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쿠팡 상장을 앞두고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건물에 게양된 쿠팡 현수막. ⓒ쿠팡 제공
이사가 말한다. “내 ‘실수(주의의무 위반)’로 회사가 조 단위의 손해를 봐버렸네. 그러나 내 돈으로 배상하긴 싫어. ‘나쁜 마음(충실의무 위반)’으로 그랬던 건 아니거든. 이사가 실수했을 땐 돈을 안 물어줘도 되는 면책 조항을 강화하자.”
주주가 답변한다. “지당한 이야기야. 너무 좋아! 내가 승인해줄게.”
이토
릴게임꽁머니 록 화기애애한 회사가 있을까? 이사가 곧 대주주이고, 그가 압도적 의결권을 쥐고 있다면 이뤄질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선 제도적으로 어렵지만, 미국 델라웨어주에선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한국의 ‘소수주주 보호(상법 개정안)’ 논쟁에서 델라웨어주의 상법 체계는 모범적 모델로 호출되는 경우가 잦았다.
릴게임예시 델라웨어주의 상법과 기업 분쟁 전담 ‘형평법원(Court of Chancery)’이 주주권을 강하게 보장한다는 인상 때문이다. 사실 델라웨어 상법은 이사와 임원의 실수나 잘못에 강력한 보호장치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엔 직위 없이 배후에서 영향을 미치는 지배주주에게까지 보호 범위를 확장할 정도로 ‘친기업’적인 법률 체계다.
릴게임바다신2 쿠팡 그룹의 주 수입원인 한국에서 노동재해, 개인정보 대량 유출 같은 중대 사고가 연이어 터져왔다. 그러나 한국의 규제 당국은 물론 국회도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겸 CEO에겐 직접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쿠팡 그룹을 지배하는 최상위 기업인 쿠팡Inc가 델라웨어 법인이라는 점이
황금성사이트 다. 김범석 의장은 한국 쿠팡㈜에서는 직함을 갖고 있지 않으나 미국 쿠팡Inc에선 전권을 휘두른다.
■ 한국이라면 불가능했을 지배구조
델라웨어주에 회사 법인으로 등록된 쿠팡Inc는 한국 쿠팡㈜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또한 쿠팡㈜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배송),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물류센터 운영), CPLB(쿠팡 자체 브랜드 상품 전담) 등 한국 내 쿠팡 계열사들의 지분을 100% 갖고 있다. 지배의 사슬이 너무나 탄탄하다. 누구도 이 회사들을 노릴 수 없다. 그리고 김범석 의장이 이 사슬의 최정점인 쿠팡Inc를 절대적으로 지배한다.
쿠팡Inc가 최근 공시한 ‘2025년 의결권 행사 안내서(Proxy Statement)’에 따르면, 김범석 의장은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아니다. SVF 인베스트먼트(소프트뱅크 계열)의 지분율이 21.2%로 가장 높다. 2대 주주는 영국의 자산운용사인 베일리기퍼드(Baillie Gifford)로 지분율은 10.1%다. 김범석 의장은 약 9.1%로 3대 주주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의결권으로 보면 순위가 완전히 뒤바뀐다. 김범석 74.3%, SVF 5.4%, 베일리기퍼드 2.6%다. 쿠팡Inc의 정관에 따르면, 김범석 보유 주식(클래스 B)은 “1주당 29표의 의결권을 가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주주들의 주식(클래스 A)은 ‘1주당 1표’다.
한국 상장회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상법은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라고 규정해놓았다. 개별 회사들이 제멋대로 특정인의 의결권을 ‘1주당 10표’라고 회사의 헌법인 정관에 써놓았다간 처벌을 면치 못한다.
■ 델라웨어 상법의 특징
델라웨어 상법도 ‘1주당 1표’를 ‘기본값’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기본값’에 불과하다. 델라웨어주에 등록한 회사들이 정관에 ‘1주당 2표’ ‘1주당 20표’ 같은 “특정한 조항을 따로 넣지 않는다면”, 해당 업체는 ‘(기본값인) 1주당 1표인 것으로 간주하겠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쿠팡Inc가 창립자(김범석)의 의결권을 ‘1주당 29표’로 설정할 수 있었던 것은 ‘법인 등록지’를 델라웨어에 둔 덕분이다. ‘델라웨어 법인’은 델라웨어 상법을 적용받는다.
델라웨어주는 ‘기업 자체’라기보다 ‘기업의 법인 등록(incorporation)’을 유치해 돈을 번다. 법인 등록비(등록세)는 델라웨어주의 가장 중요한 세수다. 법인 등록과 관련된 회계, 법률 자문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일자리도 창출된다. 미국에에서는 ‘법인 등록’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이 주(州) 사이에 치열하다. 경영진과 지배주주가 좋아할 만한 법을 앞다퉈 만드는 이유다. 이에 따라 점점 더 기업 측(이사·임원·지배주주)에 유리한 방향으로 주 상법이 개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 경쟁에서 델라웨어주는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델라웨어주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회사를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는 상법’이다. ‘정관에 특별히 정한 바가 없다면 상법의 기본값을 따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주당 29표’를 정관에 박아놓아도 별 말썽이 없다. 그 덕분에 델라웨어 상법은 경영진 보호장치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편이라고 평가된다. 주(州) 입장에선 개인투자자보다는 부자 기업의 등록을 유치해야 세수와 일자리도 늘어날 테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델라웨어주는 조세피난처로 불리기도 한다. 델라웨어주에 등록된 법인이 다른 지역 소재 계열사의 송금을 받으면 이에 대한 ‘주 법인세’ 과세가 제한된다. 아마존·월마트·메타·구글(알파벳) 등 초국적 대기업이 델라웨어 법인이다.
■ 델라웨어에선 ‘실수’가 면죄부
상법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회사가 큰 사고(오염물질 방출, 노동재해, 개인정보 유출, 횡령 등)를 쳐서 기업가치를 떨어뜨렸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자연인)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정하는 것이다. 주로 경영 의사를 결정하는 이사가 표적이 된다.
다만 이사의 의도가 중요하다. 이사가 나름대로 회사의 발전을 위해 회의 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 투자 전략을 결정했다고 치자. 그러나 그는 무능하고 업계 전망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의 전략은 회사를 재앙 같은 손실로 밀어 넣었다. ‘선의(善意)’를 갖고, 의사결정 절차도 지켰지만 ‘실수’를 범한 것이다. 이런 경우를 이사의 ‘주의의무(duty of care) 위반’이라고 부른다. 반면 사악한 이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치기도 한다. ‘충실의무(duty of loyalty) 위반’이다.
어느 나라 상법에서나 ‘충실의무 위반’은 엄중하게 다룬다. 그러나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상법의 대응은 나라나 지역마다 다르다. 델라웨어 상법은 이사들에게 매우 관대한 편이다. 심지어 ‘이사의 주의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금전적 배상을 면제한다’는 조항을 회사들의 정관에 넣도록 허용한다. ‘나쁜 짓’은 처벌 대상이지만, ‘큰 실수’는 면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쿠팡Inc는 정관에 “회사의 이사는 관련 법령(델라웨어 상법)이 허용하는 최대 범위 내에서, 금전적 손해배상에 대한 책임이 면제된다”라는 조항을 삽입할 수 있었다. 쿠팡이 개인정보 대량 유출 같은 큰 사고를 유발해도 그것이 이사의 ‘실수’ 때문이었다면 손해배상을 위해 사재(私財)까지 털 필요는 없다. 결과가 참혹하더라도 사익을 챙길 의도 없이 성실하게 의사결정을 내렸다면 이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관행을 ‘경영판단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선 역시 어림없는 소리다. 한국 상법에 따르면,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 그 이사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사가 악의 없이 단지 과실이나 게으름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쳐도(주의의무 위반) 금전적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사가 실수하는 경우, 한국에서는 책임이 발생하지만 델라웨어주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더욱이 쿠팡Inc 정관은 델라웨어 상법이 앞으로 더욱 관대해지는 경우, “회사에 대한 이사의 책임은 개정된 법령이 허용하는 최대 범위 내에서 추가로 면제되거나 제한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미래 대비형 자동 면책 장치다.
■ 김범석의 철갑 방패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이사를 선출할 수 있는 제도다(〈시사IN〉 제884호 ‘민주당은 재벌을 바꿀 수 있을까’ 기사 참조). 델라웨어주 상법은 “회사 정관에 누적투표제(cumulative voting, 집중투표제와 같은 의미)를 넣을 수 있다(may provide)”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2025년 이전의 한국 상법과 비슷하다. 당시 한국에서는 소수주주가 집중투표제를 요청해도 회사 측이 정관에 ‘다른 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뽑는다’고 규정해놓으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한국 국회는 2차 상법 개정안으로 대규모 상장회사(자산총액 2조원 이상)에 대해 집중투표제를 사실상 의무화했다(1년 뒤 시행).
미국 델라웨어주 곳곳에 설립된 형평법원. ⓒ델라웨어주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반면 쿠팡Inc는 정관의 ‘이사 선임’ 조항에 “의결권을 가진 어떠한 주주도, 누적투표(cumulative voting, 집중투표)를 할 수 없다”라고 명시해놓았다. 집중투표를 아예 금지한 것이다. 모든 이사를 김범석 의장이 원하는 사람으로만 채울 수 있다.
또한 쿠팡Inc에 ‘회사 내부 관계(주주·임원·이사·지배주주 사이)’와 관련된 소송을 제기하려면 미국 델라웨어주로 가야 한다. 정관에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이 유일하고 독점적인 재판 관할권을 갖는다”라고 명시해놓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쿠팡Inc 주식을 가진 한국인 투자자가 ‘김범석 의장의 잘못으로 인한 한국 자회사(쿠팡 주식회사)의 유무형적 손실 때문에 쿠팡Inc의 기업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는 한국 법원이 아니라 델라웨어 형평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형평법원에선 상법 전문 판사들이 배심원 없이 판결한다. 이 판사들은 경영 효율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경영진의 잘못엔 ‘경영판단의 원칙’을 적용해서 웬만하면 이사의 손을 들어준다는 평가가 많다. 김범석 의장은 한국의 사법 리스크로부터 지리적으로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는 것이다.
■ 2000년대 이전 ‘한국 재벌’의 부활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2021년 한국 자회사인 쿠팡㈜의 등기이사와 의장 등 모든 공식 직책에서 사임했다. 이로써 그는 쿠팡 계열사에서 반복되는 사고와 관련해, 한국 법률 체계에선 ‘책임을 직접 묻기 어려운 위치’로 탈주했다. 김범석 의장이 지배하는 미국의 쿠팡Inc 역시 외형상으로는 ‘쿠팡㈜의 100% 주주’에 불과하다. 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회사가 벌인 사고에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 투자금만 포기하면 된다. 한낱 주주에 불과한 쿠팡Inc가 왜 쿠팡㈜의 사고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질 것인가.
법률적으로, 한국 내 쿠팡 계열사에서 터지는 사고들의 책임자는 쿠팡㈜ 법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CLS, CFS 등 사고가 반복되는 사업장의 ‘동일인’을 쿠팡㈜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일인’은 ‘해당 업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라는 의미다. 실질적 지배자라면 사고에도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공정거래위는, 쿠팡㈜가 CLS와 CFS의 단지 100% 주주일 뿐 아니라 이들 사업체의 운영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동일인을 ‘사람’이 아니라 ‘법인’으로 지정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법인은 ‘법적인 인간’일 뿐 실제로는 책임을 느끼거나 질 수 없다. 책임을 묻고 사고를 막으려면 결국 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겨냥해야 한다. 칼자루를 쥔 자는 따로 있는데, 칼에게만 책임을 묻는 꼴이다.
공정위가 동일인을 ‘사람’이 아니라 ‘쿠팡㈜’ 법인으로 지정한 결정에는, 지배주주(김범석)가 미국 국적자라는 특수성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자칫 미국과의 통상 마찰로 비화될 수도 있다. 그래서 법인인 쿠팡㈜에게 지배력과 책임을 결박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CLS와 CFS는 쿠팡(주)의 100% 자회사이고, 쿠팡(주)는 쿠팡Inc의 100% 자회사다. 김범석 의장은 쿠팡Inc를 무려 74.3%의 의결권으로 지배한다. 이 견고한 ‘지배 그물망’의 말단(CLS, CFS, 쿠팡(주))이 과연 그물망의 꼭지를 쥔 자와 관련이 없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된 〈시사IN〉의 질문에 대해 쿠팡(주) 측은, “이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 권한은 관련 법령에 따라 이사회와 대표이사에게 있다”라고 답변했다.
다른 미국 기업이라면 어땠을까. 본사의 주 수입원인 한국 자회사에서 사고가 반복되더니 심지어 불매운동까지 벌어진다. 이는 본사의 기업 이미지와 가치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미국 기업의 주주들은 반발하며 심지어 경영진 퇴진까지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김범석 의장은 예외다. 그는 쿠팡Inc의 의결권 가운데 절대 다수를 갖고 있다. 다른 주주들이 반발하더라도 주총을 열어 자신을 재신임하면 그만이다. 더욱이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차단하고, 쿠팡Inc에 대한 소송은 델라웨어주 형평법원에서만 진행하도록 명기했다. 이중 삼중으로 방화벽을 쌓은 것이다. 델라웨어 상법과 한국 상법의 틈새를 적절히 활용해서 ‘권한 100%, 책임 0%’의 방화벽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델라웨어 상법은 이사와 임원에 대한 보호장치(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면책)를 회사 정관에 넣을 수 있도록 허용해왔다. 이에 더해 지난해 3월엔 상법 개정을 통해 지배주주에게도 ‘충실의무’만 위반하지 않는다면 금전적 배상 면책을 적용하기로 했다. 김범석 의장은 쿠팡Inc의 이사 겸 임원 겸 지배주주다.
한국에도 이런 종류의 경영자들이 ‘있었다’. 2000년대 이전의 한국 기업집단(재벌 그룹)에서 ‘총수’나 ‘회장’으로 불리던 사람들이다. 당시 총수들은 수십 개 계열사의 경영에 전권을 행사했지만 법률적 책임은 전혀 지지 않았다. 어떤 계열사의 등기이사(서류상 이사)도 맡지 않은 덕분이다. 법률적으로 총수들은 무직이었다. 자신이 다스리는 기업들과 어떤 법적 관계도 없었다.
이 같은 부조리한 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다. ‘재벌 경영이 경제위기를 초래했는데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여론의 비판이 쇄도했다. 이로 인해 상법에 새롭게 도입된 조항이 ‘업무집행지시자 등의 책임’이다. ‘서류상 이사(등기이사)가 아니라도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실질적으로 회사의 업무를 집행한 자’는 이사로 간주해 책임을 지운다는 내용이다. 다만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 자체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법적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 결국 그룹 총수들은 등기이사를 맡아 자신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인정했다.
사실 등기이사를 맡지 않아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동일인 제도 때문이다. 삼성·현대차·SK 등 핵심 재벌 그룹의 동일인은 각각 이재용·정의선·최태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실에서 이 제도가 얼마나 잘 작동했느냐의 문제와 별개로 한국 상법 체계에서 ‘지배력은 있는데 책임은 없다’는 상황은 이미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공식적 직위도 없는 지배주주가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회사 경영을 망치는 경우에도 ‘고의가 없으면 금전배상 책임이 없다’는 델라웨어주의 상법은 한국보다 비윤리적이고 후진적이라 평가될 만하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쿠팡(주) 본사 건물. ⓒ시사IN 이명익
쿠팡 그룹의 지배자인 김범석씨는 행복한 기업인이다. 압도적 지배력을 갖고 있으나 그룹 운영에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가 국감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다. 법률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쿠팡 그룹의 지배구조는 2000년대 이전 ‘한국 재벌’의 특성을 당시와는 다른 형태로 부활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외국인’ 총수에게 허락된 기이한 공백
김범석 의장은 완벽한 ‘면책의 회로’를 설계했다. 한국에서 벌어들인 경영의 과실(수익)은 위로 솟구쳐 델라웨어로 모이지만, 경영의 과오(책임)는 아래로 흘러 한국의 월급쟁이 임원과 현장 노동자들에게 고인다. 김범석 의장의 쿠팡Inc 경영권 장악은 한국 내 ‘무한 면책’으로 귀결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힘겹게 쌓아 올린 ‘재벌 규제 시스템’은 유효기간이 끝났다. 규제의 임무는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국적과 법인의 소재지가 어떤 나라든,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는 합당한 책임을 부과받도록 만드는 것이 건강한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의 규제 수단들은, 존재하면서도(권한) 존재하지 않는(책임) ‘델라웨어의 유령(쿠팡Inc)’ 앞에서는 철저히 무능한 것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외국인’ 총수에게만 허락된, 이 기이한 규제 공백 지대를 이제는 메워야 한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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