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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담론을 진단한다. 내용이 길어 두편으로 나눠 보도한다. ‘특권’담론의 재구성과 정치개혁의 방향 1 고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이언주 경기도 광명시 을 국회의원 주최
  글쓴이 : 발행인     날짜 : 14-12-21 17:55    






‘특권’담론의 재구성과 정치개혁의 방향

고 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사람은 동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지만, 법과 정의가 없으면 가장 나쁜 동물로 전락하고 만다. 사람은 탐욕과 무절제가 다른 동물보다 강해서 덕이 없으면 가장 추악하고 야만스러운 존재가 된다. 사람은 국가의 정의를 통해 구원받는다. 정의란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인데, 이것을 정치공동체가 실현하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

 

1. ‘특권 내려놓기’의 허구성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특권(기득권) 내려놓기’라는 화두가 유행이다. 지금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두 거대 정당들은 ‘특권 내려놓기’를 ‘정치혁신’의 핵심 프로젝트로 설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얼마 전 새누리당은 1단계 혁신안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출판기념회 금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세비 혁신), 국회법 개정안(겸직금지·윤리특위 강화), 공직선거법 개정안(선관위 산하 선거구 획정위 설치) 등을 의원총회에서 추인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당도 올 2월 초 일명 ‘김영란법’ 제정,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국회의원 윤리감독위원회 신설 및 독립적 조사권 부여, 출판기념회 회계투명성 강화, 의원들의 선물·향응 수수에 대한 규제 강화, 축·부의금 등 경조금품 규제 강화, 국회 윤리위 객관적 운영 도모,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수준 강화 등의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다루고 있는 ‘특권 내려놓기’라는 주제는 대중영합적 정치퍼포먼스 차원에서 진행되다보니 상당부분 근거가 모호한 것들이 많고, 설령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좀 더 큰 전체적 틀에서 보면 맥락을 잘못 잡았거나 의제를 왜곡시키고 있는 경우도 많다.

첫째, 힘 있는 자의 편파적 논리가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다. 가령 면책 및 불체포 특권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이 실현될 경우 대통령 우위의 관료국가, 특히 검찰 권력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화된 조건에서는 국회를 치명적으로 위축시킬 것이므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 면책특권 및 불체포특권의 부작용이 있다면 국회윤리기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적어도 현재의 조건에서 사법 권력의 자동개입을 강화하는 쪽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득보다는 부작용이 훨씬 크다. 오픈프라이머리의 전면도입도 긍정적 순기능의 측면이 있지만 조직, 명성, 돈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다고 하는 결점을 걸러낼 수 없다는 점에서 편파성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둘째, 반정치주의의 논리가 만연해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부터 제기된 ‘의원정수축소’ ‘세비30% 삭감’ 등의 접근은 의회정치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의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담론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반정치적 성격이 농후한 개혁이다. 새누리당이 혁신안으로 추인한 ‘무회의 무세비’ 원칙도 지금까지 국회파행의 주요 원인이 힘 있는 거대여당이 대통령의 의제를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었음을 은폐하면서 대중의 정치불신에 영합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에 서있다. 이런 의제들은 전혀 국회의원의 수당, 연금 등의 문제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합리적 소통에 근거하여 제시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잘못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심각한 것은 최근 정치혁신에 대한 반정치적 선동 분위기에 편승하여 지방의회·교육감선거를 폐지하자는 둥의 퇴행적 주장들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 정치혁신 의제의 본질과 우선순위를 은폐하고 왜곡시키고 있다. 김성식 전 의원이 “그동안 일부 언론도 비즈니스 클래스, KTX 무료 탑승, 세비, 불체포 특권 등에다가 화살을 쏘아왔다. 정확한 과녁이 아니다. 진짜 특권은 쉽게 눈에 보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정치권이 다루는 정치혁신안은 의제의 방향을 잘못 설정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정치혁신이 중요한 이유는 정치인들의 경제적 특권 향유에 있다기보다는 독점과 배제의 권력배분구조가 사회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적절한 의사결정을 불능상태로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개혁의 핵심목표는 자질구레한 물질적 특혜들을 축소하는 방향이 아니라 폭넓은 권력의 배분과 포용적 정치제도를 설계하는 방향과 일관되게 부합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200개의 의원특권’ 같은 특혜들을 갖고 정당 및 국회의원 당사자가 365일 찧고 볶고 해봐야 답도 제대로 안 나오면서 쇼맨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의 불신은 불신대로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일정한 범위를 정해 독립적인 외부위원회에 일괄적으로 위임하고, 여기서 의원들의 대우를 다른 나라 및 행정부와 비교해 보면서 정확한 정보에 기초하여 개혁안을 도출해내도록 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들은 외부위원회에서 다루기 어려운 좀 더 비중 있고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전개되고 있는 ‘특권 내려놓기’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그렇다면 ‘특권 내려놓기’는 폐기되어야 할 담론인가? 그렇지는 않다. 특권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병폐와 부조리를 설명하는 매우 핵심적인 개념이다. 한국사회는 특권이 사회 모든 방면에 단단한 철옹성처럼 구조화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국가공동체가 치유할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특권체제의 벽을 부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돌파구를 열어야 할 정치 또한 이미 특권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 문제는 특권 현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이를 정치혁신과 어떻게 연결시켜 실천해 나갈 것인가에 있다.

 

2. 대한민국 사회개혁의 핵심 목표 : 특권과두체제의 타파

오늘날 한국사회는 번영과 발전을 중단하고 쇠락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인류역사와 국제질서를 선도하는 세계 속의 중심국가로 우뚝 설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있다.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선진국에 진입한 미증유의 성과를 갖고 있으며, 미래에도 세계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고 국제관계의 패러다임이 전쟁에서 경제·문화로 이행하는 상황에서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세계의 교량으로서 중심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한국사회가 대내외적으로 부딪친 현실은 엄중한 위기상황이다. 한국은 급변하는 대내외적 환경의 도전에 능동적으로 맞서기보다는 위기를 누적 심화시켜 왔다. 그 중심에 바로 특권·기득권체제의 강고화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낡은 개발독재의 잔재들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바탕 위에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덧씌워지면서 매우 복잡하고 독특한 사회체제가 형성되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에 신자유주의, 개발주의, 권위주의, 민주주의 등 여러 요소들이 서로 혼합되면서 어떤 사회체제가 형성되어 왔는지를 설명해주는 핵심 개념은 ‘특권과두체제’라는 용어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과거와는 다른 유형의 부정의가 출현하여 거대한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막강한 금권을 매개로 결착된 극소수 특권집단들이 국가기구와 언론을 종속물로 전락시켜 불공정, 반칙, 특혜, 차별, 자의적 지배 등을 일삼으면서 엄청난 부와 권력을 독식해 왔다. 법은 강자의 노리개가 되어 불법과 편법에 의한 특권이 횡행하고, 다수의 사람들은 기회와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 같은 사회의 부정의는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불평등은 한국인의 일상에 갑질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어 냈으며, 사회 전반에 수직적 권위주의를 강화하려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특권과두체제는 쉽게 말하면 봉건사회, 신분사회, 세습사회, 특권사회로 역주행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대변하는 개념이다.

특권과두체제의 고착화는 사회양극화,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냉전체제의 위험 증대와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이로 인해 청년들은 인생의 첫 관문에서부터 결혼과 직장 어느 기회도 잡을 수 없게 되었고,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류 인간이라는 딱지를 단 채 상처 난 자존심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을 붙들고 밀려나지 않겠다고 온 힘을 다해 버티지만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없고, 노인들 또한 제대로 된 노후대책 하나 없이 초라한 삶을 이어가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앞에 가로놓인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개혁의 핵심과제로서 특권과두체제를 타파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속적 번영을 위한 새로운 사회발전방식을 창조할 수 있고, 기회의 공유와 안전을 위한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만들 수 있으며, 관용과 배려, 자유와 책임에 입각한 조화로운 국가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다. 특권체제의 타파는 우리 한국사회가 세계 속의 중심국가, 선진민주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길목이다.

대한민국이 어려움을 뚫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인본국가·민본정치로의 근본적 대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들이 배제당하는 특권구조를 타파하고 권리평등과 기회균등이 실현되는 정의로운 사회경제체제를 창조해야 한다. 둘째, 부자와 빈자, 노동과 자본, 노동과 노동, 기성세대와 미래세대, 중앙과 지방이 나눔과 연대, 공유와 협력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내는 시민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 관용과 배려, 시민적 자유와 공공선에대한 책임이 구현되는 민주적 국가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3. 국가의 공공성 회복과 정치개혁의 필연성

한국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국가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정치혁신은 피할 수 없는 절대 명제다. 정치가 사회 문제 해결의 중심 고리라는 뜻이다. 정치가 중심 고리가 되는 이유는 국가 위기의 중요한 핵심 포인트가 바로 ‘국가의 공적 기능 상실’에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의 핵심은 강력하게 네트워크화 된 사회의 특권과두집단들이 국가를 사유화하여 헌법이 정한 가치와 정신, 그리고 법의 지배를 무시하고 각종 정책과 제도의 규칙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엄청난 부와 권력을 독식하는 데있다. 이 때문에 사회 전반의 제도와 규칙을 공동체의 존립에 맞게 확립해 나갈 수 있는 국가의 공적 기능이 결정적으로 약화된 것이다.

한국에서 특권집단에 의해 부와 권력이 독식되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도 경제적 요인만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재벌대기업과 부자가 획득한 부는 시장에서 자유경쟁을 통해 축적한 결과가 아니라, 핵심적으로는 국가의 권력에 의해 뒷받침된 축적의 결과였다. 1987년 이후 사회세력들 사이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과두집단들이 국가를 장악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사회경제적 이익을 극대화시킨 결과였다. 다시 말해서 국가 자체가 특권화 된 데 기인한 현상이었다.

한국에서 국가는 더 이상 다수 국민의 재산과 권리를 보호하는 헌법의 수호자가 아니다. 단언컨대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는 실종되었다. 부의 세습과 불평등구조가 고착화되고, 조금 더 가진 자들조차 덜 가진 자들을 향해 갑질에 몰두하는 사회에 공동체가 있을까? 자본의 힘이 국가권력을 초월해버린 사회에 법과 정의가 있을까? 세월호사고 과정에서 보듯이 양심과 염치를 상실해버린 사회, 몰상식이 인간에 대한 근본적 믿음을 뒤흔드는 상황을 국가가 통제하기는커녕 조장하기까지 하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 국가에 대한 믿음은 이제 거의 불신과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회개혁의 가장 중요한 일차적 목표는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아가 국가의 공공성을 축으로 삼아 특권과두체제를 타파하고 사회구조 전반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특권과두체제를 타파하는 일은 시민적 권리의 불평등한 배분 체계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정권 교체도 아니고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도 아닌, 헌정체제의 정상화와 발전을 목표로 삼는다.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에 대한 구성원들 사이의 공정한 약속인 헌법적 가치와 정신을 바탕으로 법의지배(rule of law)라는 통치원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헌정체제는 정치사회와 국가 사이의 권력관계를 규정하는 제도의 세트로서, 좀 더 좁게 말하면 ‘헌법체제’와 ‘정당체제’의 조합이 갖는 총체적 특성을 지칭한다. 하지만 헌정체제는 순수한 제도가 아니라, 사회적 힘의 균형구조에 의해 제도적 특성이 각각 다르게 발현되는데, 그런 점에서 헌정체제는 곧 정치의 작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다. 우리가 흔히 ‘48년 체제’니 ‘87년 체제’니 하는 용어들은 국가체제와 정치가 결합된 개념이다. 그러므로 특권과두체제를 타파하고 국가체제의 공공성을 확립하는 데서 정치혁신은 피할 수 없는 절대 명제인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정치혁신의 대상은 정확히 국가체제, 특히 87년 체제라 불리는 헌정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87년 체제가 사회적 약자를 품어내고 사회공동체를 균형있게 유지하는 쪽으로 작동하기보다는 특권과두세력과 결합되어 가는 현상을 타파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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