 현상을 억제하는 한편 균일하고 안정적인 반응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또 반응로에서 나온 결과물에서 반응이 덜 끝난 플라스틱을 다시 이전 단계의 반응로로 집어넣는 순환방식을 도입해 보다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내놓도록 했다.


신 박사가 고안한 폐플라스틱 유화 시설 구조도.

과정은 어려웠다. 시중에 나와 있는 국산 제품만으로는 설비를 국산화하자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을 고속으로 이동시키는데 필요한 펌프는 열분해 반응에 필요한 온도인 400℃를 버텨야 하는데, 국산 제품에선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신 박사는 거의 자작하다시피 해서 부품을 조달했다. 이렇게 노력을 했지만 반응로에 담긴 플라스틱의 양을 측정하는 ‘레벨측정장치’까진 만들 수 없어 수입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폐플라스틱 1톤으로 기름 780㎏ 생산

신 박사는 이같은 과정을 거쳐 연 70톤급 설비를 만들었다. 실험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이에 연 360톤급 설비를 거쳐 연 3000톤급 설비를 만들었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실증실험에 착수했다. 실험 결과 효율은 78% 가량으로 높았다. 즉 폐플라스틱 1톤을 집어넣을 경우 약 780㎏ 가량의 기름을 얻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중 34%는 휘발유에 가까운 경질유였고 66%는 경유와 비슷한 중질유였다.


지난해 본격 실증가동에 들어간 전북 김제의 연 3000톤급 폐플라스틱 유화 시설의 모습.

이는 우리보다 먼저 기술개발에 착수한 일본보다 앞선 수준이라고 한다. 일본에선 현재 1만2000톤급 폐플라스틱 유화플랜트 1기와 6000톤급 2기 등을 가동하고 있는데, 기름 생산효율이 65% 가량으로 우리보다 낮은 편이다. 그나마 전체 기름제품 중 40% 가량은 왁스와 같은 저품질 기름이다.

신대현 박사는 “일본은 우리보다 투자규모가 커서 사업화 수준이 앞섰지만 일본 내부의 이유로 활성화되지 못해 기술만을 보면 우리가 앞섰다”며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연간 약 140만톤 가량의 원유수입 대체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도심 속 유전사업’, 세계 100대 기술 선정

200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플라스틱 쓰레기량은 총 465만톤. 우리는 이중에서 30% 가량인 143만톤만 재활용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소각하거나 태우고 있다. 만약 소각하거나 태우는 폐플라스틱 중 150~200만톤만 유화플랜트에 집어넣는다면 약 140만톤 가량의 기름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야말로 도심 속 유전이라 할 만하다.


신 박사는 이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2005년엔 일본 국제박람회에서 관련 기술로는 홀로 세계 100대 친환경 기술로 선정돼 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일본정부와 심사위원회는 전세계 236곳으로부터 지원서를 받아 환경기여도와 기술독창성, 범용성에 주안점을 두고 100대 기술을 선정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다. 전북 김제 시설을 가동한 총 시간은 50여시간에 달하지만 연속 가동 시간은 최대 11시간 30분 정도. 코리아알앤디측은 보다 길게 가동해 설비의 성능과 안정성을 파악한 뒤에야 본격적인 상용화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료 처리 문제도 넘어야할 산이다. 신 박사의 장비는 원료 투입 전처리를 필요로 한다. 즉 지름 1㎝ 이내로 잘게 분쇄해 반응로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식용유 통 등 딱딱한 플라스틱은 전처리가 쉽지만 비닐 봉지 등 폐비닐은 잘게 잘라 반응로에 집어넣기가 쉽지 않다.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재활용이 가능한 식용유통 등 딱딱한 플라스틱 대신에 재활용이 어려운 비닐 등을 주원료로 삼아야 한다.

어찌 보면 이제 8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기술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 큰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의 석유소비 구조를 보면 석유화학산업의 원료 등 산업생산용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어 소비를 줄일 가능성이 낮은 편이다. 신 박사는 “지금도 시멘트를 만드는데 폐플라스틱을 석탄의 보조연료로 활용하고 있긴 하지만 국가적으로 어떤 에너지가 더 필요한지 선택해야 한다”며 “이 기술은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면서 에너지 중에서 가장 고급인 석유를 만들어낸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008.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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