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하면 할 일, 왜 지금하면 안 되나?
윤건영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
어제(2월7일)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18대 국회 구성과 함께 국회 주도로 본격적인 개헌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선 이제까지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1호를 방불케 하던 '개헌 함구령'에서 다소나마 벗어난 태도의 변화를 환영합니다. 아울러 '집권 시 개헌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것은 개헌 필요성에는 동의함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헌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중대 발언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대 발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김 원내대표 연설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집권 못하면 개헌 안 하겠다는 얘긴가
첫째, 원내대표께서는 '집권을 하면 국회 주도로 개헌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한나라당이 집권을 못한다면 개헌논의를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집권하지 못한다면 개헌은 하지 않겠다는 말씀인가요? 우선 개헌 문제를 집권 여부와 연계시키는 것이 과연 공당의 자세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둘째, 2008년 6월 국회 구성 직후, 차기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개헌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럴 경우 임기 시작부터 민생과 국가 전략과제는 실종되고 오로지 개헌을 둘러싼 정치적·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즉 임기 시작부터 '개헌의 블랙홀'에 빠져 정상적 국정운영이 어려울 것입니다.
집권 1년차에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한나라당의 입장에 배치되는 것은 아닌지요. 또한 집권 초기의 혼란스러운 개헌 정국을 극복해 나갈 한나라당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집권 초부터 '개헌 블랙홀', 임기 단축...제대로 국정수행 하겠는가
셋째,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하겠다는 것은 차기 대통령이 재임 중에 자신의 임기를 1년가량 줄여 국회의원 임기와 맞추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임기 단축을 공약하고 추진하는 대통령이 제대로 국정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소위 개헌만을 위한 'one-point' 대통령이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넷째, 차기 정부에서는 2008년 4월 총선, 2010년 6월 지방선거, 2012년 4월 총선, 2012년 12월 대선 등 대통령 임기 중에 전국 단위 선거가 4번이나 있습니다. 선거 시기에는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첨예하게 충돌되기 때문에 개헌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감안한다면 현실적으로 개헌이 가능한 시기는 2009년, 2011년입니다. 2009년에 개헌을 완료한다 하더라도, 임기가 줄어든 대통령이 제대로 된 국정 추진력을 갖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2011년에 개헌을 한다면 집권 첫해부터 4년내내 개헌 논의를 해야 합니다. 얼마나 소모적인 일입니까?
어제 김 원내대표의 연설은 5년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의 발언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당시 이회창 후보는 '당선되면 임기 중 개헌논의 마무리를 약속하며 임기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2002년 12월 8일 기자회견)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1월27일 미디어리서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정부 개헌이 불가능(52%)하다는 여론이 가능(37%)하다는 여론보다 훨씬 높습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53%가 차기정부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 지지자들마저 한나라당의 주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개헌 제 때 하지 않으면 국가발전도 지체돼
다시 한번 당부드립니다. 20년만의 기회를 날려 버릴 수는 없습니다. 차기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왜 지금은 못하는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발의하는 개헌은 '국민과의 전쟁'이라면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추진하겠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은 다음 정부에서 누가 집권을 하든, 보다 책임있고 안정적인 국정 수행 환경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국가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에, 개헌이라는 국가적 과제가 야당의 정략적 태도로 지체되는 것은 국가적 불행입니다. 한나라당이 정녕 집권을 희망한다면, 집권을 통해 책임있는 국정운영을 약속한다면, 지금 개헌을 하는 게 순리입니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07-02-12 10:17:56 카빙뉴스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