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중명전(*중명전은 현대식 건물로서 덕수궁과 떨어진 예원학교 옆에 위치해있습니다)에서는 <우당 이회영과 육형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를 왜 이곳에서 했을까요? 바로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제인 11월 17일은 우당 이회영 선생이 순국하신 82주기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명전의 이 전시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의미 깊다고 할 것입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은 여섯명의 영의정과 한 명의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의 자손들이었습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도 선생들의 직계 선조가 됩니다. 구한말 이회영 가문은 손꼽히는 거부에 명문가였음에도 신식교육을 일찍 받은 영향으로 과부가 된 누이를 재가시키고, 남의 집 노비에도 존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찍 자신들 집의 노비들을 면천시키고, 임금을 주는 현대식 고용관계를 확립한 선각자적 집안이기도 했습니다.
국권을 빼앗기자 그 많은 전답과 재산들을 매각하여 독립 자금으로 삼아 만주로 망명한 것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물론 급매를 한 까닭에 헐값에 팔리는 손해를 감수하고도 이를 실행에 옮길 정도로 독립에 대한 열망은 강렬했습니다.
불행히도 이회영 선생과 형제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 자금을 대느라 집안의 가산은 모두 소진되었고, 한때는 끼니를 굶어야 할 정도로 빈곤해졌던 것이지요. 그래도 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은 군자금을 모으고 독립 운동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신이 아닐까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절실한 요즘 귀감이 되는 어떤 독립운동가 형제들의 이야기입니다.
어제는 이회영 선생의 직계손인 이종걸 의원님께서 사진모델로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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