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잡습니다> 이인호 선생님의 인사비판에 대해 되묻습니다
소문과 짐작으로 글 쓰는 것이 학자의 도리입니까
문해남 인사관리비서관
이인호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직접 뵙거나 강의를 들은 적은 없지만 평소 러시아 역사는 물론 서양문화 전체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진 역사학자로, 또 활발한 사회활동가로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지난 1월31일자 조간신문('공직이 나눠먹을 자리인가', 동아일보)에서 보면서, 참여정부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비서관으로서 선생님의 고언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읽었습니다.
그러나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가슴을 누르는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는 말씀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선생님 같은 존경받는 학자께서는 충분히 자료를 찾아보고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을 한 연후에 글을 쓰실 것이라고 생각을 해 왔는데, 그렇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앞서 있었고 구체적 증거가 없는 "설"과 "소문"을 포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를 비난하면서 청와대가 평소 어떻게 인사를 해 왔고 무슨 논리를 전개해 왔는지 전혀 찾아보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진행 중인 기관장 인사 두고 예단해서야
선생님께서는 "학술문화계의 세계 최고 권위자들을 상대로 문화외교를 하고 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주 임무인 자리에 영어로 간단한 자기소개도 못하는 인사를 밀어 넣으려 한다는 소문"을 빌려 참여정부 인사의 문제점을 비판했습니다.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추천위원으로 참여한 한 기관의 인사문제가 선생님께 필봉을 잡게 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 기관에 응모한 17명 가운데 누가 영어를 못했는지, 기관장의 자격 요건으로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른 언어 능력이나 문화나 홍보역량 등 또 다른 자격은 불필요했는지 잘은 모릅니다. 참여정부에서는 누구나 공직후보자를 추천할 수 있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적격자를 선발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아직 선발과정에 있는 직위의 인사를 두고 예단하는 것은 좀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추천위원회에서 3배수, 또는 5배수 후보를 추천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추천된 사람 중에서 선택하도록 인사권자에게도 다양한 정보와 여지를 주는 것, 그것이 추천제를 도입한 취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인사권자는 추천위원회의 순위도 고려합니다.
'탁월한 능력 가진 민간전문가' 채용 크게 늘어
선생님께서 참여정부와 군사독재정부를 비교하시면서, 차라리 군사독재정부 시절 인사가 더 낫다고 말씀하시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암울하던 군사독재정부 시절 기억은 이미 지워진 것인지요? '장군 출신들'이 "탁월한 능력을 가진 민간전문가"를 참여정부보다 더 광범위하게 활용했다는 선생님의 주장은 어떤 근거입니까?
가장 큰 공기업인 한전의 경우를 보더라도, 박정희·전두환 두 군사독재정부 시절 9명의 사장 중 절반이상이 군 출신이었습니다. 또 다른 대형 공기업인 주택공사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임명된 9명의 사장 중 8명이 군 출신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참여정부는 한전에는 관료 출신 전문가를, 주공에는 민간전문가를 연이어 임명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참여정부가 군사독재정부보다 못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참여정부가 "아무리 유능해도 지금까지 해 먹은 기득권 세력은 물리쳐야 한다"는 계급투쟁론에만 솔깃하여 "교육을 잘 받고 유능한 것도 부의 대물림" 때문이라는 이유로 내치고 있다고도 쓰셨습니다. 이 또한 어떤 근거와 구체적 증거에 기초하여 하신 말씀입니까? 아니면, 이것도 그냥 소문을 듣고 어림짐작해 하신 말씀에 불과한 것인지요?
학문적 소양이 부족한 제가 보기에도, 선생님의 이런 표현은 너무 이분법적이고 논리적인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됩니다. 만일 선생님 말씀이 옳다면, 참여정부에서는 "교육 잘 받고 유능한" 장관은 등용하지 말았어야 하고, 그런 관료는 불이익을 받아 공직을 떠났어야 합니다. 선생님 같은 석학이라면 글을 쓰기 전에 사실을 한 번이라도 확인하셨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참여하고 있는 여러 위원회의 장, 차관, 청장들을 한 번만 떠 올리셨어도 이런 표현은 안 쓰셨을 텐데요.
참여정부 인사 핵심은 투명성과 능력
내친 김에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을 몇 군데 더 지적하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참여정부가 "못마땅한 인사를 거부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목하는 인사를 앉힐 때까지 집요하게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쓰셨습니다. 아마도 일부 보수언론이 주장하고 있는 공기업 기관장에 대한 수차례의 재공모에 관해 말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조금 더 구체적인 사실을 파악해 보셨다면, 소문이 허위임을 금방 아셨을 거라고 봅니다. 먼저 논리적으로, 지목하는 인사를 앉히려면 차라리 소문나지 않게 하지 모든 사람들이 알게 했겠습니까? 과거 정부에서는 지금처럼 인사 과정을 투명하게 알 수 있었는지요? 군사독재정부 시절에도 선생님께서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여하신 적이 있습니까?
수차례 재공모를 통해 기관장을 뽑은 기관에 어떤 분들이 선임되었는지 한 번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주장하셨듯이 "자격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 코드에 맞는다는 이유로 선임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차례 재공모를 거친 인천공항공사 이재희 사장은 세계적인 물류회사, 호텔체인, 다국적 기업 CEO를 역임한 전문가로, 연봉 10억원의 사장직을 포기하고 온 분이었습니다. 그 뒤 인천공항은 2005년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가스공사 이수호 사장과 석유공사 황두열 사장도 마찬가지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전문가로서 선임되었지, 무능하지만 코드만 맞는 사람으로서 뽑히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실이 오늘에야 처음 밝혀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동안 청와대는 수차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밝혀왔습니다. 대학자이신 선생님께서 국민들에게 영향력 있는 중요한 글을 쓰실 의향이셨다면, 적어도 저희가 그동안 쓰고 발표해 왔던 글들을 한 번 쯤은 찾아보고 의견을 밝히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아마도 선생님의 전공이신 역사학에서 출판 가능한 논문을 쓰실 때 거쳐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가 아닌가 합니다.
인사 비판은 엄정한 사실에 바탕 둬야
이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러시아 전공자로 러시아 대사까지 하셨습니다. 설마 본인께선 전문가이기 때문에 임명된 것이고, 참여정부의 다른 학자들이나 사람들은 코드 때문에 임명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선생님께서 참여정부에서 맡으셨던 여러 위원이나 직위들은 '끼리끼리 해 먹는 코드인사'에는 해당하지 않는가요? 소문과 정치언론의 그릇된 비판에 근거한 선생님의 글이 다시 선생님에게로 화살이 되어 날아가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선생님께서 그동안 쌓으신 경륜과 명망으로 국민들께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설"과 "소문"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엄정한 사실에 근거한 선생님의 따가운 비판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우리 사회와 정부, 그리고 역사에 대한 선생님의 통찰력을 믿는 저는, 선생님의 다음 글에서는 통찰력에 기인한 날카로운 비판을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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