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와 인터뷰
이명박 대통령은 22일 “이번 금융위기는 기존 금융시스템이 현재 금융계의 발전에 적합하지 않음을 보여준다”면서 “IMF(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등 기존 체제를 대폭 개혁하든지 완전히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야 할 시점에 온 것만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22일자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국제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주창하고 있는 ‘신(新) 브레튼 우즈’ 체제 창설 논의에 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모범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면서 “이런 우리가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들 때 신흥국가들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어 “지금의 금융위기는 아시아에만 국한된 1997년과 달리 세계경제 전체에 타격을 주고 있다”며 “일부 국가들이 외환위기와 실물경제 침체로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띄게 될까 우려되는데, 이런 때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활발하게 교류하는 것이 세계경제 살리기에 유익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세계경제 침체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규제 합리화·감세 등을 통해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렇게 되면 내년 4/4분기쯤 회복세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EU FTA 연내 타결 기대”
이 대통령은 한-EU(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과 관련, “연내에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아시아-EU 정상회담 기간에 사르코지 대통령과 만나 이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체 국면의 남북대화에 대한 질문에 이 대통령은 “현재는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개성공단이나 관광객은 지금도 오가고 있다”면서 “북한이 외부 세계에 문을 여는 것이 유익하다는 사실과 이를 위해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관련, “북한사회는 여전히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정상적으로 움직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북한 정권이 그렇게 쉽사리 무너져 내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끝으로 녹색성장과 관련, 이 대통령은 “21세기가 녹생성장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프랑스와 녹색성장 중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제 1일간지 르 피가로는 22일자 1면(사진 게재)과 10면 국제면에 걸쳐 이 대통령과의 인터뷰 전문을 게재했다. 이 대통령과 르 피가로 회견은 지난 18일 오전 9시 청와대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르 피가로 회담 전문.
1. 사르코지 대통령은 신 브레튼 우즈 체제 관련 회의를 제안했다. 제안에 동의하는지?
이번 위기는 기존 (아날로그) 금융감독시스템이 현재 (디지털 시대) 금융계 변화에 맞춰가지 못함을 보여준다. IMF나 세계은행 등 여러 국제기구가 있지만 새로운 금융거래환경에서는 현재 있는 체제를 대개혁하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기구를 만들든지, 보완을 해야 할 그런 시점에 온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2.한국의 입장은? (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길 원하는지 구체적 제안이 있는지?)
한국은 1997년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직접적인 당사국으로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모범적으로 이뤄냈다. 이런 우리가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들 때는 신흥국가의 여러 나라가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3.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있나?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평균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침체되면 그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수출이 줄어드는 만큼 내수를 늘리기 위해 우리는 규제를 합리화하고 감세해서 외국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고 국내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적극적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국가경쟁력을 갖는 전략을 펴려고 하고 있다. 또 세계 주요 국가들이 모여 재정투자를 과감하게 하고 세계경제를 살리자는데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내년 4/4분기쯤 되면 회복세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다만 몇몇 국가들이 이런 외환위기와 실물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소위 보호무역주의의 성향을 띌까봐 그게 걱정스럽다. 이런 때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는 것이 세계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4. 현 위기가 97년 위기보다 심각한지?
그때와는 좀 내용이 다르다고 본다. 당시 위기는 아시아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현 위기는 미국, 유럽 모든 나라에서 오고 있다.
5. 한국과 EU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신속히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는지?
현안의 한 두 가지만 해결되면 연내에 타결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번 베이징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 기간 중에 사르코지 대통령과 만날 예정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할 생각이다. 한-EU FTA가 체결되면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한국을 중심으로 동북아 국가들에 진출하는데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6.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측이 승리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각 당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미국은 한미자유무역 협정 체결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마 민주당이 되더라도 자유무역협정이 비준되는 데는 의회통과에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7. 동북아시아에서 폭 넒은 경제통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지?
아시아의 한·중·일 3국은 경제통합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협력을 통해서, 예를 들면 외환위기를 맞아 역내 통상과 투자문제 등에 대해 아주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협력이 더욱 강화되면 한 단계 더 높은 협력수준으로 갈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8. 아시아 안보체제는?
외교에서 한 단계 높은 관계로 중국 러시아와 군사안보문제에서 서로 협력하는 단계에 가 있다. 또 안보문제는 한·중·일 뿐 아니라 러시아 미국까지 합쳐서 균형을 잘 유지하게 되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9. 현재 남북대화가 정체상태에 있는데 해결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과거에 남북간 대화는 투명하고 정상적이며 균형 잡힌 대화가 아닐 때가 많았다. 현재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개성공단이나 관광객은 지금도 가고 있다. 역대정권이 바뀌면 북한은 항상 초기에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국제사회에 개방돼 나오면 경제를 자립할 수 있다, 또 개방을 하기 위해서는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에 개방하는 것이 북한을 위해서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 그것이 북한사회를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또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10.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고 보는지?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 없다 단정지을만한 현상을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6자회담 핵 폐기 조사과정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그 문제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만한 기술적인 능력은 있다고 보는 것이 아마 맞지 않나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이 좀 더 국제사회가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진솔하게 협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11.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이상설도 나오고 있는데 북한의 붕괴 가능성은?
북한 사회가 그렇게 쉽게 붕괴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국제사회는 여러 가지 대비를 하겠지만 북한사회가 그렇게 쉽게 붕괴될 것이라고는 현재 생각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현황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으니까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나는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 때문에 북한에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북한사회는 김정일 위원장을 중심으로 정상적으로 움직여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12. 한국의 녹색성장에 프랑스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녹색성장은 녹색기술을 가지고 뒷받침한다. 우리가 21세기에는 이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화석에너지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우리 모든 인류의 과제인데 그 중에 신재생에너지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나는 프랑스와 이 녹색성장에 있어서 특히 에너지에서 협력할 분야가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13. 사르코지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닮은 점이 많다. 뉴스위크지도 그렇게 분석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어떤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그리고 사르코지 대통령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일단 먼저 사르코지 대통령이 그루지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보여준 리더십이나 금융위기에 대처해 EU 의장으로서 유럽 국가들에게 서로 공동보조를 맞추도록 이끌어낸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 제가 대선에 당선된 후 나중에 사르코지 대통령이 선거할 때 보니까 경제 자유화, 친시장 정책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개선 등 정책의 유사점이 많아서 뉴스위크지에서 그렇게 본 것 같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보여줬던 리더십을 아시아 관계 개선에서 발휘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