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석 셰프의 레스토랑 ‘쵸이닷’에서 육회를 조리하는 모습. 사과처럼 생긴 육회에 초저온으로 얼린 고추장 분말을 뿌려서 만든다.
넷플릭스 화제작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시즌2)이 지난주 막을 내렸다. 방영 전부터 여러 화제를 뿌리며 세계적 인기를 구가했던 이 TV 요리쇼에선 종영 후에도 많은 후속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분자요리(分子料理)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에선 다시 “분자요리가 뭐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왜 ‘다시’인고 하니, 한때 국내외 파인다이닝 신(fine dini
황금성릴게임 ng scene)의 태동기에도 이미 심심찮게 회자됐고 그때도 많았던 질문이 바로 분자요리에 대한 것이었다.
# 2000년. 고도의 기술과 아이디어, 많은 품이 드는 파인다이닝의 최전선에는 보통 분자요리를 응용한 코스가 존재했다. 분자요리 전도사 최현석 셰프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미식 트렌드를 이끌었던 단어가 분자요리였다. 2008년 즈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음 세계적 경제 침체 상황에도 굳건했다. 파인다이닝은 들불처럼 퍼졌다. 분자요리로 미슐랭을 제패한 페란 아드리아의 엘 불리(El Bulli)가 문을 닫은 2011년 이후에도 그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 2026년. 분자요리가 다시금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흑백요리사 시즌2의 흑수저 셰프 ‘요리과학자’(신동민)가 출연한 첫 회에서였다.
바다신게임 닉네임에서도 드러나듯 신 셰프는 예선에서 과학적 방식으로 만든 사과 요리 하나를 달랑 들고 나왔다. 안동 사과 아이스크림 파우더와 뜨거운 잼을 사과모양 사탕 케이스에 채워 넣은 요리, 일명 ‘-196도 사과’였다. 워낙 ‘사과다워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사과 요리는 백설공주도 냉큼 받아먹을 만큼 고혹적 비주얼이었다. 결과는 아쉬웠다. “테크닉이 너무
릴짱 올드(old)하다”는 심사평과 함께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백태콩 콩국을 에스푸마 형태로 만든 ‘콘피에르’의 아뮤즈부시.
기술로 맛을 지향한다는 명제를 내세운 분자요리가 요즘엔 오히려 ‘낡은 기술’이라는 이미지를
릴게임예시 뒤집어쓰고 있다. 굽고 찌고 끓이는 전통적 조리법은 몇천 년째 여전하지만, 첨단 화학·물리적 기법으로 재료의 변형을 통해 맛을 이끌어낸다는 분자요리법은 오히려 한물갔다는 인식을 받고 있으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한때 미식 조리의 전위(Avant-garde) 자리를 지켰던 분자요리는 어째서 이렇게 ‘낡았다’는 오명을 쓰고 있을까. 과연 분자요리가 무엇이길래.
원래 인류 생활사에 분자요리는 존재했지만 이를 정리한 것은 1988년이다. 헝가리 물리학자 니콜라스 쿠르티와 프랑스 화학자 에르베 티스가 한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분자 물리 요리학’(Molecular and Physical Gastronomy)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세간에 알려졌다.
찬물로 겉을 굳혀 먹는 ‘상해소흘’의 감자바쓰.
이때부터 요리사들은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식재료로부터 맛을 느끼는 일상을 과학이론으로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해 요리로 만들어 냈다. 현장의 재료에 숙달된 요리사의 창의력까지 더해지니 기존에 볼 수 없던 새로운 형태의 요리가 탄생했다.
잘라서 삶거나 굽고 찌던 관습적인 조리법을 배제하고 새로운 맛과 형태를 즐길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냉동, 거품(에스푸마), 압출, 추출, 성형, 기화, 진공포장, 저온조리 등을 위해 새로 생겨난 여러 장비와 기술이 속속 도입됐다.
사실 분자요리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식재료를 요리한다는 것 자체가 분자요리의 원초적 목적과 다르지 않다.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달걀을 조리할 때다. 상온에서 액체인 달걀을 삶아 고체로 만든 후 얇게 썰어낸 다음 노른자는 부숴 샐러드에 뿌리고 흰자는 섞어서 먹도록 한 것은 분자요리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계란찜은 더하다. 물을 섞어 높은 온도로 끓이면 한식 계란찜, 공기를 빼기 위해 저온으로 익히면 일식 차완무시(찻잔 계란찜)가 된다. 설탕을 넣고 거품을 내고 부풀리면 카스텔라 형태로 변한다.
아주 오래전에 발명(?)된 두부와 치즈도 단백질을 응고시킨 그 원리를 분자식으로 설명하진 못했지만 엄연한 분자요리였다.
‘류니끄’의 분자요리 시트론 고등어.
분자요리 요리사들은 설탕에 열과 바람을 가해 부풀린 솜사탕이나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부풀린 달고나도 당연히 기본적 분자요리의 형태로 설명한다.
자, 이제 보니 잠깐 유행하고 한물간 기술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수천 년 이상 공존해 온 것이 과학 기술과 장비의 발전에 힘입어 새로이 요리에 도입된 것이다.
인문학적 개념에서 보면 분자요리는 단순히 ‘기술로 만든 요리’가 아니다. 관습을 탈피한 식재료의 해방을 의미한다. 주메뉴 고기에 소스를 얹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소스는 젤라틴으로 만들어 그냥 맛볼 수 있게 하고, 오히려 고기를 파우더로 만들어 소스처럼 뿌려낸다. 전통적 요리가 ‘어머니의 맛’을 재현하는 데 노력했다면, 분자요리는 ‘어머니도 아직 모르는 맛’의 ‘개발’을 추구했다.
분자요리는 기존 관념상 떠올리는 식재료의 이미지를 기꺼이 벗어던질 수 있도록 해줬다. 전분과 거품기, 추출기(사이펀), 초저온 냉매(액체질소) 등을 사용하면 전혀 다른 맛의 재료를 눈에 익숙한 자연 재료의 형태로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에스프레소나 과일주스 등 액체를 자연 연어알이나 캐비아 모양으로 만들고 달걀과 사과를 실물처럼 재현할 수 있다.
그저 이런저런 거품이 접시에 얹혀진 줄 알았는데 입안에서 터뜨려 보니 그 안에 진한 토마토향을 가둔 것에 놀라기도 한다. 분자요리가 식탁에서 먹는 이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연금술’로 추앙받던 시절의 일화다.
로즈메리와 감식초로 만든 ‘콘피에르’의 클렌저.
앞선 ‘사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즙을 고체로 뿌리기 위해 초저온으로 얼리고 과육을 볶아 잼을 만든 다음, 이를 사과 내용물로 만든 거대한 설탕 거품 속에 가둬 ‘사과와는 전혀 다른 사과’를 만들어 냈다.
맛을 과학으로 풀어내는 분자요리는 단숨에 널리 퍼져나가며 미식의 전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식재료의 데이터가 중요해지고 물성을 연구한 문헌도 쏟아졌다. 요리사들은 이를 창의적 레시피로 탄생시키기 위해 원심분리기, 레이저 등 여러 장비에 눈길을 줬다.
이보다 앞선 1981년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저서에서 주장한 시뮬라크르(simulacres)가 분자요리를 주목한 업계에 이론적 바탕이 됐다. 시뮬라크르 뜻을 풀이하자면 ‘실제보다 진짜 같은 가상’이란 뜻이다.
분자요리 요리사들은 이를 창의적 고민과 숙달된 기술로 진짜보다 더 실감 나는 ‘다른 음식’을 창조하는 작업의 철학적 토대로 받아들였다. 시각이 간섭하는 미각의 타성을 버리고 오로지 맛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뮬라크르의 미각적 재현에 나선 것이다.
장미에센스를 올린 ‘류니끄’의 에이드.
‘올드패션드(old fashioned)’. 동의하긴 싫지만 그렇게들 느끼고 있나 보다. 지금은 대부분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전면에 ‘분자요리’라고 내세우진 않는다. 다만 레시피 속에는 분자요리 기법들이 여전히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를 구하고 이를 조리하는 데 다양한 상상력과 그에 걸맞은 노력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과거 ‘보여주기 위한 작업’으로서 내세웠던 분자요리 기법인데 지금은 그런 이름을 가린 채 숨어 있을 뿐이다.
상상력이 과학과 만나 이룬 맛, 주방의 연금술을 느끼고 싶다면 분자요리를 찾으면 된다. 각각의 식재료는 물론, 셰프 개개인의 천양지차 다른 재치를 오직 미각으로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지출은 좀 각오해야 한다. 장비와 품이 많이 드는 ‘분자’는 ‘자본’을 요구한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컨템퍼러리 ‘류니끄’ = 세계적 명성의 컨템퍼러리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화려한 해외 수상 경력의 류태환 셰프가 운영한다. 로컬 제철 식재료를 기반으로 분자요리 기법을 적절히 활용한다. 계절별로 메뉴 구성이 바뀌는데 아뮤즈부시부터 메인, 디저트까지 10종류 이상의 플레이트를 차례로 낸다. 올겨울에는 코스 중 고등어를 내고 있는데 간장과 시소, 유자 젤리를 구체화(spherification) 작업을 해 시트론 캐비아를 만들어 고등어 위에 뿌려 상큼한 맛을 더했다.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8-1 1·2층.
◇컨템퍼러리 ‘쵸이닷’ = 분자요리를 국내에 앞장서서 소개한 최현석 셰프의 레스토랑. ‘한식’을 표방한 메뉴(육회·백합죽·매운탕 등)를 보고 나서 막상 접시를 받아들게 되면 당황한다. 미식의 ‘시뮬라크르’를 경험할 수 있다. 코스 대부분의 플레이트에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가상’의 환상을 이식했다. 육회가 좋은 예. 작은 사과 모양으로 나오는 육회에는 이미 다양한 채소와 허브가 들었고 초저온으로 얼린 고추장을 분말로 뿌려준다. 겨자씨에 블랙 트뤼프(송로버섯) 크림으로 색을 입힌 ‘가짜 캐비아’도, 그 비싸다는 벨루가 임페리얼 캐비아가 부럽지 않을 정도.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457 3층.
◇컨템퍼러리 ‘콘피에르’ = 서울역 앞에 위치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한식과 이탈리안 퀴진의 조화를 추구한다. 1·2막으로 나눠서 다양한 제철 식재료 맛의 플레이트를 제공한다. 메인은 육류. 아뮤즈부시부터 애피타이저, 밀(meal), 디저트까지 분자요리 기법을 두루 사용한다. 사이펀을 사용해 단호박 거품(에스푸마)을 내거나 로즈메리, 민트, 감식초를 섞은 다음 구체화시킨 클렌저 등 매 코스 사용하는 조리법도 다양해 놀라움을 선사한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 14 그랜드센트럴 지하 2층.
◇바쓰 ‘상해소흘’ = 분자요리가 반드시 파인다이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음식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맛탕’이라 불렀던 달달한 고구마튀김은 사실 분자요리 기법을 닮은 중국 전통요리다. 갓 튀겨내 뜨거운 액체 상태의 설탕물(물엿)이 코팅된 바쓰를 차가운 물에 담갔다가 즐기는 방식이다. 이 집은 고소한 감자바쓰를 판다. 차가운 물그릇도 준다. 바쓰(拔絲)란 실이 늘어지는 모양을 뜻하는 이름이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 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