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발전전략의 전환은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됐습니다. 변화의 요구는 90년대 초부터 시작됐습니다. 세계가 변화하고 있고 한국은 개발독재의 잔재인 관치경제, 불균형 성장 전략으로 인한 후유증, 요소투입형 경제에 발목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마불사의 신화, 과잉 투자, 권위주의, 독재의 잔재, 특권과 반칙, 정경유착 이런 것들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 한국 경제가 변화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위기를 이기지 못한 것이지요. 그래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정부는 4대 부문 개혁-기업, 금융, 노사, 공공 부문의 개혁을 단행했고 혁신주도형 지식기반 경제 전략을 내세웠습다.
그것이 오늘날에 혁신 주도형 경제라는 이름으로 비슷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렇게 했습니다. 실제로 관치금융이 완전히 청산됐고 자유와 인권이 신장되고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설치 등 많은 진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에서 복지정책의 토대가 구축됐습니다. 생산적 복지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바로 국민의 정부가 진보의 정책을 채택한 것이고요, 그 국민의 정부가 시장경제를 강조함으로써 시장경제와 진보정책의 조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평화주의 전략, 포용정책을 통해 안정과 활력을 조화시켰지요. 그래서 라면 사재기, 방독면 사재기와 같은 얘기는 국민의 정부 이래 지금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국민의 정부의 정책을 다시한번 평가해 보면서 과연 지도자의 자리는 머리를 빌려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 같다, (일동 박수) 해박한 지식, 지식과 정보에 대한 탐욕, 깊이 있는 사고력, 잘 정리된 가치와 철학이 꼭 필요한 자리인 것 같다,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정통성, 자주성을 가진 정권
그러면 참여정부, 너의 정체성은 무엇이냐, 참여정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정통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정부이고, 자주성을 가지고 있는 정부입니다.
분열주의 극복,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정권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정권입니다. 저는 88년 분열된 민주세력에 참여한 이래 20년간 줄기차게, 일관되게 지역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국민통합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지역주의를 해소하는 것은 역사의 과제이자 참여정부에 부여된 역사의 소명입니다.
진보와 평화를 지향하는 정부
참여정부는 진보를 지향하는 정부입니다. 참여정부는 역시 평화를 지향하는 정부입니다. 국민의 정부하고 똑같습니다. (일동박수) 좀 다른 게 있어야 하는데…. (일동 웃음) 통합주의를 하나 합시다. 지금도 싸인 해 달라고 하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문구를 씁니다. 계속 애용하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참여정부의 핵심사상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사회, 이것은 자유와 평등, 인권과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의 핵심사상-사람 사는 세상, 사람노릇 하는 사회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람노릇 하고 사는 사회입니다. 도리를 다 하는 인간,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 이것이 저는 사람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제일 무서워 하는 사람이 ‘그러면 지금은 대한민국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요?’ 이렇게 시비를 겁니다. 제가 무서워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시죠? 지금도 우리 집에 있습니다. 조선일보 보고 맨날 훈수하는 사람. (일동 웃음) 이것은 시장만능주의, 시장경제를 강조하지만 그러나 시장만능주의, 경제 제일주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자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은 사람을 위한 시장이어야 하고 경쟁은 사람을 위한 경쟁이어야 합니다.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근본적인 지향점을 저는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보수-강자의 사상, 기득권의 사상
보수가 무엇이며 진보는 무엇인가, 보수는 강자의 사상, 기득권의 사상입니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노력의 결과이므로 강자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강자의 자유를 보장하여 강자가 주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모두 좋아진다는 생각이 보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경쟁시장을 넓히기 위하여 개방을 하자고 하면서 약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나 지원에는 반대합니다. 힘에 의한 질서를 강조하며 갈등은 힘으로 제압하고자 합니다.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며 대외적으로는 대결주의를 주장합니다. 그래서 냉전적 정책을 좋아하는 것이지요.
진보-약자의 권리, 힘 없는 사람의 연대와 참여 존중
진보란 무엇인가. 힘 있는 사람이 누리는 권력을 약자도 함께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힘 없는 사람의 연대와 참여를 중시하는 생각입니다. 시장경제를 필요한 것으로 인정하나, 시장의 한계와 실패를 주목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요구합니다. 개방을 반대하고 대외정책은 평화주의를 지향합니다. 보통 그렇다는 것입니다. 보수는 그러면 연대하지 않는가, 연대하지요. 은밀히 유착하지요. (일동박수)
실현 가능한 대안이 있는 진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진보는 민주노동당의 진보와 어떻게 다른가. 실현가능한 대안이 있는 정부입니다. 현실에서 채택이 가능한 대안, 그리고 타협 가능한 수준으로 정책을 만들고 현실에 적용할 대안을 만듭니다. 법으로 고용을 만들 수 있습니까? 법으로 정규직을 만들 수 있습니까? 만사를 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맞는 정책이라야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 돌아가는 이치에 맞도록 진보적 정책을 쓰자, 이것이 민주노동당과 다른 것이지요.
시장 친화적인 진보
재원조달이 가능한 정책이라야 합니다. 예산의 구조조정도 한계가 있고 세금을 함부로 만들고 올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실에 적용 가능한 진보, 그러니까 실용적 진보입니다. 시장 친화적인 진보입니다. 시장주의의 본질에 반하는 정책은 실현되기도 어렵고 억지로 실현하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하고 왜곡이 발생해서 실패합니다. 그래서 시장친화적인 정책, 그리고 시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책을 제공합니다.
개방 지향의 진보
개방 지향의 진보입니다. 개방의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볼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능동적 개방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점이 기존의 진보와 좀 다릅니다.
배타하지 않는 자주…반미는 또다른 사대주의
배타하지 않는 자주입니다. 반미, 이것도 또한 사대주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미국을 배타적으로 배척할 이유는 없습니다. 바로잡을 것만 냉정하게 바로 잡아가면서, 또 바로잡고 고칠 것은 고치되 한꺼번에 마음 상하게 해서는 좋은 일도 없고 또한 다 성취할 수도 없습니다. 힘도 없으면서 오기만 가지고 다 되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합리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자주의 노선이 필요합니다. 대화하는 진보, 타협하는 진보입니다. 대화와 타협은 민주주의의 요체입니다.
합리적 진보, 실용적 진보, 유연한 진보
비타협 노선은 근본주의, 절대주의에 근거한 투쟁전략입니다. 절대주의 비타협 노선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상대주의와 관용의 원리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타협노선이 가끔 승리에 집착해서 책략에 매몰되거나 극단적인 전향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 한나라당에 그런 사람이 꽤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열린우리당의, 참여정부의 진보를 합리적 진보, 또는 실용적 진보, 유연한 진보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어느 것 하나를 적절하게 채택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맞아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써보면서 채택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어느 때 결정해서 계속 반복해서 쓰면 그것이 국민들에게 정착될 수도 있습니다. 합리적 진보가 가장 포괄적인 용어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도 개념은 부적절…진보, 보수 취하는 실용이 있을 뿐
중도와 실용은 뭐가 다른가. 중도라는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와 보수의 중간에서 어정쩡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책과 보수정책을 실용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적절하게 쓸 수 있는 것이 합리적 진보이기 때문에 중도라는 개념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진보지만 극단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중도진보라는 말은 있는데 그냥 중도라고 말하는 것은 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고전적인 진보의 노선이 오늘날 사회투자 이론 등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이는 여전히 진보일 뿐 중도의 길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은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실용적 진보, 합리적 진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