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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세대에게 책임 떠넘기는 2016년 세법개정안. 정초원(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글쓴이 : 발행인     날짜 : 16-08-02 19:07    

미래세대에게 책임 떠넘기는 2016년 세법개정안

정초원(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라면 언젠가 죽음을 겪게 되듯이 국민이라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세금은 국가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재원으로 이를 통해 정부는 국민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각종 제도를 운영해야 하므로 국민이라면 세금이라는 의무를 져야 한다. 특히 저출산이나 고령화, 그리고 부의 양극화와 같이 개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 강화가 요구되는 가운데, 이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정적인 세수 확보가 절실해지고 있다. 그리고 안정적으로 세금을 걷기 위해서는 조세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지난 목요일, 정부가 2016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여기서 정부는 공평하고 원칙적인 세제를 만들겠다는 비전하에 성장 동력의 확충, 과세 형평성의 제고 및 안정적인 세입 기반의 확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는 큰 포부를 드러냈다. 그런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또 하나의 불평등을 유발하는 감세정책이기 때문이다. 각종 비과세·감면제도는 늘어나고 대기업 친화적인 태도 역시 여전하다.

 

2016년 세법개정안의 문제점

 

1. 비과세·감면제도의 연장 : 대선공약 위반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일몰이 도래한 25개 조세감면 제도 중 21개를 연장시켰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처음 출범할 때만 해도 ‘일몰 도래 시 종료 원칙’을 준수하여 비과세·감면 제도의 정비를 통해 5년간 18조 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일몰연장비율은 97.8%로 2007년~2014년 평균인 96.6%보다 높다. 즉, 관행적인 일몰연장이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국회예산정책처. ‘2016년 조세지출예산서 분석’)

 

또한 최근 3년간 신설된 비과세·감면 제도는 무려 38개에 이른다. 일부 비과세·감면 제도가 정비되더라도 새로운 제도의 신설로 인해 전체 제도의 총량이 줄어드는 속도는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2013~2017년 동안 달성 가능한 세수는 18조 원은커녕 6조3천억 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이번 세제개편안으로 신성장 R&D 세액공제 대상 및 공제율의 확대, 고용·투자 세제지원 대상의 확대, 문화콘텐츠에 대한 세액공제 신설, 기술취득금액 세액공제의 확대, 벤처투자 세액공제 신설 등 20여개의 비과세·감면 제도가 연장·확대되면서 1,800억 원 이상 법인세가 또 다시 공제 및 감면된다(경향신문 7월 28일자 보도).

 

또한 신용카드 소득공제 기한의 연장, 주택임대소득 세제지원 적용기한 연장, 기부금 세액공제 요건의 완화 등으로 소득세에서도 약 1,000억 원이 넘게 줄어들 예정이다. 비과세·감면 축소를 통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약속이 유명무실한 상황인 것이다.

 

2. 대기업·고소득자 위주의 개편: 조세 형평성 악화

 

또한 조세의 형평성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여태까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던 비과세·감면 제도들을 대기업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컨대, 신성장산업 R&D 세액공제의 경우, 중소기업의 세액공제율은 변함이 없으나 대기업은 30%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기존에는 중소기업에게만 적용되던 기술취득금액 세액공제는 대기업에게도 적용되도록 했으며,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액공제를 신설하여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이 주로 적용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음의 <표1>을 보면, 현재의 비과세·감면 제도 하에서 법인세 전체 공제·감면 세액 중 5,000억 원을 초과하는 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67%로 2014년에 비해 상승한 반면, 5억 원 이하의 작은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더 낮아졌다. 즉, 현행 제도하에서도 이미 대기업들에게 유리하도록 비과세·감면 제도가 설계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번 세제개편안은 이를 더욱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소득세 부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을 통해 당초 2016년 말까지였던 주택임대소득 세제지원의 적용 기한과 소형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액감면 기한을 연장했다. 납세자연맹의 논평에서 보다시피, 주택임대소득은 지금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되고 있는 가운데 조세감면까지 연장하는 것은 자본소득과 근로소득에 대한 차별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식양도차익에 대해 다소 범위가 확대되긴 했으나 여전히 일부 주주에게만 과세하는 것 역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라는 공평과세의 원칙에 어긋난다.

 

자녀세액공제를 받고 있는 대상 중에서 62.5%가 6,000만 원 이상 근로소득자임을 고려컨대 자녀세액공제를 인상시키는 것 또한 고소득층의 혜택을 확대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번 세제개편안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고소득자에게로 혜택이 치우쳐 조세의 형평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3. 세수기반 확충 부재 : 급증하는 국가 채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부족한 세수에 대한 어떠한 대안도 담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40%에 육박하고 있고, 국민연금을 비롯하여 미래에 지급해야 할 연금까지 감안한 연금충당부채까지 합하면 국가부채의 규모는 급속도로 커진다. 반면 이 빚을 ‘갚을 능력’이라고 볼 수 있는 세금 부담 수준인 조세부담률은 2014년 기준으로 17.8%에 불과하다. 경제성장률도 2%대로 정체 시기이므로 국내의 부를 증가시켜 세수 기반을 확대하는 정도에도 한계가 있다. 빚은 많은데 상환능력은 부족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급증하는 고령인구로 인해 미래의 공적 소득보장제도인 국민연금과 보편주의 의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의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반면, 생산을 담당하게 될 미래인구를 가늠하는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1.2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데, 향후 늘어나는 수요를 감안하면 미래세대의 부담은 한없이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제개편은 3,171억 원의 세수 정도밖에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없을 전망이다. 게다가 이는 발전용 유연탄에 대한 개별소비세 인상 효과인 4,800억 원을 감안한 것으로서, 세수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득세는 오히려 감소, 법인세는 51억 원의 소폭 상승을 전제로 하고 있다. 주요 세목의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현재의 ‘미약한 상환능력’은 장기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없다.

 

결과적으로 이번 세제개편안은 공평하고 원칙적인 세제는커녕, 여전히 대기업을 위한 또 다른 제도를 신설하고 고소득자에게 유리하게 개편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열악한 세입기반에 대한 대안도 담고 있지 못하다. 이런 방식의 개편은 조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유발하고 조세저항을 가중시켜 복지수요에 대응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방해한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 지속가능한 조세체계 만들어야

 

정부의 포부대로 과세의 형평성과 안정적인 세입기반을 확보하여 공평하고 원칙적인 조세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세체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열악한 세입기반을 확충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증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론화함으로써 증세를 정치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이끌고 나와야 한다. 그리고 증세의 방식은 우선적으로 우리 경제에서 많은 부를 가져가고 있는 기업과 고소득자로 하여금 그에 합당한 부담을 질 수 있도록 개편함으로써 형평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법인세는 2014년 기준 GDP 대비 3.4%로 OECD 평균인 2.9%에 비해 높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리 법인들이 부담하는 세금의 양이 결코 적지 않기에 더 이상 늘릴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경제에서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비중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크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 국민총소득(GNI) 대비 기업소득의 비중은 10년 전인 1995년 18.1%에서 24.6%로 증가해온 반면, 가계소득은 69%에서 62%로 떨어졌다. 기업의 소득을 고려하여 유효세율을 계산하면, OECD 기준 법인세 부담률은 2015년 기준 3.8%이지만 한국의 실제 법인세 부담률은 3.2%에 그친다. 따라서 충분히 법인세를 높일 여지가 있다.(이상민, ‘세입의 이해’, 2016)

 

소득세 또한 개편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소득세 비중은 3.7%로 OECD 평균인 8.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특히 소득세 최고세율은 38%로, OECD 평균 35.9%보다 높지만 실효세율은 훨씬 낮다. 이는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비과세·감면 제도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소득자들이 혜택을 많이 보고 있는 공제·감면 제도를 정비하고, 주택임대소득 및 주식양도차익에 대해서도 과세함으로써 형평성 높은 과세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조세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소득세 전체에 대한 증세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안정적인 세수 기반을 확보함으로써 세금이 국민 모두에게 복지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재정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를 비롯하여 현재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표를 의식하여 실제로는 증세에 대한 언급을 꺼리고 있다. 국민들의 조세저항이 강한 것은 현재의 조세체계가 구조적으로 불공평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세금을 내봤자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증세를 공론화시켜 정치사회적 논의에 부치지 않으면, 지금의 이 열악한 세수와 국가부채,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것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의 나라, 저성장과 저복지의 나라, 저출산과 고령화의 나라, 지속가능성이 낮은 지금의 대한민국은 거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의 올바른 리더십은 국민의 즉자적인 조세저항 심리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복지국가 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방식으로 제도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더 이상 ‘국민 배신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올바른 정치가 필요하다. 이제 미래 세대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을 위해 복지국가 증세를 논의해야 한다.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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