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가 남긴 여러 걸작 중에서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음악사에서 특별한 위상을 지닌다. 전통적인 화성학의 규칙을 과감히 무너뜨린 혁신적 화성법 ‘트리스탄 화음’을 선보여 현대 음악의 ‘빅뱅’을 일으킨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채워지지 않는 갈망’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 오페라의 관습이었던 아리아와 레치타티보의 경계를 허물고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 무한선율 기법을 도입한 바그너 음악의 ‘인장(印章)’같은 오페라다.
국립오페
릴게임뜻 라단·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두 주역 스튜어트 스켈톤(트리스탄·오른쪽)과 캐서린 포스터(이졸데). 국립오페라단 제공
1865년 6월 10일 독일 뮌헨 궁정극장 세계 초연 이후 160년 만에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4∼7일
릴게임신천지 전막 공연됐다. 국립오페라단이 이 작품 한국 초연을 위해 기울인 노력은 각별했다. 바그너 작품 녹음으로 최근 상을 받은 얍 판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무대를 만들면서 ‘헬덴테너(바그너 전문 테너)’로 유명한 스튜어트 스켈톤(트리스탄), 캐서린 포스터(이졸데) 등을 불러 모았다. 연출 역시 2023년 독일 콧부스 국립극장에서 같은 작품을 올
뽀빠이릴게임 려 주목받은 스위스 출신 연출가 슈테판 메르키에게 맡겼다.
하지만 “우주선 안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우주, 무한한 사랑’, 멀티버스 속 다시 태어난 바그너의 세계”를 표방했던 이 작품은 ‘중력’이란 암초를 피하지 못했다. 애초 연출가는 거대한 우주선 세트와 나선형 구조물, 별빛을 형상화한 조명과 거
바다이야기게임장 울을 통해 멀티버스 속을 떠도는 연인들의 사랑과 죽음을 그리는 ‘코스믹 오페라’를 구상했다. 하지만 무대 안전을 위해 바그너 특유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현실과 또 다른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예정이었던 나선형 구조물 설치 등이 취소되고 3막을 장식할 예정이었던 잔디밭도 사라졌다.
바다이야기고래출현 ‘무한한 우주, 무한한 사랑’으로 우주에서 다시 태어난 바그너 작품세계를 구현하려 시도한 국립오페라단·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1막 무대. 국립오페라단 제공
대신 무대를 원형으로 에워싼 반사판과 성계(星界)를 상징하는 상부 원형 구조물, 그리고 후면 LED 배경이 공연 내내 웅장한 코스믹 이미지를 시각화했다. 하지만 ‘멀티버스와 우주여행, 통제로 둘러싸인 세계를 박차고 나가는 두 인물의 선택’이란 애초 연출의도를 구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튜어트 스켈톤이 연기한 트리스탄 역시 세심한 표현력에선 ‘헬덴테너’로서 역량을 입증했지만 이 작품 특유의 사랑과 광기, 절망을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느슨하게 느껴졌다. 육중한 트리스탄은 무대 위 거동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 순간이 자주 포착됐다.
다섯 시간에 걸친 대작 공연 추동력은 이졸데를 연기한 캐서린 포스터로부터 나왔다. 한계를 드러내는 순간도 있었으나 노련한 무대가 돋보였다. 투명한 고음과 풍성하고 따뜻한 중저음으로 모든 음역에서 균형잡힌 소리를 들려줬다. 3막 마지막 ‘사랑의 죽음’에선 명불허전의 집중력을 보여줬다. 객석 바로 앞까지 걸어 나와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삶과 죽음, 낮과 밤, 나와 너의 구분이 사라진 환희의 세계로 나가는 신비한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줬다.
국립오페라단·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마르케 왕을 맡아 진가를 발휘한 베이스 박종민. 국립오페라단 제공
호불호가 엇갈린 두 주역과 달리 홀로 존재감을 각인시킨 건 마르케 왕을 맡은 베이스 박종민이다. 배신당한 군주이자 늦게 찾아온 사랑과 신뢰가 무너지는 비극적 인물을 그리는 그의 노래는 2막 긴 독백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풍부한 성량의 낮게 깔린 레치타티보와 성부를 가득 채우는 긴 호흡으로 상처 입은 왕의 고독과 쓸쓸함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국내 초연 무대에서 가장 안정감 있는 성취를 보여준 쪽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이다. 15년 만에 오케스트라 반주에 나선 서울시향은 난이도 높은 대작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서곡의 ‘트리스탄 화음’에서부터 3막 종결까지 이어지는 긴장과 해소의 파동을 안정적으로 그려냈다. 현악군은 두터우면서도 유연한 음향으로 바그너 특유의 ‘끝나지 않는 선율’을 지탱했고, 목관과 금관은 위험수위의 음량과 조화를 오가며 극의 밀도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츠베덴의 지휘 역시 무대의 제약과 성악진의 컨디션을 살피며 각 막의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고 극을 이끌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악단으로서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 무대였다.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기자 admin@slotnara.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