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와 지방분권 헌법개정
(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I. 국가개조론의 등장
1. 대통령이 제안한 국가개조론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건만큼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사건은 드물다. 그렇게 믿었던 중앙정부가 그렇게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을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배가 좌초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충분한 인명구조의 시간이 있었지만 300명이 넘는 인명이 사망하고 실종하였다.
대통령에 의해서 “국가개조”라는 말이 나왔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13일 만인 4월 29일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온 잘못된 행태들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잡을 것이다"라며 "내각 전체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라고 국가개조론을 제기하였다.
세월호 사건이 그 동한 누적되었던 국가운영시스템 전체의 재점검과 재정비를 요구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국가개조라는 표현은 과도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지만 시의적절한 문제의 제기라고 본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였다. 공자는 가난해도, 병력이 약해도 나라는 유지될 수 있지만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개조론을 대통령이 제기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문제는 국가개조의 방향이다.
2. 세월호 사건의 교훈
1)집권적 권력구조의 재앙: 인명구조의 실패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국가시스템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드러낸 것이다. 사고에 이르게 된 선박회사와 감독관청도 문제지만 사고에 대처하는 정부의 우왕좌왕이 더 큰 문제이다. 이제 국민들은 국가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국가가 보호해 주려는 믿음에서다. 국가가 그 기본적인 의무를 못한 것이다. 단순히 선박회사의 사주를 처벌하고 선장을 처벌하고 몇몇 공무원을 징계하고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무총리와 관계 장관이 사퇴하거나 해임하고 대통령이 사과한다고 끝날 사안이 아니다.
선박침몰이 신고된 후 시간은 충분했다. 중앙정부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을 뿐이다. 중앙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생명을 구출할 수 있는 시간은 허비되었고, 구조현장에선 아무도 책임을 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해경은 중앙에 보고하느라 바쁘고, 현장에서 자원과 인력을 가진 전남지사와 진도군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국가운영체제가 발목을 잡았다. 현장을 모르는 중앙정부가 통계숫자나 발표하고 수정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배는 전복되었고,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 많은 생명이 수장된 것이다. 이들의 생명과 더불어 국가의 권위와 국가에 대한 신뢰도 함께 침몰한 것이다.
만약 전남도지사가 현장을 장악하고 해경에 지시를 내리고 책임을 지도록 했더라면, 중앙정부가 멀리서 현장에 맞지도 않는 지휘를 하는 대신 현장에서 요구하는 물자와 인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더라면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경찰, 소방, 방재분야와 같이 분초를 다투는 업무일수록 지방분권적인 업무처리가 필요하다.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현장성이 가장 중요하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자가 책임과 권한을 져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권한이 없으니 책임이 없고,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는 현장을 모르니 무능할 수밖에 없다. 재난구호체제 자체가 무책임과 무능을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여 국민안전처를 만들어 안전업무를 안전행정부로부터 국무총리산하로 옮겨 더욱 집권화시켰지만 이로써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리라고 기대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장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야만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지방의 현장책임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중앙정부는 직접 개입하기 보다는 지원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가능하면 현장에 근접한 지방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국가운영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해야지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지방분권 논의에서 수없이 강조되었고 법률에도 규정된 보충성의 원칙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의 인명구조실패는 중앙집권의 재앙이다. 이제 경찰권과 위험방지, 위험제거기능을 현장에 근접한 지방정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현장에서 도지사나 시장, 군수가 책임을 지고 현장에 있는 경찰과 더불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여야 한다.
만약 사건현장의 진도군수나 전남지사가 사건수습의 책임자였다면 인명구조와 사건수습에 신속한 대응을 통하여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대통령이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한 이후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고 지시를 기다리는 사이에 이미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은 현장의 민간어선들이 자발적으로 출동하여 민간인이 해양경찰에 앞서 상당한 구조활동을 하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
야당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대통령의 7시간’ 문제도 지극히 중앙집권적인 발상이다. 대통령이 즉시에 만사를 제치고 사고현장에 도착하였고, 현장에 그 7시간을 머물면서 현장을 지휘했다고 한들 무엇이 달라졌겠는가? 현장의 손발이 묶여 있는데 현장도 모르고, 전문지식도 없는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2) 집권적 대결정치로 인한 장기적인 국정마비
세월호 사건은 인명구조에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건수습의 실패와 국정운영의 마비를 가져왔다. 사건의 수습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했다. 청와대 수석과 안행부장관이 경질되고 국무총리를 해임하는 것으로 사건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유가족들과 정치권은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며 정부와 대화가 사실상 단절되었다.
야당에서는 ‘대통령 7시간’문제를 제기하며 세월호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거부하였고, 장외투쟁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의정마비 상태를 5개월간 초래하였다. 야당은 세월호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현안 법안조차도 심의를 거부하였다. 국회는 장기간 마비되었다.
만약 사건발생현장의 진도군수나 전남지사가 인명구조의 책임자였고, 중앙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분권적인 국가구조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러한 정치적인 파국과 국정마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설사 진도군수나 전남지사가 인명구조에 실패하였더라도 150일 간의 국정마비상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집권적인 정치구조가 세월호 문제를 전국적인 갈등의 불씨로 만들었다. 집권적인 권력구조가 사회적인 갈등을 이렇게까지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갈등의 요인조차도 포함하지 않은 세월호 문제를 정치적 갈등으로 증폭시켜 정국을 마비시켰다. 정치의 본래적인 임무가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해결하는데 있다. 우리의 정치는 사회갈등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없는 갈등도 만들어 내고, 작은 갈등도 걷잡을 수 없는 갈등으로 증폭시킨다. 정치를 가리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이라고 하지만 우리 나라의 정치는 가능한 것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마의 마술에 갇혀있다.
국민의 80% 이상이 이제 그만 정상으로 돌아가자고 요구해도 국회는 마비상태를 풀지 못하였다. 주권자인 국민들은 그 대표자들이 정치권이 스스로 마비를 풀 때까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속수무책이었다. 대다수의 국민이 요구하는 것을 실현하지 못하는 국회는 이미 국민의 대표기관이 아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으로 의제될 뿐이다. 이렇듯 국정이 마비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무력화시키고 모든 권력을 의제된 국민대표인 국회에 집중 시켜놓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표자나 대표기관이 국민을 대변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에는 국민이 다시 위임한 대표권을 회복하여 직접 자신을 대표할 수 있도록 분권화했더라면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의 집중은 책임과 위험의 집중을 가져온다. 그 만큼 정국은 불안해지고 위험은 커진다.
여야간의 갈등은 승자독식에 그 원인이 있다. 불과 2-3%차이로 집권한 여당이 모든 권력을 독식하다보니 임기 내내 사생결단의 싸움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선거전략이 된다. 야당은 대선불복으로부터 시작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당의 발목을 잡아 무능정권으로 전락시키려 하는 것을 정권교체를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여당은 야당을 서로를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인 권력을 행사로 야당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재집권을 위한 주요전략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여당과 야당이 사사건건 대립하는 대결정치가 일상화된다. 이러한 대결정치 프레임 속에서 세월호사건도 갈등을 증폭시키고 현안문제의 해결은 뒷전이 되었다.
거대 여당과 거대 야당에 정치권력이 집중되지 않고, 어느 정당도 다수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면, 여당과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제1야당, 제2야당, 제3야당 간에 권력이 분점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정국이 이렇게 경직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당은 야당 중에서 어느 정당이든 협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야당과 협상과 타협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직된 집권적인 양당구도가 사생결단의 대결정치를 고착화시키고 있다. 정당 권력의 집중이 정국을 경색시키고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직된 양당구도는 다수대표제를 채택한 선거제도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해법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만약 대통령선거 전까지 존재했던 자유선진당과 같은 제3당이라도 존재했더라면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수습과정에서 초래된 사회적 갈등의 증폭과 국정의 마비 현상은 우리나라 권력구조가 빚어낸 대표적인 재앙의 하나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집권적인 권력구조가 초래한 저주라고 할 수 있다. 선거를 의식한 사생결단의 정쟁속에서 현안 안건은 실종되고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대결정치의 프레임을 개선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정국마비는 불가피하게 초래될 것으로 본다.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내고 문제를 키우는 메카니즘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정치가 문제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른바 민생정치 즉 현안 안건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생산적인 정치를 위해서는 권력의 프레임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집권적인 권력구조를 분권적인 권력구조로 전환하는 데서 국가개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3) 총체적 부패
세월호 사건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부패에 원인이 있다. 감독하는 자와 감독받는 자가 한통속이 되는 인사관행과 뇌물의 수수로 인하여 인‧허가제도는 감독제도가 작동을 상실한 것이다. 짠맛을 잃은 소금이 방부제역할을 할 수 없듯이 먹이사슬로 연결된 감독제도와 인허가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오히려 부패의 고리가 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세월호사건 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불거진 원전비리나 방위산업비리에서도 똑같은 부패의 고리가 발견된다.
부패문제에 대해서 가장 적절한 언급을 하고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은 영국의 정치가인 액튼 경의 말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야당시절 즐겨 인용했던 말이다. 액튼 경이 1887년 한 주교에서 썼던 편지에서 나오는 말이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Power tends to corrupt,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 권력의 본질을 표현한 말이다. 액턴경에 앞서서 영국의 수상이었던 윌리엄 피트(William Pitt)는 1770년 의회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유사한 말을 하였다. “무제한적인 권력은 권력자의 마음을 타락시킨다("Unlimited power is apt to corrupt the minds of those who possess it.").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권력을 특정인이나 특정기관에게 집중시키지 말아야 한다. 권력을 한 기관이나 한사람에게 집중시키는 경우 부패의 온상이 된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분권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여러 기관과 여러 사람이 권력을 분점하고 서로 견제하도록 제도적인 틀을 짬으로써 부패가 자리잡을 수 있는 토양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분권은 권력에 대한 불신을 제도화한 것이다. 우리가 금과옥조로 받들어온 삼권분립만으로는 권력남용과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이에 다양한 분권제도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4. 말뿐인 국가개조, 국민이 나서야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13일 만인 4월 29일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 과거로부터 이어온 잘못된 행태들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잡을 것이다"라며 "내각 전체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라고 국가개조론을 제기하였다. 그후에도 여러 차례 국가개조를 언급했다. 7월 8일에는 국무총리가 '국가대개조 범국민위원회' 를 설치해서 이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 어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정부조직법을 개정한 것이 지금까지 나온 유일한 대책이다.
대통령이 소리높이 외쳐도 정치권이 움직이지 않는다. 중앙정부도 움직이지 않는다. 국가개조의 구체적인 방안은 고사하고 국가개조의 기본적인 방향에 대한 논의조차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 혼자 깃발을 들어도 따르는 각료가 없는 것이다. 정말 국가개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주는 상징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국가개조론을 꺼냈을 때 많은 국민들이 공감했고, 세월호 사건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대한민국의 기본 틀을 새로 짤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국민이 나서야 한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5. 국가개조의 출발점은 정치제도의 개선
정치제도를 바꾸어 주면 정치구도가 바뀌게 되고, 정치구도가 바뀌면 정치행태가 바뀌고 정치문화도 변화된다. 정치인이 달라질 수 있다. 정치제도는 인류만년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발전해 오고 있다. 정치제도에는 좋은 정치제도와 나쁜 정치제도이다. 좋은 정치제도란 정치인을 비롯한 정당이나 국민 등 정치적 행위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정치제도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전체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제도가 좋은 제도이다. 이에 대해서 정치인이 국민전체의 희생하에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국민이 올바른 정치를 하고자 해도 무력하여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정치는 나쁜 정치제도이다. 정치엘리뜨가 권력을 독점하여 국민을 무력하게 만들고, 무책임하게 만드는 정치가 나쁜 정치제도이다.
좋은 정치제도를 선택해야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다. 좋은 정치제도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정치제도는 끊임없이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제도는 발명품이다. 인쇄술이나 전기의 발명, 컴퓨터의 발명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듯이 좋은 정치제도의 발명은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고, 나쁜 정치제도는 압제와 전쟁, 기아와 고통을 가져왔다.
우리는 좋은 정치제도를 만들어 내는데 너무나 소홀히 해왔다. 공학적 기술이나 발명품을 만드는 데는 수천억, 수조원을 투자하면서 새로운 정치제도를 만들어 내는 데는 거의 무관심했다. 정치제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산업화를 하면서 선진국의 기술을 도입해서 모방하면서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내고 있는 분야가 늘어나고 있다. 정치제도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우리의 고유한 정치제도의 발명이 어렵다면 좋은 정치를 하는 나라의 정치제도를 우선 찾아보고 우리나라에 도입하려는 노력을 해보아야 한다. 기존의 정치제도의 틀 안에서는 새로운 정치가 나올 수가 없다.
정치제도의 근본적인 틀은 헌법에 의해 정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헌법을 정치법이라고 한다. 좋은 정치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 좋은 정치제도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끊임없는 시도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이루어지듯이 좋은 정치제도의 발명과 발견도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차로 발전해 가게 된다. 정치제도를 규정하는 헌법도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디딤돌이 되지 못하고 걸림돌이 되는 경우에는 고쳐야 한다. 정치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독일1) 과
1) 독일에서는 1949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 2009년까지 60년 동안에 60번의 헌법개정이 있었다.
스위스에서는 거의 매년 1번 또는 여러 번의 헌법개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헌법개정이 정치적인 일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Ⅱ. 국가개조방향으로서 분권
1. 분권적 국가개조의 요구
세월호 사건이 정치체제에 보내는 경고를 요약하면 세 가지이다. 첫째, 집권적인 권력구조는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둘째로, 집권적인 권력구조는 정국불안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셋째로, 권력집중은 부패를 불러온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국가효율성을 높이고, 정국 안정을 찾고,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분권적 정치체제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2. 분권체제의 모델로서 스위스
국가를 개조함에 있어서는 모델이 필요하다. 정치가 안정되고,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부패가 적은 나라의 모델을 참조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전환비용을 절감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한 나라로 스위스를 들 수 있다. 스위스는 국가경쟁력이 연속해서 세계1위이다.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이다.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나라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가장 행복한 나라중의 하나이다. 그 중심에는 정치가 있다. 스위스 정치는 영미의 정치와는 정반대로 정치엘리뜨에 대한 불신과 국민에 대한 신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중앙정부 대신에 지방정부간의 공존과 경쟁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중요시 한다.
스위스만큼 철저한 권력분립이 실현된 나라는 세계에 없다. 스위스의 정치제도는 중첩적인 권력의 분립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분립된 권력은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서 협력하고 타협함으로써 공존한다. 이를 통하여 정치적 안정을 달성한다.
권력분립은 권력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권력분립은 권력에 대한 불신을 제도화한 것이다. 권력을 분립함으로써 권력을 통제가능한 범위내에 묶어두고자 하는 것이다. 권력이 집중되면 남용 될 우려가 있다. 집중된 권력은 통제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는 권력을 어느 한 기관 내지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는다. 스위스는 미국대통령이나 독일의 수상처럼 강력한 권력기관이 없다. 모든 권력이 대통령과 국회에 집중된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스위스에는 그러한 강력한 권력자가 없는 셈이다. 권력자 중의 한 명이 있을 뿐이다. 권력기관은 있지만 강력한 권력기관은 없다. 권력기관중의 하나가 있을 뿐이다. 스위스는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기관과 사람에게 권력을 분산시키고 서로 협력하고 타협하도록 하는 제도를 발명해 냄으로써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권력을 합리적으로 행사되도록 동기를 부여해서 정치적인 안정과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스위스의 분권체제를 요약하면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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