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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담론을 진단한다. 내용이 길어 세편으로 나눠서 보도한다. 87년 체제의 문제점과 독일-오스트리아 권력구조모델 3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 이언주 경기도 광명시 을 국회의원 주최
  글쓴이 : 발행인     날짜 : 14-12-21 16:40    






87년 체제의 문제점과 독일-오스트리아 권력구조모델 1)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

V.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 조건

○ 지금까지 살펴 본 대로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는 한국의 대안 권력구조 모델로서 충분히 논의가치가 있는 제도임

○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위에 기술한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상의 양대 문제를 해결하는 일임. 아래에서는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가 실질적인 대통령중심제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 그리고 대통령과 총리 간의 권력 배분상의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차례대로 논의함

○ 그러한 논의 과정을 통하여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 조건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임

 

1. 실질적인 대통령중심제로의 회귀 방지 방안 마련

○ 분권형 대통령제가 실질적인 대통령중심제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는 충분히 나올 수 있을만한 것임. 그러나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 과잉 우려는 삼가야 함

- 분권형 대통령제일지라도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정당(연합)에 속해있는 경우 대통령의 권력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매우 강력해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임.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권력이 대통령중심제에서의 경우만큼 막강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님

- 분권형 대통령제에서의 총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임. 총리의 진퇴는 사실상 오직 의회만이 결정할 수 있고, 따라서 총리는 “일단 임명된 순간부터는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 대해 상대적 독자성을” 갖고 내각 주도권이나 장관 인사권 등의 자기 권한을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함. 총리의 이러한 독립성과 독자성으로 인해 대통령의 권력은 어느 경우든 분점될 수밖에 없는 것임

○ 그러나 역시 분권형 대통령제의 합의제적 특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대통령이 과도한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조건이나 환경을 애당초 만들지 않는 것이 필요함

○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구조화의 수준이 높은 다정당체계를 구축해 놓아야 함

- 진보, 중도, 보수 등으로 구분되는 다양한 이념 및 가치의 공간마다 각기 유력정당들이 하나 이상씩 포진해 있는 높은 수준의 정당구조화를 이룬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소속된) 단일정당이 의회의 다수파가 되거나 이념이나 가치지향이 유사한 여러 정당들이 (여당이 포함된) 정당연합체를 결성하여 그들만으로 다수파 진영을 구축하는 경우는 웬만해선 발생하지 않음

- 따라서 대통령이 여당(연합) 장악력을 활용하여 총리가 주도하는 행정부를 좌지우지하는 일은 벌어지기 어려움

○ 다정당체계의 구조화 수준을 이 정도로 높이기 위해선 당연히 정당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의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수임

- 오스트리아는 산업화를 이미 오래전에 거친 ‘이질 사회’인 동시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국가이므로 어느 한 정당이 50% 이상의 득표율을 얻는 일은 발생하지 않음

- 이 비례대표제로 인해 50% 미만에서 상당한 의석 점유율을 차지하는 의회 내 유력 정당들은 늘 다수이기 마련이고, 따라서 (대통령 정당이 포함된) 어느 한 정당도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는 통상적인 정부 형태가 연립정부가 됨

-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함으로써 다수 정당 간 연합정치를 안정적으로 제도화하고, 그럼으로써 실질적인 대통령중심제로의 회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국 역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채택해야 함

○ 단, 연정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비례대표 저지조항은 확보해야 할 것임

- 위에서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내각에 대한 정치권력 행사를 삼가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온건 다당제 아래서 운영되는 연립정부의 정치적 안정성이라고 강조한 바와 같이 연정의 안정성은 분권형 대통령제의 합의제적 순항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덕목임. 오스트리아는 4%의 비례대표제 저지조항을 채택하고 있음

- 독일식 의원내각제도 가장 안정적인 분권형 권력구조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 역시 상기한 대로 독일이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하여 5%의 비례대표 저지조항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임

- 한국이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새롭게 채택할 경우 현행 3% 저지조항이 그 새로운 환경 아래서 구조화된 온건 다당제를 구축하는 데에 기여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필요함

○ 한국이 비례대표제 국가로 전환하며 구조화된 다당제를 구축하는 과정 중에 특히 유력한 중도정당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

- 중도정당이 충분히 많은 의석을 점함으로써 자신의 좌우 쪽에 위치한 정당 혹은 정당연합이 자기(들)만으로는 의회 다수파를 형성할 수 없는 구조를 창출해준다면, 거기서는 초이념적인 포괄형 연립정부가 상존할 수 있게 됨. 연립정부는 언제나 좌파와 중도, 중도와 우파, 혹은 우파와 좌파 정당 간에만 구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임. 따라서 이 경우엔 대통령과 총리가 동일한 정당(연합)에서 배출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짐

 

2. 대통령과 총리 간의 균형 잡힌 분권 구조 창출 방안 마련

○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함에 있어 또 하나의 심각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는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권한 분배와 관련된 것들임. 그 둘 간의 역할분담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엔 권한 행사를 둘러싼 잦은 갈등으로 인해 국정운영이 교착 상태에 빠질 수도 있음(장영수 2012, 25)

○ 그러나 권한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음. 한국이 오스트리아를 모델삼아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면, 국가 구성원들의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분권의 합리적 기준을 스스로 마련해야 함. 물론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법일 것임

○ 이와 관련하여, 황태연(2005, 49-52)의 제안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음

- 그는 국가의 원수인 “대통령은 전 국민의 이익과 전체적 가치관을 대변하고 집행하는 초당파적 임무”를 부여받은 헌법기관인바, 그러한 대통령에게는 초당파적인 입장에서의 숙고와 심의, 그리고 판단이 요청되는 영역에서의 결정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

- 한편,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선호와 이익이 여러 정당들에 의해 대표되고 경합하는 의회에서 선출되는 총리는 “불가피하게 당파적일 수밖에 없는 내정의 각 부문을 관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

- 그는 또한 유럽의 많은 입헌군주국들이 정치적 안정을 누리는 까닭은 상당 부분 “초당적 절대존엄”인 왕의 존재 덕분이라며, 공화국들이 왕 대신 대통령을 세움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고자 한다면 그 대통령은 “당파적 정쟁에 말려들지 않게끔 전 국민적 임무만을” 맡게 함으로써 국가원수로서의 권위와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

○ 이상과 같은 합리적 제안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의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는 통일과 국방 정책만을 대통령에게 맡기고 그 나머지인 외교와 내치 영역은 모두 총리의 소관 사항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됨

- 외교정책마저도 총리에게 넘기자고 하는 것은 그 영역에서는 상기한 대로 국내정치적 파급효과가 큰 대외경제정책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로, 대통령이 그러한 영역을 담당할 경우 그는 계급, 계층, 집단별 이해관계의 갈등과 대립 상황 속에서 자신의 초당파적 위치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임

- 외교에 비하여 국방과 통일은 초당파적, 거국적, 전 국민적 이슈로서의 성격이 매우 뚜렷한 정책 영역에 속함

- 실제로도,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들 가운데 대통령의 외교권을 인정하는 나라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군통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나라들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장영수 2014, 12)

- 오스트리아의 대통령도 외교 영역에서는 조약체결권 등과 같은 제한적 권한만을 부여받고 있으나 국방 영역에서는 군통수권과 군인사권 등 핵심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음

- 특히 분단체제라는 한국적 상황을 고려할 때, 국방과 통일이야말로 당파적 유불리를 초월하여 오롯이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을 두어 관리해야할, 따라서 전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전담하는 것이 마땅하고 적합한 정책 영역임

○ 역할분담을 위와 같이 분명히 하더라도 대통령과 총리 간의 체계적인 협의 기제는 별도로 준비해야 함

- 국방과 통일 정책이 여타 영역과 아무리 차별성이 큰 영역일지라도 세부로 들어가면 외교는 물론 경제, 산업, 사회, 복지, 교육, 국토해양 등 거의 모든 정책 영역과 중첩되는 부분이 즐비하기 마련임

- 대통령과 총리는 이러한 부분들에서 권한 충돌 가능성이 상존함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에 대한 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유기적인 협의체계를 따로 마련해 놓아야 할 것임(장영수 2014, 14)

○ 분권 구조가 우선 명확히 서고 그에 더하여 상기한 종류의 협의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여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잠재적이거나 실재적인 갈등이 적시에 순조롭게 조정될 수 있을 때 분권형 대통령제는 안정적인 권력구조로 정착할 수 있음

- 실제로 오스트리아는 물론 핀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의 많은 선진국들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그렇게 성공적으로 운영했거나 운영하고 있음

- 사실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대통령중심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미국, 칠레, 멕시코 등 4개국에 불과함. 나머지 30개국은 의원내각제 15개국과 분권형 대통령제 15개국으로 정확히 반씩 나뉨. 15개 의원내각제 국가 중 독일과 아이슬란드를 제외한 13개 국가가 입헌군주국이며, 독일과 아이슬란드는 왕 대신 실권이 없는 대통령을 상징적 국가원수로 두고 있음. 그리고 15개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들은 모두 왕이 없는 공화국들임

- 선진국들의 모임이라는 OECD 회원국들의 절대다수가 대통령중심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나 분권형대통령제 국가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함. 그리고 그 절반이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라는 점 역시 의미심장함. 분권형 대통령제는 의원내각제에 못지않게 상당히 안정적인 정부형태임을 웅변하는 것임

 

3.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 조건 요약

○ 이상에서 논의한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 조건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음

○ 구조화의 수준이 높은 다당제를 확립해야 함

○ 위 목표의 달성을 위해 비례성이 충분히 높은 선거제도를 도입해야 함

○ 적절한 수준의 비례대표 저지조항을 유지해야 함

○ 구조화된 다당제의 발전 과정 중에 특히 유력한 중도정당의 부상을 도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

○ 오스트리아 모델을 참고로 한 한국의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는 통일과 국방 정책만을 대통령에게 맡기고 그 나머지인 외교와 내치 영역은 모두 총리의 소관 사항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함

○ 대통령과 총리 간의 체계적인 협의 기제는 별도로 준비해야 함

 

VI. 합의제 민주체제의 확립을 위한 정치개혁의 순 경로

1. 권력구조 개편의 전제 조건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전환 그 자체가 바로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임

○ 합의제 방식의 대의제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그 ‘합의’ 형성의 현실 주체는 사회의 다양한 선호와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임

- 다수의 유력 정당들이 의회 및 정부에 포진하여 그들이 각기 대표하는 사회경제적 이익집단들의 다양한 선호를 테이블 위에 모두 올려놓고 정치적 협상과 타협을 통해 상생의 정책을 만들어 갈 때 합의제 민주주의가 작동한다고 하는 것임

○ 그렇다면 합의제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 조건은 이념과 정책 중심으로 구조화된 다당제의 확립임. 합의제 민주주의의 실현은 오직 정당의 구조화가 이루어졌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임

- 이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 곧 자기만의 분명한 이념과 정책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사회의 특정 이익을 안정적으로 대표하고 각자가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수의 유력 정당들이 확고히 서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권력구조도 합의제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함

- 전제 조건의 충족 없는 섣부른 권력구조의 개편은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기는커녕 자칫 개악으로 귀결될 수도 있음

- 따라서 권력구조 개편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 진전시켜가되, 그 실천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임

○ 위에서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 조건을 논하면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 민주주의의 합의제로의 발전을 위해선 권력구조의 개편에 앞서 우선 선거제도가 비례성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향으로 개혁돼야 할 것임. 그래야 정당의 구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임

 

2. 선(先)선거제도 개혁, 후(後)권력구조 개편

○ 다시 강조하지만, 정당의 구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은 자칫 권력구조의 개악이 될 수 있음

○ 지역주의가 여전히 (실재적 혹은 잠재적) 유력 변수로 남아있는 한국의 현 선거정치 환경에서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은 지역과 인물 중심의 다당제 형성을 촉진할 가능성이 큼

- 군소 지역정당(들)일지라도 지역 지지기반을 잘 관리하여 필요 최소한의 의원 수만 확보할 수 있다면 연립내각에 직접 참여하거나 그 형성 과정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상당한 정치권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임

- 그 경우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할거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며, 권력구조는 결국 지역정당들 혹은 그 보스들 간의 ‘과두체제’로 개악되는 것임

- 그러한 방식의 권력 나눠먹기 현상이 만연하게 되면 불안정한 연립정부의 구성과 (중심 이념이나 정책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잦은 정권교체 등으로 인해 정부의 효율성과 수행능력은 크게 저하될 수밖에 없음

- 그 경우엔 또한 연립정부의 장점인 타협과 합의의 정치가 정책과 이념 중심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나 지역 이익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노동이나 중소상공인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의 선호와 이익이 정책과정에 체계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음. 연정에 참여하는 정당 및 정치가들은 정책이나 이념을 좌표로 하는 책임윤리를 지키기보다는 정치적 보스의 사적 필요성이나 지역 이기주의적 요구에 타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임

- 결국 보수, 중도, 진보 등을 표방하는 다수의 유력 정당들이 존재하여 그 정당들이 각기 자신들이 대표하는 여러 계층과 사회집단들의 이익을 적절히 집약하고 상호 절충함으로써 국가 정책을 합의로 결정해간다는, 그리하여 사회통합을 유지한다는 합의제 정치의 본연의 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임

○ 한편, 지금의 지역 중심 거대 양당체제가 지속될 경우엔 의원내각제에서는 물론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도 실질적으로는 현행 대통령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제 1당(과 심지어는 그 1인자)에 의한 승자독식 현상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음

- 영국의 예가 보여주듯, 양당제와 의원내각제의 결합은 여당 (혹은 여당의 1인자인 총리) 독주의 다수제 민주주의로 귀결되곤 함. 어차피 행정부는 양대 정당 중 의회의 다수당이 된 어느 한 정당에 의해 단독으로 구성되고, 그 정당의 대표인 총리는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까지 장악할 수 있기 때문 임

- ‘철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정치권력을 무려 12년간에 걸쳐 행사했던 마가렛 대처 수상도 영국의 의원내각제가 탄생시킨 승자독식형 지도자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음

- 양당제-의원내각제 국가에선 제왕적 대통령 대신 ‘제왕적 총리’가 부상할 수 있다는 의미임

- 위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의 양대 문제를 논하면서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양당체제 아래서는 분권형 대통령제에서도 여소야대 상황에서의 동거정부 형성 경우 외에는 여당이 대통령과 내각을 독점하는 다수제형 정치가 통상적으로 이루어질 것임

○ 결국 양당제가 유지되는 한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권력구조 개편은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임

○ 따라서 한국적 상황에서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코자 한다면 권력구조의 개편보다는 선거제도의 개혁에 우선 힘써야 함. 정당 득표율과 의석 배분 간의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독일식 비례대표제 등의 도입은 이념과 정책 중심의 정당 간 경쟁을 촉진하여 정당의 구조화를 견인할 것이기 때문임

○ 요컨대, ‘선(先)선거제도 개혁, 후(後)권력구조 전환’의 원칙에 따라 합의제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 개혁작업을 수행해 가야한다는 것임

 

3. 구조화된 다당제와 연정형 권력구조의 친화성

○ 권력구조의 개편 작업은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의 도입으로 이념과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구조화된 다당제가 구축되면 그 이후 정당 간 합의에 의해 자연스레 진행돼갈 공산이 큼.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음

○ 앞서 이미 지적했듯이, 다당제와 대통령중심제의 결합은 (정당의 구조화 여부와는 관계없이) 여소야대라고 하는 ‘제도 간의 부조화’ 문제를 수시로 발생시킴

- 이 분점정부 상황에선 정부와 의회가 교착상태에 빠지기 쉽고 그 경우 정부의 집행능력은 크게 저하됨

- 민주화 이후의 한국 정당정치에서는 지역할거주의에 기인한 바 큰 다당제 상황이 여러 차례 벌어졌음. 지역에 기초한 다수 정당들 간의 경쟁이 팽팽한 상태에서 분점정부 문제가 계속 발생했음은 물론임. 실질적인 양당제 구도가 굳혀진 노무현 정부에서도 후반기에는 여소야대 상황이 벌어졌음

○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노태우 정부 때에는 3당 합당, 김영삼 정부에서는 타당 의원의 영입,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DJP공조’라는 일종의 정당연합,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연정 등과 같은 인위적인 정계개편들이 시도되었음

- 그러나 주지하듯 그것들은 모두 미봉책에 불과했고 오히려 정당 간 반목과 대립의 심화, 국민들의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 확산, 의회정치의 위상 추락 같은 심각한 후유증만 남기곤 하였음

- 사실 나누어 가지기 어려운 대통령 권력의 속성상 대통령제하에서의 합당, 연합, 연정 등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낮았음(안순철 2001, 6)

- 결국, 다당제와 대통령제 결합의 곤란함을 당장 극복하고자 추진됐던 무리한 시도들은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파행과 부작용만 양산했을 뿐, 정부의 수행능력을 근본적으로 제고시키는 데에는 모두 실패했음

- 이 같은 사실은 다당제에서 대통령중심제의 효율적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임

○ 그런데 선거제도의 개혁으로 정당의 구조화가 이루어지면 과거의 그러한 미봉책마저도 사용하기 어려워짐

- 이념 및 정책적 차이가 뚜렷한 정당들 사이에선 의원들의 당적 이동도 매우 어려운 일일뿐더러 소수 엘리트들 간의 정략적 거래를 통한 합당이나 정당연합 등과 같은 인위적 정계개편도 (비구조화된 정당들 사이에서처럼) 쉽게 이루어질 리는 없기 때문임

- 비례대표제의 도입으로 구조화된 다당제가 확립되면 여소야대로 인한 정부의 정책수행과 국정운영상의 어려움은 과거보다 더 심해지리라는 것임

○ 결국 이처럼 심각해진 제도 간의 부조화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중심제를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정당들 간에 자연스레 형성될 가능성이 상당함

- 대통령을 배출하겠다는 정당이라면 그 누구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임

- 정당들 간의 이 공감대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큼. 제도 간의 부조화 문제로 인한 피해는 결국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임

- 구조화된 다당제는 대통령제보다는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와 결합할 때 더 순조롭게 작동하며, 그때 정부의 수행능력이나 정치사회적 안정성도 더 높아진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과 이론에 의해 공히 증명된 것임. 유럽의 선진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들이 예외 없이 이러한 제도 조합을 택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임은 물론임

○ 그렇다면 권력구조의 개편을 위한 개헌은 선거제도 개혁 이후의 추진 과제로 미루어 놓는 것이 백번 타당할 것임

○ 따라서 합의제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제도의 개혁은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강화, 정책과 이념 중심으로 구조화된 다당제 확립, 그리고 의원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권력구조 개편 등과 같은 순서로 추진돼야 할 것임

○ 다만,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과 분권형 권력구조로의 개편은 둘 간의 제도적 상보성을 고려할 때 하나의 패키지로 동시에 진행돼도 무방할 것임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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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학회 춘계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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