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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작은 여자로 살아가기
  글쓴이 : 김 혜란     날짜 : 07-01-11 15:34    

키작은 여자로 살아가기

 

〈김혜란/한신대 외래교수·신학〉

 

“큰 딸에게 키 크게 하는 한약을 먹이고 있다고?”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지나친 한국 사교육의 현실에 비판적인 내 친구는 두 딸을 과외는커녕 유치원에조차 보내지 않고 초등학교에 보낸 소신 있는 엄마였기에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가 밝힌 이유인 즉 키가 작으면 원하는 직장에도 들어갈 수 없고, 차별을 받을까봐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선 여자가 키 작고 못 생기면 살기 힘들다고 벌써부터 키 작은 아이 걱정을 하며 한참 푸념을 늘어 놓았다.

 

사교육에 저항하던 내 친구가 그 당당하던 의기를 내려놓고 키 작은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의 벽 앞에서 백기를 들다니….

 

캐나다와는 다르다는 그의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했다.

 

필자는 7년 넘게 캐나다에서 살면서 여성들이 외모나 나이로 인해 차별을 받지 않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여자 교수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편한 바지에 점퍼 차림으로 강의를 한다.

장시간 서 있는 전문직 여성들은 하이힐이 아니라, 낮고 편한 신발을 신고 일한다.

반면에 한국 직장 여성들이 화장, 정장 등 겉모습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살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또한 캐나다에서 나이 든 여성들을 직업 전선 곳곳에서 발견하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키 작은 딸을 둔 엄마의 우려를 부채질하면서 사회적으로 그릇된 인식을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엄청난 돈을 벌고 있는 소위 ‘성장 전문 클리닉’ 병원과 한의원, 제약 회사들이다.

 

신문에서조차 큰 키 문화를 조성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키 7㎝ 더 클 수 있는 신물질 KI-180 개발’의 제목이 달린 기사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키가 작은 것은 비정상이므로 고쳐야 할 병으로 인식시키고, 키 작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사실 나도 키가 작다.

 

바지를 사면 기장을 줄여야 한다는 점이 다소 불편할 뿐이다.

 

이와 반대로 키가 큰 남편은 키가 커서 불편한 점을 얘기한다.

 

좁은 비행기 의자 안에서 장시간 쭈그리고 앉아 있기가 큰 고역이라고 한다.

다운 증후군 같은 유전적인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앞서 말한 신물질에 의해 도움을 받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지극히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키가 작아서 차별을 받는다면 이것은 키가 작은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소외시키는 사회가 문제이고 인간의 의식이 병이 든 것은 아닐까?

 

친구와 통화 이후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내게 지난달 말 ‘외모와 나이를 중시하는 여성 채용 관행에 대한 개선 방안’ 발표는 반갑고도 바람직한 소식이었다.

 

우리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고 얼굴, 키, 몸무게, 나이를 적었던 기존의 이력서 관행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얼마나 차별적이며 나아가 균등한 고용의 기회를 떨어뜨릴 수 있는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외모로 차별받는 관행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개정된 법안은 여성들에게도 남성들에게도 귀한 새해 선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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