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다시보기> 언론, 통계 공부 좀 합시다
'통계' 잘못 해석 일쑤
이승형 홍보기획행정관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숫자로 보여지는 통계 수치야 말로 객관적 지표로서의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를 잘못 해석하거나 '아전인수' 식으로 악용할 경우 '객관성'의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일찍이 미국의 통계학자 대럴 호프는 이같은 경우를 가리켜 "통계는 정보를 전달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일반인이라면 '숫자에 속을 수 있는 것'이 통계의 또다른 얼굴이라는 말이다.
이같은 점에서 최근 일부 언론의 통계 '해석'은 현혹되기 쉬운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해석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릇된 해석은 엉뚱한 여론과 처방을 불러올 수 있다. 그 해석이 고의든, 실수든 말이다.
서로 다른 잣대로 똑같이 비교하는 오류
경향신문은 지난 3월 2일자 1면톱으로 <盧정부 공공지출 줄어 '삶의 질' 더 나빠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신문은 그 근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6년 사회통계' 보고서를 들었다.
"연금·보건의료비·소득이전 등을 포함하는 공공사회복지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현재 우리나라는 5.7%로 OECD 30개 회원국 중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 특히 우리나라의 공공사회 복지비지출 비중은 2년 전인 2001년(6.1%)에 비해 0.4% 포인트 낮아져 오히려 사회복지비 지출 비중이 작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기사는 두 가지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2003년 공공사회지출은 참여정부 출범 이전에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기사는 참여정부 이전의 통계 수치를 인용해 참여정부의 복지지출을 비판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둘째, 이 기사가 "2003년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이 2001년에 비해 낮아졌다"고 주장하는 대목은 한 마디로 틀렸다. 이는 2001년과 2003년의 GDP 계산 방식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 발생한 오류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나온 통계수치를 똑같이 비교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2001년의 GDP 계산방식대로 2003년의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 비중을 계산하면 6.7%가 된다. 2001년에 비해 오히려 0.6% 포인트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 2003년의 새로운 GDP 계산방식에 따르면 2001년의 공공사회지출은 6.1%가 아닌 5.4%로 낮아진다. 이 경우에도 2003년 공공사회지출(5.7%)은 2001년보다 오히려 0.3% 포인트 증가하게 된다.
OECD도 이같은 점을 인정해 2004년 6.1%로 발표했던 2001년 공공사회지출을 이번에 5.4%로 수정, 발표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프랑스나 독일도 GDP 계산 방식의 변경에 따라 공공사회지출이 축소 조정된 바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공공사회지출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2005년 GDP대비 공공사회지출은 8.6%로 추산돼 2003년 5.7%보다 2.9%포인트 늘었다.
이같은 사실은 확인하지 않은 채 그릇된 해석으로 "공공지출이 줄어들었으니 삶의 질이 더 나빠졌다"고 보도하는 것은 객관성과 거리가 먼 단순무지한 주장일 뿐이다.
통계에 대한 무지한 해석은 엉뚱한 결론을 낳는다
위 기사는 숱한 '통계해석의 오류' 중 하나일 뿐이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9월4일자 1면톱으로 <빈곤층 계속 는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서민이익을 대변한다는 참여정부 들어서도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현황'이라는 보고서에서 3일 확인됐다.... 2001년 141만 9000명이던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2003년 참여정부 출범 후에도 증가세가 이어져 지난해 151만3000명까지 늘어났다"
이 기사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4년새 10만명 가까이 늘어난 것을 빈곤층 증가의 근거로 들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빈곤층을 동일시해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증가=빈곤층의 증가'로 해석한 것이다.
무지 아니면 악의가 있는 보도다. 왜냐 하면,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를 늘리는 정책을 펴왔다. 바로 빈곤층 보호를 위해서다. 부양의무자 기준완화, 재산의 소득환산제 도입 등 기초생활보장수급자 확대 정책을 시행해 온 것이 오히려 빈곤층 증가의 근거로 활용됐으니 정부로선 어이가 없는 대목이다. 이 논거대로라면 빈곤층을 줄이기 위해 기초생활보장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경향신문 잣대라면 올해에도 빈곤층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예산과 지원대상자를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지원대상자는 지난해보다 4만여 명 늘어난 167만명으로 확대되고, 예산은 5조 3438억 원에서 6조 5831억 원으로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의 기준이 되는 최저생계비가 2002년 99만원(4인 가족 기준)에서 지난해엔 117만원으로 인상됐고, 올해에는 1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생계비를 올릴수록 최저생계비 이하 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전향적인 정책을 펼수록 통계상 빈곤층이 늘어나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최저생계비란 물가상승 등을 감안해 올리게 된다. 만약 최저생계비를 동결했거나 줄여서 기초생활수급자 수가 감소했다면 이 신문은 뭐라고 썼을지 궁금하다. <빈곤층 줄어들고 있다>라는 제목이라도 뽑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임대주택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빈곤층은 늘어난다?
이 신문은 또 같은 기사에서 "자기 집을 잃고 세입자로 전락하거나, 일자리 경쟁에서 밀리는 등 빈곤의 질 또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일반수급자 가운데 자기 집에서 사는 사람은 2001년 17만2000가구에서 지난해 15만4000가구로 줄었다"고 보도했다.
서민들의 주거안정이 악화됐다는 사례로 종종 사용되는 통계가, 자기 집을 잃고 세입자로 전락한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는 분명 생활여건이 더 어려워져 불가피하게 세입자로 전락한 경우도 있겠지만, 정부의 임대주택공급확대에 따라 주거여건이 더 좋은 임대주택으로 옮긴 경우도 있을 것이다.
98년 국민의 정부에서부터 시작된 국민임대주택 사업은 '05년말 현재 37만 8179호가 건설됐다. 참여정부는 2012년까지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특히 도심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시작한 다가구매입임대사업, 전세임대사업은 정책수혜자들의 높은 호응 속에 매년 물량을 늘려가고 있다. 일정기간 경과 후 분양되는 공공임대주택도 당해기간 중 주택보유를 유예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같은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에 따라 총주택 중 임대주택 비중은 2000년 6.6%에서 05년 9.4%로 크게 높아졌다. 반면 자가주택점유율은 54.2%('00)에서 55.6%('05)로 큰 변동이 없다. 임대주택비중과 자가주택비중은 본질적으로 상충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임대주택을 많이 지을수록 자가점유율은 낮아지거나 증가폭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실업급여 수혜율 증가추세는 '사회보장의 확대'
통계착시 사례는 또 있다. 조선일보는 2006년 1월3일자에 "2005년 1∼11월 사이의 실업급여 신청자가 1998년 IMF외환위기 때(43만8456명)를 능가해 52만여 명에 육박했다.... 실업급여 신청자 수의 증가는 '해고근로자'가 많다는 것을 말한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일자리창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업자 수가 쉽게 줄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로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근거와 사례는 정확해야 한다.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어난 것을 곧바로 해고 근로자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실업급여제도는 근로자가 부득이한 사유로 실직했을 때 정부가 새 직장을 찾을 때까지 생계를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다. 정부가 2004년 1월 실업급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일용직 근로자에게까지 고용보험 가입대상을 넓힌 것도 이런 이유다. 그 결과, 실업급여를 받는 일용근로자는 2004년(1∼11월) 2310명에서 2005년 같은 기간 2만264명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이를 두고 일용직 해고 근로자가 10배 이상 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정확한 거례가 아니다.
고용보험 적용대상이 확대되고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실제 전체 실업자 대비 실업급여 수혜율이 '02년 16.6%에서 '05년에는 25.6%, ′06년 30.0%로 크게 증가했다.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지만, 이같은 실업급여 수혜율 증가추세는 '사회보장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
정확한 통계 해석이 적절한 처방 낳는다
언론이 어떤 통계를 가지고 정부를 비판할 때에는 사실확인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해석을 전제로 해야 한다. 'A는 B고, B는 C니, 고로 A는 C다'라는 식의 단순무지한 해석은 무책임한 보도행태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정부든 언론이든 통계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적절한 처방을 할 수 있다. 빈곤층을 줄이기 위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축소하는 게 올바른 처방이 아닌 것처럼, 기초생활수급자의 증가를 빈곤층의 증가로 진단한 것부터가 오진이다.
이제부터라도 언론은 국민을 위해 유용하고 설득력있는 진단을 내리기 바란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07-03-07 10:34:09 카빙뉴스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