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조발언 -
“기득권을 비호하는 법원”이 아닌 “정의를 수호하는 법원”으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 창원 성산구 국회의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
제 기조발언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어려운 재판 여건 속에서도 사법정의의 보루로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열정과 헌신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계신 법관 여러분들과 법원행정 공무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촛불시민혁명이라는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평화적인 정치혁명을 만들어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력을 신뢰하고 여러분들의 노고를 존중하는 가운데 사법개혁의 과정이 실현되길 기대합니다.
□ 사법개혁은 법관들만의 요구가 아닙니다. 국민들의 절박한 외침입니다.
“이게 나라냐” 지난해 말,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민들의 준엄한 외침입니다.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기득권 세력이 판치는 대한민국을 새로운 민주공화국으로 바꿔보자는 국민 여러분들의 절규였습니다.
주권자인 국민들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며 민주주의가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눈물 흘렸고, 권력을 등에 업고 특권을 누린 자들의 뻔뻔함에 분노했습니다. 그 눈물과 분노로 타오른 촛불은 한겨울 추위와 세찬 바람에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도 뜨겁게 촛불이 타올랐을까요? 권력을 부정하게 휘두른 국정농단 세력의 추잡하기까지 한 특권 행사와 국민을 상대로 한 “돈도 실력이다”라는 그들의 조롱은 이미 국민들이 삶에서 겪고 있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으로 너도 나도 “이게 나라냐?”라고 외치며 분노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현실이 익숙합니다. 그 대표적인 현실이 무엇일까요? 바로 국민들이 느끼고 바라보는 사법부의 모습입니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들의 외침은, 이미 국민들이 “법원의 판결이 공정하지 않다”, “권력이 있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고, 힘 없고 돈 없는 사람들만 처벌 받는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하다”고 사법부를 비판한 외침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시민혁명을 계승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실현하고자 하는 지금, 사법개혁은 국민들의 절박한 외침입니다.
□ 국민들은 알파고와 사법부의 재판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할 것인가?
2015년 7월 OECD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 중 사법부를 신뢰한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은 27%에 불과했습니다. 콜롬비아, 칠레 등의 국가와 함께 최하위를 다투는 신뢰수준 입니다. 주요 선진 국가들의 사법부 신뢰도는 덴마크 83%, 독일 67%, 일본 65%, 미국 59% 등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왜 사법부를 믿지 않을까요? 간단합니다. 법원은 판결로 말합니다. 그런데 그 판결 중 비록 많은 사례는 아니라 하더라도 결정적으로 정치권력 눈치보기 판결, 재벌 대기업 등 기득권 세력을 비호하는 판결이 대다수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또한,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정하고 부당한 판결이 되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자인 짜장면 배달부는 70만원을 훔치고 10개월의 실형을 살고 강자인 재벌 총수들은 수 백 억원의 회사 돈을 횡령·배임하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법 현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 천 만원, 수 억 원을 주고 전관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면 무죄가 되거나 처벌이 가벼워지는 소위 전관예우도 그렇습니다. 2,600여명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유효 판결을 비롯해서 기업의 일방적 정리해고를 정당화시켜주는 수많은 친 기업 판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자살했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가정이 파탄 나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부당한 횡포를 피하고자 법원에 의지했던 수많은 중소기업가들이 법원의 대기업 비호 판결로 피눈물 흘리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결국 법원이 “정의”를 지키는 대신 “힘 있는 자, 가진 자만을 비호한다”는 불신을 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더 많이 얻어야 하는 위기 상황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사법개혁의 시작은 ‘법관의 독립’과 ‘사법부 민주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저는 법관의 독립과 양심에 따른 판결이 더욱 더 튼튼하게 보장될수록 정치권력과 재벌 대기업 등 기득권 세력 그리고 일부 법관에 의한 사법부 흔들기, 사법 농단이 사라지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로 거듭 날 것이라 확신합니다.
따라서 사법개혁의 방향은 법관의 재판에 대한 독립성 보장과 그것을 위한 사법부의 민주화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법개혁의 목표는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재판을 정착시켜 사법부가 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사법제도의 실현입니다.
이러한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국회가 사법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법관 등 사법부의 구성원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 사법개혁의 열매를 스스로 수확할 것이라 믿습니다.
구체적으로 법정에서의 정의가 ‘법관들만의 정의’가 아닌, 시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맞는 정의가 되도록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을 회복할 사법제도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을 “기득권을 비호하는 기관”에서 “정의를 수호하는 기관”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 “정의를 수호하는 법원”을 위한 3대 기본과제
첫째, 재판의 주체인 판사의 독립을 강화하고 사법부 민주화를 실현해야 합니다.
현재의 사법 현실은 대법원장에게 인사권을 포함하여 법원행정에 관한 전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독점하지만, 인사권 행사 절차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현재 법관의 평정과 사무분담도 수직적 인사구조 아래에서 불분명한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법관이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통로도 지나치게 제한적입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법관들은 “윗선 눈치보기”를 하고, 국민들은 법관이 자신의 양심이 아닌 “권력자”의 이익에 따라 재판을 한다는 의심하게 됩니다.
이제 사법부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법관이 ‘제왕적 대법원장’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재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국민이 법원을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됩니다.
이를 위해, 대법원장의 권한이 축소되고 견제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법행정에 법관들의 참여가 확대·보장되어야 합니다. 법관들에게 투명하게 인사와 평정의 기준이 공개되어야 합니다. 인사 대상자는 누구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블랙리스트’ 나 ‘부당 인사’ 의혹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법원행정처 역시 대폭 개혁해야 합니다. 당초 법원행정처는 법원 공무원들이 회계, 인사, 시설관리 등 법원 유지를 위해 필요한 행정업무를 “행정부로부터 독립하여” 담당하는 기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의 제왕적 인사권과 결합하여 “법관의 내부로부터의 독립”을 저해하는 또 다른 “법원 내 권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법원행정처의 이러한 폐단을 청산하기 위한 근본적 개혁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둘째, 재판에서 전관예우를 척결하고, 법조비리를 일소해야 합니다.
우리 사법부는 “전관예우”와 법조비리의 오명으로부터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관 비리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제 식구 감싸기” 논란도 일어납니다.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부장판사 출신의 최유정 변호사 사건이나 김수천 부장판사 사건은 법조비리 근절을 위한 사법부의 근본적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로 삼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법관의 비위를 사전적으로 예방하고, 사후적으로 감찰하며, 전관예우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셋째, 법관의 구성을 다양화 해 “시민을 닮은 법원”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정의로운 판결은 시민의 상식을 반영할 때 실현될 것입니다. 따라서 법관의 구성 역시 다양한 시민의 상식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해져야 합니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올해에만 두 명의 대법관과 대법원장 임명을 해야 합니다. 우선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께 비법관 출신의 대법관 임명, 신망과 경륜을 갖춘 여성 대법원장 임명을 검토해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대법원의 구성을 다양화하기 위해 특정대학 출신, 남성 편향의 대법관 임명을 지양해주시길 대통령께 건의 드립니다.
나아가 여성, 노동, 경제 민주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인재가 대법원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수자의 관점 역시 대법원 구성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촛불 시민’에서 일선 판사들까지… 이제는 국회가 응답할 때
‘촛불시민’의 강력한 요구에 화답하듯, 올해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를 시작으로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법관들의 목소리가 강력하게 표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19일에는 사법개혁 방안에 대하여 판사들의 뜻을 모으는 전국대표법관회의가 개최됩니다. ‘촛불시민’에 이어, 전국의 판사들까지 사법개혁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제 국회가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법부 내부의 의견을 수렴해 구체적인 사법제도 개혁안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 새 정부 출범에 발맞춘 사법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법관 출신이자 사법개혁에 열정을 갖고 계신 이용구 변호사님과 유지원 변호사님께 사법개혁방안 연구를 요청하였습니다. 판사로서의 재판 경험과 법원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헌법 및 법률 개정안을 작성해 주신 두 발제자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또한, 사법개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기 위해 참석해 주신 토론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날카로운 비판과 열띤 토론을 통해, 새 정부 출범에 발맞춘 사법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를 기대합니다.
저 또한, 오늘 토론회를 통해 수렴된 다양한 의견을 다듬어 구체적인 사법개혁 방안을 조속히 국회에 제출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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