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교수가 최근 서울 강남구 ‘유현준앤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어긋난 듯 보였던 지난 11년의 여정을 회고하고 있다.
“미국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의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힌 뒤 한국으로 돌아와 2005년 ‘유현준앤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며 ‘하나님의 건축가’로 살겠다는 꿈을 품었어요. 그러나 제 뜻과는 달리 하나님은 11년 동안 수도권에 단 한 건의 건축도 허락하지 않으셨지요. 그 시간은 감사보다 원망과 불평이 앞섰던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고 순종을 배워가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스타 건축가로 널리 알려진 유현준(56)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건축학부 교수의 고백은 의외였다. 자신의 이름을 딴 ‘유현준앤파트너스건축사사무소’의 대표 건축가이자 140만명의 구독자가 열광하는 ‘셜록현준’ 채널 유튜버로 그리고 베스트셀러 작가, 방송인 등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그는 누가 봐도 굴곡 없는 성공의 길만
릴게임하는법 을 걸어온 것처럼 보인다.
화려한 명성 이면에 감춰진 그의 삶의 궤적은 의외로 성경 속 고난의 대명사 ‘욥’과 맞닿아 있었다. 철저한 깨어짐의 시간을 통과하며 단단해진 그의 신앙 고백을 국민일보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의 추천으로 감사 챌린지 두 번째 주자로 나선 유 교수를 지난 18일 서울 강남 집무실에서
황금성오락실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겉으로 보이는 성공이라는 설계도 뒤에 가려졌던, 하나님의 치밀하고도 세밀한 공법(工法)을 고백했다.
11년의 광야…그를 멈춰 세운 질문
신천지릴게임 유 교수는 연세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대와 하버드대에서 각각 건축학 관련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하나님의 건축가’라는 소명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큰 꿈을 안고 2005년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그는 “지방의 마을회관이나 동물원, 작은 인테리어
모바일릴게임 설계 등을 주로 맡던 시절이 있었다”며 “그 작업들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론 더 크고 화려한 건축물을 통해 세상에 영광을 드러내고 싶다는 인간적인 욕심이 컸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솔직히 감사보다는 원망이 컸지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이들은 오히려 승승장구하며 기회를 얻는데 ‘왜 정작 당신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고 준비된 나에겐 이런 시련만 주시나요’라며 묻고 또 물었습니다.”
끝없는 원망이 이어지던 어느 날, 새벽기도에서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그를 찾아오셨다. 유 교수는 “‘내가 언제 너에게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라고 했느냐’는 질문에 뒤통수를 맞은 듯 머쓱해졌다”며 “그 순간 내가 가졌던 그 뜨거운 열심이, 실상은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가 자신의 인생 설계도를 내려놓은 바로 그 순간 부터 하나님은 기다렸다는 듯 일하시기 시작했다. 신문사 고정 칼럼은 대중과의 접점이 되었고 출간하는 책마다 반향을 일으키며 방송가까지 그의 무대를 확장해 나갔다.
세종산성교회는 교회스럽지 않으면서도 도심 속 경건의 공간이 되고자 했다. 지역을 품기 위한 곡면의 외벽, 숨은 듯 자리한 십자가는 경건함을 배가시킨다. 세종=신석현 포토그래퍼
그토록 갈망했으나 좀체 허락되지 않았던 수도권 프로젝트와 교회 건축은 11년의 연단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그의 손에 맡겨졌다.
유 교수는 “2016년 서울 동작구의 청소부 쉼터 건축을 기점으로 2018년에는 건축가가 된 이후 처음으로 세종시에 ‘세종산성교회’를 완공했다”고 밝혔다. 이어 “건축가로서 처음 맡게 된 교회 설계였기에 그 무게가 남달랐다”며 “입당예배 당시 기쁨보다 감사함이 앞서 성도들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고 술회했다. 그가 진심을 닿아 건축한 이 성전은 2020년 세계적 권위의 ‘시카고 아테나움 국제건축상’을 수상했다.
수련회서 '소명' 발견…하나님의 건축가로
유 교수가 하나님을 만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친구를 따라간 교회가 막연하게 좋았다”고 말했다.
“외가는 독실한 믿음의 가문이었지만, 무교였던 친가의 반대로 시집온 어머니는 신앙을 포기해야 했지요. 교회 출석을 계기로 어머니가 다시 신앙을 회복했고 완고했던 아버지도 신앙을 갖게 됐습니다. 아마 외할머니의 오랜 기도의 응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친할머니의 회심은 극적이었다. 유 교수는 “죽을 고비를 넘긴 할머니가 어느 날 ‘머리를 잘라야겠다’며 단호히 미용실로 향하셨다”며 “쪽진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교회로 향하시던 할머니의 뒷모습은 집안의 우상이 무너지고 복음이 세워진 결정적 장면이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학창 시절만 해도 그는 건축에 큰 뜻이 없었다. 그는 “암기식 공부보다는 물리적 사고와 미술적 감각을 동시에 발휘할 수 있는 것이 건축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세대 건축공학대학에서 마주한 현실은 기대와 사뭇 달랐다. 유 교수는 “설계의 즐거움을 기대했으나 1학년 과정은 온통 내가 싫어하는 수학과 과학 이론뿐이었다”며 “전공에 대한 재미를 찾지 못한 채 낯선 학문들 사이에서 겉돌며 건축학도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였다”고 털어놨다.
짙은 방황의 터널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그리고 평생을 지탱할 ‘비전’이었다. 그 반전의 서막이 오른 곳은 1989년 1월, 소망교회와 서울 사랑의교회 대학부가 공동 주최한 겨울 수련회였다. 당시 강사였던 고(故) 옥한흠 목사는 “크리스천은 비전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며, 길 잃은 청년 건축학도의 가슴에 소명의 불꽃을 지폈다.
설교를 들으며 자신의 전공인 건축과 신앙의 접점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유 교수는 “정답이 없는 건축이야말로 하나님이 부여하신 고유한 관점과 창의성을 마음껏 투영할 수 있는 영역임을 깨달았다”며 “그순간 건축가로서 나아가야 할 소명이 비로소 선명해졌다”고 회상했다.
하나님은 비전과 함께 약속도 허락하셨다. 유 교수는 기도 가운데 ‘건축 설계를 할 때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세밀한 음성을 들었다. 그 약속을 붙들고 시작한 대학교 2학년 전공 수업은 방황하던 1학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유 교수는 “비로소 전공에 입문하니 적성에도 너무 잘 맞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있으니 이전보다 훨씬 더 무섭게 몰입하며 열심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담장 허물고, 세대가 공유하는 공간 돼야
그의 건축철학은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다시 사람을 만든다’이다. 공간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미움과 갈등을 완화하고 사람을 화목하게 잇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도시 공간이 갈등과 분열을 넘어 세대가 만나고 소통하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유 교수는 “우리 도시가 분열을 넘어 세대 간 소통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담장을 허물고 시선이 교차하는 공유 공간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서로의 삶을 목격할 수 있는 ‘거리’와 ‘공원’이 늘어날 때, 도시의 온도도 비로소 따뜻해질 수 있다는 제언이다.
담장을 허무는 것이 도시 재생의 시작이라면 과연 우리 곁의 교회들은 지역 공동체와 시선이 교차하는 열린 마당이 되어주고 있을까.
유 교수는 한국 교회의 폐쇄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서울의 대형 교회들과 봉은사를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봉은사는 녹지 비율이 40%에 달하지만, 대형 교회들은 4% 남짓에 불과하다”며, “교회가 세상과의 심리적·물리적 허들을 낮추는 ‘중간 지대’가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 해법으로 교회 앞 ‘마당’을 제시했다. 유 교수는 “최근 설계를 마친 성실교회의 경우 시민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마당을 배치하는 데 공을 들였다”며 “교회가 담장을 허물고 마당을 내어줄 때, 믿지 않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이처럼 문턱을 낮춘 열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이 시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감사'…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던 삶
유 교수는 최근 가장 감사한 순간으로 JYP엔터테인먼트 신사옥 디자인 공모전 당선을 꼽았다. 그는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치열하게 경쟁했던 공모전이었다”고 고백했다.
JYP엔터는 지난해 10월 사옥 신축을 위해 755억원에 고덕강일지구 유통판매시설용지 2블록 토지 1만675㎡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로부터 낙찰받았다. 신사옥은 지하 5층에서 지상 22층 규모로 연면적은 5만9475㎡에 달하며, 그가 설계한 JYP 신사옥은 고층 건물의 중심을 과감하게 비워낸 구조로 2028~9년에 완공될 전망이다.
유 교수는 지금의 '감사'가 과거 원망과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내가 계획하지 않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겸손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풍요의 시대를 사는 다음세대를 향해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권면을 남겼다.
“자녀 세대는 개인, 가문의 성장은 경험했을지 몰라도 사회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던 격동의 시기를 보지 못해, 결핍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모든 획득물은 당연한 권리가 되고, 힘들게 얻은 결과물조차 오롯이 개인의 능력 덕분이라 믿는 태도가 감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는것 같아요. 우리가 가진 것 중 당연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 과거 선조드르이 헌신과 현재의 은혜를 연결해 보는 시각의 전환이 감사의 시작 아닐까요.”
유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 루이스 칸은 50대에 첫 성공작을 내놓은 ‘대기만성’형 건축가다. 유 교수는 “칸이 생의 마지막 20년을 뜨겁게 불태우며 건축사에 족적을 남겼던 것처럼, 나 역시 앞으로의 20년을 하나님의 건축가로 허락하신 달란트를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하는 ‘골든 타임’으로 만들겠다”고 전했다.
화려한 커리어 이면에서 늘 자신의 부족함을 대면하며, 하나님이 맡기신 재능을 썩히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그는 인생의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현준아, 너 정말 잘 살았다”그저 이 한마디 칭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유 교수는 “내게 정말 건축을 할 만한 재능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며 “내가 쉼 없이 달려온 이유는 성경 속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지 않고 최선을 다해 꽃피운 인생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오늘도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이들을 향해 유 교수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남겼다.
“아브라함이 칠흑 같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듯, 저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시절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그 힘겨운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그렇게 버텨낼 수 있었던 믿음 자체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감사이지요. 이 투박한 고백이 같은 계절을 지나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소망의 불씨가 되길 바랍니다.”
그는 다음 인터뷰 주자로 기독교인인 가수 윤종신,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를 추천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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