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보수주의의 미래는 있는가?
윤 평 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한국 보수의 최대 위기다. 보수가 19대 대선처럼 처참하게 일패도지(一敗塗地)한 적은 없었다. 1위와 2위 득표 격차가 557만 표로서 역대 대선 가운데 최대 기록이다. 두 보수 후보가 얻은 걸 다 합쳐도(홍준표+유승민=30.8%), 진보와 중도후보들(문재인·안철수·심상정)이 획득한 총 68.7%의 절반에도 훨씬 못미친다. 대선 기간 동안 강경보수 세력 일부가 유승민을 진짜 보수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유승민 후보가 얻은 표를 보수 표에서 제외하면 상황은 더 충격적인 지경이다. 非보수의 비율이 보수의 3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가히 보수의 총체적 몰락이라 할 만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단순 계산이 보여주는 결과도 놀랍지만 대선 통계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TK와 경남을 제외한 전 지역과,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세대에서 보수 후보를 물리치고 압도적으로 고른 지지를 확보했음을 보여 준다. 더 흥미로운 건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 기간이 없이 전격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놀라울 정도로 순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이 빚은 기저효과와 신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빚은 정치적 허니문 기간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그 걸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환호와 열광은 집단적 유포리아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취임 3주차 기준으로 향후 5년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88%에 이른다. 국민 10명중 9명이 문 대통령이 잘할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은 물론이거니와 야당 지지자들도 정의당 94%, 바른 정당 84%, 국민의 당 79% 순으로 문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유한국당 지지층 가운데서도 문 대통령이 잘 할 것이라는 응답(57%)이 잘못 할 것이라는 답(27%)보다 배 이상 높았다. 정당 지지율도 민주당이 51%로 역대 민주당 계열 중 처음으로 50%를 돌파한데 비해 야당들은 지리멸렬한 상태에 가깝다(자유한국당 8%, 국민의 당 7%, 바른정당과 정의당이 각각 6%). 지역적으로는 대구 경북에서도 문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9할에 근접해 있다.
우리 논의의 출발점은 이런 통계가 우회적으로 입증하듯 보수의 몰락이 자업자득이라는 사실이다. 선거 패배보다 훨씬 위중한 사태는 한국 보수가 국민다수의 신망을 상실해버렸다는 점이다. 2017년 상황에서 한국 보수가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수구 기득권 집단으로 여겨진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건국과 산업화의 주역으로 자임해 온 보수가 왜 이렇게 궁박한 지경에 몰리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보수의 자부심은 어디로 간 것일까? 보수의 부활을 위한 근본 전제는 자기성찰성이다. 보수가 직면한 총체적 위기 자체가 보수가 자초한 것이라는 통절한 반성이 함께 해야만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보수의 위기는 보수 ‘바깥’이 아니라, 보수 ‘안’에서 먼저 탐색되어야 마땅하다.
한국 보수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보수의 목소리가 한국사회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보수는 스스로의 입장을 우리 사회 공론영역에서 합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있다. 정치공동체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 필수조건인 헤게모니의 두 원천은 힘과 동의다. 구조적으로 보수 우위인 한국사회에서 보수의 물리력은 여전히 강대한데 비해 보수의 논리에 대한 자발적 동의 창출능력은 급격히 감소했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적 행태와 전무후무한 국정농단조차 옹호했던 세력이 보수의 이름을 참칭했던 것보다 더 생생한 반면교사도 없다.
이는 ‘정치인 박근혜’의 몰락과 친박의 궁극적 괴멸만으로 국한되지 않는 중대 사태다. 보수 기득권 집단의 이념적 빈곤이 근본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보수의 패권을 장악한 강경보수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워왔지만 그들의 실제 행태는 건강한 자유주의도 아니었으며 성숙한 민주주의로부터도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 보수 위기의 핵심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적 자유와 권리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보수 기득권세력은 시민들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여겨 자유민주주의를 자신들의 패권을 강화하는 도구로 왜곡해왔다.
국무회의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의 자유토론을 대통령이 금기시하고, 색깔론과 블랙리스트로 언론과 문화인들을 통제했던 행태는 자유민주주의 원리와 정면에서 충돌한다. 냉전반공주의, 시장숭배, 봉건적 관행, 기회주의와 권력추수주의 등이 섞여있는 기득권 보수에게 일관된 보수 이념은 발견하기 힘들다.
한국 보수의 위기는 정치사회 세력으로서의 보수가 ‘이념으로서의 보수주의’를 결여한 데서 비롯된다. 보수 위기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 이론과 실천을 통섭한 보수주의 이념의 빈곤에서 나온다.
보수의 위기를 보수 부활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다. 한국 보수의 철저한 자기성찰과 전면적 재구성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보수라는 이름을 앞세우지만 수구에 가까운 특권세력을 축출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벌거벗은 이익추구에 바쁜 가짜 보수가 죽어야 자기희생과 도덕성을 갖춘 진짜 보수가 산다. 대한민국 자체가 보수가 주도한 나라라는 자긍심이야말로 이런 반전(反轉)의 출발점이다. 보수의 위기와 해법을 말할 때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멀리 길게 보아야한다. 보수의 사상적 빈곤을 고뇌하는 한국 보수주의의 철학적 재구성이 절실한 이유다.
이런 반성적 논의는 평범한 보수 시민의 정체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전쟁의 참화와 절대빈곤의 기억은 한국 보수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민주주의와 풍요를 누리는 한국인의 현재도 과거와의 연계 속에서만 가능했다. 그런 맥락에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껴안은 보수적 통찰은 소중한 교훈이다. 특권과는 거리가 먼 평생을 살아온 대다수 보수 시민의 삶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인 채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보수는 수구로 퇴행해 갈 수 있다.
온전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보수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로 승격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철학을 한국 보수주의의 근본이념으로서 재조명할 필요성을 강조해야 할 긴박한 시점이다.
보수 위기담론이 갈수록 증폭된다 해도 사실 한국사회의 정치·사회·경제 지형은 보수 우위의 구조다. 분단체제와 6·25전쟁의 규정력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보수의 우위는 심각한 내용적 위기를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 헤게모니 자체가 자기 정당화의 균열이라는 내적 약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최악의 형태로 보여주었던 그대로다. 최순실 사태가 폭로되기 이전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보수의 심각한 내부 균열과 동행했다. 대통령의 일방통행적 통치아래 정치의 부재로 인한 체제 부담이 쌓임으로써 87년 체제에 고유한 ‘통치불가능성’의 폭발력이 축적되어갔다.
한국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해 온 보수는 체제 위기의 본질을 인식했어야 했다.
이런 인식을 결여한 패권적 보수가 강경 드라이브를 걸수록 위기의 강도가 커졌다. 이것이 2016년 가을 최순실 사태 직전 상황이었다. 최순실 게이트는 통치불가능성의 질곡을 화산처럼 폭발시킨 인계철선 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통치불가능성의 도전은 보수에게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아직까지는 쾌조의 스타트를 보여주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동일한 도전에 직면하는 것도 시간의문제에 불과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보수는 사회세력으로서의 보수 우익의 한계를 넘어서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념과 철학을 갖춘 한국 보수주의로 진화해 나가야 한다. 군사독재시절 냉전 반공주의가 굴절시켰음에도 입헌주의적 견제와 균형의 원리, 권력분립, 법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자유 같은 시민적 기본권도 자유민주주의의 근본가치다. 공정한 시장경제는 한국 보수주의의 또 다른 기둥이다. 시장경제의 성공과 생산력 확대는 보통 사람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토대를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창출했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평가받는 배경이다.
냉전 반공주의가 왜곡한 자유민주주의와, 천민자본주의가 굴절시킨 시장질서의 복원이이야말로 현 단계 한국 보수주의의 최대 과제다. 정권과 재벌이 이권을 부당거래 함으로써 국민경제에 타격을 주고 사회통합을 해치는 모습은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이다. 산업화에서도 재벌의 공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고질적 정경유착으로는 더 이상의 경제발전 자체가 어렵다. 시장질서의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선진경제 진입이 가능한 것이다.
북한 핵 위협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안보는 철통 같이 지켜져야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빨갱이로 여겨 배제하는 냉전 반공주의만으로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6·25전쟁의 참화와 보릿고개의 절대빈곤이 한국 보수의 원형적 기억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냉전 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는 미래지향적인 21세기 보수주의와 같이 가기 어렵다.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실천에 대한 정밀한 재조명을 통해서만 한국 보수주의의 재구성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자체가 보수가 만든 나라라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보수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정공법으로 다루어야 할 윤리적 책무를 진다. ‘한국 보수주의의 미래가 있는가’의 화두에 답하기 위해서는 어지러운 현실의 핵심에 육박해 들어가야만 한다. 보수 패권세력이 왜곡한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실제 내용이 냉전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의 결합이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이유다. 패권 집단화한 한국 주류 보수는 각양각색의 지대(地代) 추구에 안주해 자신들만의 성을 높이 쌓아올림으로써 보수의 위기와 한국사회의 위기를 초래했다. 자유주의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도 거부하며, 공화정의 정신도 부인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대 영속시키는데 여념 없는 보수패권 집단의 모습은 천민적이라고 규정되어야 마땅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공화정의 이념을 지향해야만 한국 보수주의는 밝고 창대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이런 나의 논의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화정 이념의 갈등과 상호보완이라는 정치철학적 배경을 지닌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패권적 보수의 천민성은 反자유민주주의적일뿐 아니라 ‘시민 모두를 위한 나라’라는 공화정의 이념에 근본적으로 역행한다.
부의 양극화나 우중정치 같은 현대자유민주주의에 내재된 본질적 결함들을 시정할 수 있는 공화정의 핵심 정신은 ‘지배할만한 능력과 자격을 갖춘 자가 지배해야한다’는 명제로 압축된다. 공화정에서 공공성과 법치주의,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의 시민윤리가 필수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패권적 보수는 정치의 본령이어야 할 공공성을 붕괴시킨다. 천하위공(天下爲公)해야 할 지도자와 지배층이 사적이익의 극대화에 부심하며, 배제를 일삼고, 못 가진 사람의 몫까지 뺏는 천민성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보수패권 집단은 ‘우리 모두의 나라’가 아니라 ‘그들만의 나라’를 세우는 데 바빴다. 한국 보수의 미래를 탐색하면서 이런 反공화국적 모습에 대해 직설(直說)을 삼갈 때 진단의 설득력은 그만큼 감소한다. 진단이 철저하지 않을 때 처방전도 모호해진다. 또 다른 문제는 자유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개혁적 보수의 목소리가 보수 진영 안에서도 현실적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개혁적 보수의 움직임이 지식인 담론으로 제한되어있는 것이 그 증표다. 이번 대선에서 개혁 보수를 주창한 유승민과 바른 정당이 보수 주류로 대접받지 못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과거에 머무는 보수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온전한 자유민주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제만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지킬 진짜 애국심과 시민의식을 낳는다. 여기서 우리는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이 공화정으로 들어가는 왕도임을 확인하게 된다. 진정한 보수는 법치주의의 준칙과 정의의 덕목을 솔선수범한다. 병역과 납세의무를 다하는 사회지도층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때 국가가 튼튼해진다고 믿는 이들이야말로 참된 보수다. 합리적 보수는 포용적 사회경제정책을 펴 사회적 약자를 껴안는다. 법 앞의 평등이 확보되고 지나친 경제적 격차가 줄어야 보수가 꿈꾸는 정의로운 공동체가 가능하다.
한국 보수주의의 앞날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미래지향적 국가이성과 동행해야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드러나는 공화정의 요소는 헌법 1조와 4조, 그리고 헌법 119조에 대한 비교분석을 통해 더 분명해진다. 대한민국 헌법은 “민주공화국”(1조 1항)을 선포함과 동시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4조)를 천명한다. 정치 이념적으로 민주주의, 공화정, 자유주의가 섞여 있다. 세 이념은 상호침투와 만남의 과정을 거쳤지만 이들의 역사적 연원과 지향은 같지 않다.
세 이념을 토대로 해야 한국 보수주의의 미래 전망이 훨씬 풍성해진다.
무릇 정의롭지 않은 국가는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다. ‘부정의(不正義)한 공화정’은 형용모순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정치공동체에서 안개처럼 피어나는 르상티망(원한)은 헌법적 애국주의의 형성을 막아 헌정(憲政)의 활력을 시들게 한다. 열린 애국심은 인종과 민족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삶의 질서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충실성으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한국사의 오랜 숙제였던 정의와 공정성의 화두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역사적 필연에 가깝다.
시대적 과제에 담대히 직면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보수여야 미래의 희망을 꿈꿀 수 있다. 정치공동체의 궁극 목표가 정의 실현에 있고 정의의 최고법적 표현이 헌법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의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은 일심동체에 가깝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에서 가장 생소한 가치 가운데 하나는 공화정의 이론과 실천이다. 공화주의적인 삶의 부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 사이에 상호적대적인 삶을 널리 퍼트렸다. 헌법문서의 차원에 머무름으로써 박제화 된 공화국의 꿈에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은 우리사회 진화의 현 단계에서 최대의 도전이다. 만약 한국 보수주의가 이런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할 수 있다면 보수의 미래는 찬란할 것이다.
간난(艱難)의 세월 동안 우리는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경제강국으로 수직 상승했다. 역동적인 민주주의도 이루었다. 한국적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의 결과 채 100년도 안된 대한민국이 준(準)선진국으로 떠오른 것이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취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시민들의 삶은 팍팍하며 미래는 불확실하다.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불만과 불신이 끓는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나라를 지옥에 빗대는 ‘헬 조선’, ‘망한 민국’이란 말까지 나온다.
진정한 공화정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성숙한 시민들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진정 바란다면 함께 그 길로 나아가야만 한다.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이 강할수록 공정하려 애쓰며, 가진 자일수록 의무를 다하는 풍토에서만 사회적 신뢰가 싹튼다. 신뢰와 공정성이라는 사회 자본에 비례해 통합과 관용지수가 증가하고 경제성장이 빨라진다는 건 확고한 경험칙(經驗則)이다. 신뢰야말로 삶을 풍성하게 하고 국격(國格)을 드높이는 결정적 힘이다. 결국 신뢰 없이 선진국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뢰와 공정성, 정의 같은 미래지향적 가치들은 공화사회의 바탕 위에서만 온전히 실현 가능하다. 국수주의적인 과거의 국가이성이 미래지향적이고 변증법적인 국가이성으로 진화하고 민주공화정이 공고화할 때 대한민국의 꿈은 영글어간다. 공화정이야말로 대한민국을 미래로 이끌 진정한 한국몽(韓國夢)이다. 한국 보수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함과 동시에 공화정의 비전을 선도하는 역사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응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 보수주의의 앞날이 담보된다.
결국 패권적 수구보수의 몰락은 한국 보수주의의 부활을 위한 불가피한 진통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한국 보수가 현대사에서 책임져왔던 역사의 무게를 감안하면 21세기 개혁보수가 겪고 있는 현재의 고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며 짧지도 않을 터이다. 그럼에도 한국보수의 앞날은 결코 어둡지 않다. 보수주의의 미래는 개혁보수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유승민 후보의 드라마틱한 반전이 증명하듯 삶과 정치에는 의미심장한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위기는 곧 기회이며, 미래는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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