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치권·언론·지식인의 비겁한 개헌외면을 보며
'침묵의 동맹'이 부른 공론의 위기
홍보수석실
대한민국엔 지금 거대한 '침묵의 동맹'이 형성돼 있습니다. 그 대상은 대통령의 '개헌 제안'입니다. 동맹에는 언론, 야당, 지식인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진보, 보수의 이념적 좌표를 훌쩍 뛰어넘어 동맹 안에서 암묵적 연대로 엮여 있습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좌에서 우까지 이렇게 목소리를 일치시킨 경우는 근래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침묵의 동맹은 이렇게 넓은 이념의 프리즘 속에 수용되고 있지만 그 논거를 요약하면 △정략적이다 △야당이 반대한다 △여론이 반대한다 등 세 가지입니다.
'정략적'이라는 꼬리표를 자신 있게 달고 있지만 논거는 빈약합니다. 근거 없는 정치 공학적 상상력은 '탄핵도 정략'이라는 일부 정치인의 정신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제기하면 정략이 아니고 대통령이 제기하면 정략이란 말입니까.
"개헌발의가 정략이면, 개헌반대는 지고지순 애국충정?"
김기창 고려대 법대 교수는 한겨레 칼럼에서 이렇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제시된 정치적 의제를 우리 언론이 외면하는 또 한 방법이 있다. 제시된 의제를 정략적이라고 몰고 가는 것이다. 개헌 발의가 정략이라면, 개헌반대는 지고지순한 애국충정에서 우러나온 것인가? 제시된 정치적 의제가 정략적인지는 국민이 판단할 몫이다"
야당이 반대한다고 개헌제안을 묵살하는 행위는 의회정치와 3권 분립을 부정하는 발상입니다. 야당이 찬성하는 것만 하라고 하면 대통령과 행정부, 국회는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대통령의 개헌제안 직후 나온 여론조사를 들어 "여론이 반대한다"고 하는데, 이 역시 말이 안 됩니다. 지금까지 책임 있는 정치세력 사이에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개헌으로 현 대통령이 재출마할 수 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20%가 넘습니다. 개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충분히 토론하고 난 다음에라야 정확한 여론을 물을 수 있습니다.
'공론의 위기'가 곧 '민주주의의 위기'
정략적이다, 야당이 반대한다, 여론이 반대한다, 세 가지 주장을 다시 한마디로 압축하면 '더 이상 개헌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침묵의 동맹은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토론을 방해합니다. '되지도 않을 제안을 해 시끄럽게 만들었다'며 타박합니다.
이런 조건에서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따르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언론과 정당 활동을 봉쇄하고 90%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낸 유신개헌 만큼이나 위험한 것입니다. 과거 독재정권은 총칼로 정보의 유통을 가로막고 여론을 왜곡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권과 언론과 지식인이 막대한 여론주도력을 이용해 정보의 유통을 가로막고 여론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위기'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개헌 제안만 묵살된 것이 아닙니다. 참여정부가 내세웠던 주요담론들이 대부분 그랬습니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선진사회를 만들기 위한 '비전2030'에 대해 야당과 언론, 지식인들은 '왜 하필 임기 말에 이런 정책을 내느냐'는 비판만 했을 뿐 토론의 테이블에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야당과 조중동의 균형발전정책 공격에 대해 다른 언론과 지식인들은 손을 놓고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사회투자국가를 비롯해 대통령이 공개연설에서 수차례 제기한 21세기 국가발전전략은 신문 지면에서 공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여론은 움직인다...네티즌 UCC, 댓글 통해 견제·비판 역할
이런 침묵의 동맹 속에서도 여론은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야당과 언론, 지식인의 묵살에도 불구하고 연내 개헌에 대한 찬반 여론이 2대8, 1대9가 되지 않고 오히려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조중동이 만든 침묵의 동맹에 모두가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는 사람들보다 바닥의 민심은 조중동으로부터 덜 감염돼 있습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바닥 여론은 오히려 분명한 자기중심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대통령의 신년연설에 대해 조중동은 "민생파탄 책임없다" 등의 제목을 달아 대통령이 민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왜곡하거나 지엽말단적인 말꼬리 잡기로 연설의 메시지를 훼손했습니다.
그러자 네티즌들이 나섰습니다. 네티즌들은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를 강하게 성토했습니다. 이런 댓글들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와 주요 언론사의 의견쓰기란에서 추천순위 상위에 모두 랭크됐습니다.
민주평통자문위원회 대통령 연설에 대해서도 네티즌들은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청와대브리핑과 SBS 홈페이지 등 인터넷에 올려진 동영상의 클릭수가 수백만회를 기록했고 동영상을 본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조중동의 왜곡보도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네티즌들은 최근 언론의 왜곡보도가 나올 때마다 이런 브레이크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한 네티즌이 만들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킨 UCC(사용자가 직접 만든 콘텐츠) <다음날 조중동은...> 시리즈, 문화일보(1.29) <盧정부 성장·소비·투자 모두 꼴찌> 기사를 반박하는 <한나라당 정권이면 이 기사는 이렇게 바뀐다 - 盧정부 주가, 무역수지, 물가 모두 1등> 패러디 등이 그것입니다. 지난 해 중앙일보(11월18일자)는 <내달 '종부세 폭탄' 터진다>는 기사를 내보냈다가 네티즌 수 천 명의 강력한 반발 댓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식정보화 사회 '현명한 대중'들이 나서고 있다
공론의 균형을 잡아줘야 할 언론과 지식인이 입을 닫자 네티즌들이 직접 나선 것입니다. 이들은 그냥 평범한 네티즌이 아닙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현명한 대중'입니다. 이들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유통시키는 정보를 그대로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다량의 질 높은 정보를 직접 서핑하면서 스스로의 논리와 팩트(fact)를 구성합니다.
이들이 만든 논리와 팩트는 그 정확성과 품질 면에서 결코 언론과 지식인들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지식정보화 사회가 소위 '전문가'와 이런 '현명한 대중' 사이의 수준을 얼마나 좁혀놨는지는 이미 상식이 돼버렸습니다.
언론과 지식인이 침묵한다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의제가 언제까지나 묵살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의제화에 필요한 정보의 공유가 조금 더뎌질 뿐입니다.
언론과 지식인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유가 뭡니까.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유통시키고 공론화하는 공적 소임을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들은 우월적 지위에 따르는 혜택만 누리고 그 지위를 이용해 오히려 정당한 정보의 유통과 공론화를 막고 있습니다.
침묵의 동맹은 이기주의적 반대의 동맹이고 기회주의적 침묵의 동맹입니다. 그들의 판단기준은 국가와 국민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지지율 낮은 정부와 대통령을 두둔해봤자 이로울 것이 없다는 태도입니다. 합리적인 근거도 내세우지 않고 반대를 일삼는 것은 그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을 닫습니다.
이렇게 언론과 지식인, 정치권이 시대적 공론화의 소임을 방기하는 사이 '현명한 대중'에 의해 사회적 의제가 형성됩니다. 지성과 국민의 괴리가 생깁니다. 그것이 지성의 위기입니다. 역사는 늘 말해야 할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일어나 소리쳤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력 언론 앵글 및 논조에 상당수 기자 규정' 56.4%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월30일 300명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력언론이 만들어놓은 앵글 및 논조에 의해 상당수의 기자들이 규정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공감한다'는 의견이 56.4%로 나타났습니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정치언론이 만들어 놓은 앵글 및 논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어디 언론뿐이겠습니까. 지식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렇게 잘못된 주장과 왜곡에 대해 브레이크가 없는 사회, 상호 비판과 논쟁이 없는 사회, 정당한 공론이 묵살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언론, 정치, 지식인의 침묵동맹은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그 종국은 무엇입니까. 이 위기상황이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07-02-12 10:17:56 카빙뉴스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